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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연 Nov 06. 2024

현실판 좀비 떼, 제가 만났습니다

오토릭샤를 타고 만난 그들과의 잊지 못할 경험



“Anand Niketan까지 가는 데 얼마인가요?”, “No no 50 루피”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인 오토릭샤를 탈 때면 나는 항상 흥정꾼이 되었다.


인도 길가에는 손님을 대기하는 오토릭샤가 여기저기 많다. 릭샤를 잡으려 손을 살짝만 흔들어도 손짓을 알아본 릭샤꾼들이 부리나케 달려온다.


그중 가장 먼저 온 릭샤꾼이 “kahaan? (어디요)”라고 머리를 옆으로 까딱하는 인도인들 특유의 제스처를 하며 물어본다. 그때 나는 현지인 냄새 풀풀 나게 팔짱을 끼고 여유 있게 이야기한다. “Anand Niketan 50루피 ok?”라고 그곳까지 가는데 50을 주겠다고 간단히 말하고 상대의 반응을 본다. “Okay”라고 내가 제안한 금액을 한 번에 수락하면 very much thank you다. 불필요한 실랑이 없이 편하게 릭샤에 올라타면 된다. 하지만 “No no expensive 티께 (ok)”라고 말하며 비싸다고 태클을 걸어오면, 금액 흥정에 들어간다. “아 예전에 탈 때 항상 50 부르던데”라고 자주 타봤다는 티를 내며 물러서지 않으면, 포기하고 수락하는 릭샤 반, 됐다고 쿨하게 떠나는 릭샤 반이다.



손님을 태우려 줄지어 있는 인도의 오토릭샤들



처음에 인도에 왔을 때는 흥정꾼이 아니었다. 릭샤를 자주 탈 일도 없었고, 금액을 물고 따지면 혹시 해코지당할까 무서워 부르는 값에 올라탔다. 그런데 릭샤를 타는 횟수가 늘어가다 보니, 나 같은 외국인들에게 훨씬 더 비싼 값을 부르는 릭샤 꾼들을 자주 만났다. 눈 탱이 맞는 일이 몇 번 있다 보니 이후에는 현지인 냄새 풀풀 풍기게 연기도 좀 하고, ‘됐으니 안 탄다’며 배짱 있게 거절하기도 했다.



인도 서민의 다리 '오토 릭샤'


인도에는 큰 게이트가 쳐진 일반 주택가들 밖으로 거리들이 나 있는데, 주택가와는 달리 일반 도로에서 편안하게 걸어 다니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일단 도로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인도의 구분이 모호하다. 그리고 사람과 동물들이 여러 갈래로 다니다 보니 내가 맞게 가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경우 가까운 거리라도 차를 타고 다녔다.



그렇다고 또 버스를 타지는 않는다. 해외 뉴스에서 인도인들이 기차 타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콩나무 시루처럼 빽빽하게 올라탄 기차 안에 꾸역꾸역 겨우 발만 밀어 넣는 사진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 기차 천장 위로 올라타는 사람들 사진도 종종 접할 수 있다.



저 틈에 들어가기 쉽지 않습니다..!



버스는 기차만큼은 아니지만 역시나 사람들이 매우 밀집되어 올라탄 후 이동한다. 외국인인, 그것도 여학생인 내가 만원 버스에 꾸역꾸역 올라탄다면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행여나 위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기에 버스는 타고 다니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가 회사 출근을 위해 차를 가지고 가신 경우, 가까운 거리는 릭샤를 타고 다녔다. 택시도 있지만 다소 비싼 값을 내야 했고, 콜택시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 가볍게 나가 바로 탈 수 있는 릭샤를 종종 탔다.



물론 릭샤도 안전하지는 않다. 내가 알던 길이 아닌 이상한 길로 들어가 납치를 당하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 때문에 처음에는 릭샤를 타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와 한번 탄 게 두 번이 되고 몇 번 늘다 보니 가까운 곳에는 혼자 타는 용맹함이 생겼다.



릭샤는 택시와 달리 양 옆이 뚫려있다. 그래서 달리면 더운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양옆으로 바깥 풍경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평소에는 아버지 차와 스쿨버스만 타고 다녔기에 인도 거리를 자세히 보지 않았다. 하지만 릭샤를 타면 인도 거리의 공기를 어떤 공간 보다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따금 지나가는 소들도 더 자세히 볼 수 있고… 다만 릭샤를 타면서 내가 항상 두려워했던 한 가지가 있다. 운전기사도 안 무서워하던 내가 무서워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인도 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들이다. 인도 거리에는 텐트나 박스를 치고 살아가는 거지들이 정말 많다. 인도 거지의 수만 약 30만 명이라고 한다. 텐트나 박스 없이 그냥 몸만 뉘어 놓고 살아가는 거지들도 있다. 처음 인도에 간다면 이런 광경을 보고 충격에 사로 잡힐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깐… 옷도 제대로 안 입고 온몸이 까맣게 더러워진 사람들이 앉아있는 옆으로 지나가기 쉽지 않다.



거리에 나앉은 수많은 인도 거지들



어느 날, 릭샤를 타고 빠르게 달리다 신호등에 걸려 잠시 대기한 적이 있다. 멍 때리며 오른쪽 바깥 풍경을 보던 나에게 왼쪽에서 누군가의 어두운 손이 조용히 쓱 들어왔다. 갑자기 들어온 손에 화들짝 놀란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갓난아기. 한 100일쯤 되어 보이는 아기를 안은 엄마가 도와달라며 구걸하고 있었다.



길거리 거지들을 처음 본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지하철 입구에 종종 돈주머니를 앞에 두고 누워있거나 엎드려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 광경에 무덤덤하던 내가 화들짝 놀랐던 이유가 있다. 바로 인도 거지들은 매우 적극적, 아니 어쩌면 끈질기다는 것이다. 한국 구걸자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한 푼 줍시오”라고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그냥 돈주머니만 앞에 두고 기다릴 뿐.. 하지만 인도 거지들은 우리 앞에 손을 바짝 내밀며 돈을 구걸했고, 심지어 내 팔을 잡은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5루피라도 줘야 하나 주머니를 뒤적뒤적하며 돈을 찾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릭샤를 몇 번 타고 다니다 보니 애초에 주머니에 손을 넣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은 엄마 품에 안김 앙상히 마른 아기가 너무 가여워, 엄마처럼 보이는 여성에게 5루피를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돈을 주자마자 주위에 있는 5~6명의 거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거리가 꽉 막혀 릭샤도 앞으로 못 가고 있는 상황인데, 나는 릭샤 양옆으로 거지들에게 둘러싸였다. 옴짝달싹 못하던 내 상황이 마치 좀비 떼에 둘러싸인 영화 속 주인공 같았다. 좀비처럼 물지만 않았을 뿐, 릭샤 기둥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던 그들의 손아귀 힘이 소름 끼치게 놀라웠다. 무엇을 만지고 다녔는지 모를 그 까만 손들은 동전 표시를 하며 내게로 계속 뻗어왔다.



‘미치겠다 어떡하지’하고 땀을 빠짝 흘리며 릭샤꾼을 다급히 부르며 ‘Help Please go fast’라고 외쳤다. 그러나 릭샤꾼들은 보통 이런 상황에서 나 몰라라~~ 하며 다른 곳을 바라보기 일쑤다. 한번 경험해 보라고 놔두는 건지 강 건너 불구경도 이런 불구경이 없다. 그나마 착했던 1~2명 정도의 릭샤꾼들은 거지들에게 “위험하니 비켜라” 하면서 저리 가 란 손짓을 해 준 적이 있긴 하다. 그럴 땐 딱히 방법이 없다. 그냥 돈 준 나를 탓하지 누구를 탓하리…



그리고 또 하나 충격적이었던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거지들을 보면 유독 갓난아기를 안고 있던 엄마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가난한데 애 낳은 엄마들이 왜 이렇게 많지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기를 한 여자 거지가 다른 운전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거절당하더니 잠시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는 그 옆에 다른 여자가 그 아기를 받아 또 다른 운전자에게 구걸을 하러 가는 것이었다. 아기 빌려 쓰기도 아니고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행동인가…. 아기를 잠시 맡아주는 건가? 처음에는 생각했다. 그런데 릭샤를 타고 똑같은 거리를 몇 번 다니다 보니 아기는 똑같은데 안고 있는 엄마가 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유독 아기를 많이 안고 있는 인도 여성 거지들



나중에 인도 친구에게 물어보니 아기를 안고 구걸하면 돈을 더 잘 벌 수 있기에 아기를 돌려가며 데리고 구걸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인간이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괘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먹고살려면 저렇게라도 해야지 어떡하나 싶기도 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여전히 사회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그렇기에 인도 하층민에게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꿈 꾸기’ 힘든 이야기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들은 죽을 때까지 거리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우리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것에 새삼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면 어땠을까 배부른 상상을 한 나 자신이 새삼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도 희로애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여움과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리에 앉아있으면서도 그들끼리 이야기하고 웃으며 장난치는 모습을 자주 봤다. 집이 없는 그들도 그처럼 웃으며 살아가는데, 안락한 집에서 부유하지는 않지만 부족할 것 없이 살아가는 나 자신을 종종 되돌아봤다.



집과 돈은 없어도 웃음이 있는 그들



지금도 나는 매일 워킹맘으로서 매일매일 하루를 바삐 살아간다. 내게 주어진 것의 감사함을 종종 잊으며 웃음기 대신 무표정으로 장착한 얼굴로 살아가는 날이 많다. 글을 쓰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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