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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연 Nov 18. 2024

인도에서 하늘이 노래졌던 순간

재난영화를 보는 듯했던 몬순 폭우



인도는 무서운 나라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뉴스에 나오는 집단 성폭행 이야기, 가짜 먹거리 이야기 등등 우리나라에서는 접하기 힘든 헉소리 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인도에 가서 살면서 천만 다행히도 이런 무서운 일을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아니더라도 내게도 인도에 살면서 정말 무서웠던 순간이 있었다.




인도에서 경험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바로 인도 폭우를 맞닥뜨렸을 때였다.


혹시 ‘몬순’ 혹은 ‘스콜’이라는 단어를 들어봤을지? 열대 몬순은 여름철에 강한 비를 동반하는 계절성 기후이다.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은 한국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특히 올해 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가 발생하고 ‘스콜’을 닮은 소나기가 잦았다. 짧은 시간에 비가 엄청난 물 폭탄처럼 내리고, 맑은 날씨였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렸다. 이런 ‘한국형 스콜’ 현상을 두고 우리나라도 동남아성 기후로 변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아졌다. 이번 여름같이 폭우가 내릴 때면, 내 머릿속은 자동적으로 인도에서 마주했던 거대 몬순 폭우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인도 뉴델리 폭우



인도에 가기 전 한국에서도 폭우를 동반한 태풍을 경험한 적은 있다. 어릴 적 가족과 함께 지방에 여름휴가를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도로부터 가로수들이 쓰러져 있어 걱정이 되었는데, 세상에나 집에 들어가 보니 베란다의 바깥창문이 태풍에 뜯겨 있었다. 뜯겨 나간 창문 틈 사이로 바깥바람이 거세게 들어와 거실을 헤집어놨고, 기르던 거북이 어항도 엉망이 되어 있었다. 며칠 동안 태풍이 휩쓸고 간 집구석구석을 제자리에 돌려놓느라 가족 다 함께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인도에서 마주했던 폭우의 기억은 이것보다 더 무시무시했다.


학교를 마치고 3시 즈음 스쿨버스를 타고 하교하던 길이었다.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가 올려다본 하늘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흐린 날씨가 아니었는데, 하늘의 색깔이 점점 변하고 있었다. 보통 먹구름이 몰려오면 하늘은 회색 빛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때 하늘은 재난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처럼 노랗게 바뀌고 있었다. “하늘이 노래졌다”는 말을 내 눈으로 처음 본 순간이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그런 하늘 색깔은 정말 처음 보았다. 마치 하늘에 전구가 켜진 것처럼 밝았는데, 그 뒤로 시커먼 먹구름이 함께 뒤따라와 신기하면서도 하늘에서 무슨 일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장면이었다.



재난영화에 나올 법한 인도 몬순 비구름 떼



그러더니 대형 물폭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이 있었지만, 집이 가까워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정류장에 내릴 것이 두려워졌다. 비가 내린 지 15분 정도 지났을까?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려 할 때 정말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왜냐, 물이 그새 발목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 발목까지 올라 넘실대는 물을 가르며 얼른 집으로 가려했다. 집까지는 걸어서 5분~10분 거리. 얼른 속도를 내보았지만 물은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매일 단숨에 걸어가던 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러는 새 말도 안 되게 물은 허리까지 올라왔다.


정말 한 순간이었다. 뉴스에서 자연사태를 겪고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일어났다”라고 말하던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었다. 나는 허리까지 차오른 비에 수영하듯이 떠밀려 갔다. 발을 헛디디면 의도치 않게 잠수를 하게 될 것 같아 온몸에 힘을 주고 버티며 빠른 속도로 집으로 갔고, 다행히 집에 도착했다. 집은 그나마 경사가 있는 지반의 주택이어 물피해는 없었지만, 내 뒤로 보이는 거리는 모두 물바다에 잠겨버렸었다.



몬순 폭우로 물에 잠긴 거리



만약 당시 몬순 폭우가 한국에서 일어났었다면 아마 상황이 조금 더 나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인도는 빗물배수시설이 한국처럼 잘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에 비가 많이 오면 비가 빠지지 않고 거리에 고여있다가, 물 수위가 점점 높아지면 그대로 거리가 침수된다. 우리 동네도 배수시설이 있긴 했으나 잘 관리가 되지 않았던 탓인지 물이 빠지지 못하고 거리를 휘감아버린 것이다. 하늘이 노래졌던 그때의 순간은 인도의 더위보다도 더 강렬하게 내 기억에 남게 되었다.


이처럼 몬순 폭우가 발생하면 인도 길거리는 아수라장이 된다. 사람, 자동차, 나무들이 뒤섞일 뿐만 아니라 인도 거리를 배회하는 동물들도 함께 물난리를 겪기 때문이다. 동네 개들이며 소들까지도 물에 둥둥 떠내려가기도 한다. 올해 9월, 인도 구자라트주에 큰 물난리가 있었을 때는, 심지어 악어와 사자 같은 야생동물도 도심까지 떠밀려 왔다한다. 저 먼 인도 야생 늪지에 살던 악어와 사자까지 떠내려왔다 하니 인도 스콜이 불러오는 폭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몬순 폭우로 떠밀려 온 야생동물



인도는 6월~9월까지가 몬순(우기) 기간이다. 이 기간에는 밤낮으로 비가 퍼부을 때도 있고, 날씨가 좋았다가 갑자기 비가 내렸다 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작년에 몬순으로 인해 인도의 대표 문화유산인 타지마할 정원 일부가 침수되고, 구조물 일부에도 미세한 누수가 발생했다. 그리고 인도는 오래된 건물이 많고, 오지마을에는 여전히 흙으로 만들어진 집도 많다. 그렇기에 폭우가 내리면 대형 산사태도 자주 난다. 폭우가 휩쓸고 가면 거리는 떠밀려온 흙으로 흙탕물이 되고, 주위 곳곳에서 교통 통제가 이루어진다. 허리까지 치올랐던 물이 빠져 내려가면 몇 날 며칠 혹은 몇 달이 걸려서야 몬순이 지나간 흔적이 조금씩 정리된다. 그렇게 몬순이 지나가면 그제야 습하지만 이전보다는 선선한 공기가 불어오기 시작한다. 


인도에서 많은 일을 겪었지만, 내가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바로 이 몬순을 경험했던 날이다. 순식간에 물이 발 밑에서 발목, 그리고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그 순간 자연의 힘은 너무나 대단하고 무시무시했다. 그런 경험을 하고 한국에 돌아오면 '우리나라는 배수시설이 정말 잘 되어 있구나, 다행이다' 새삼 느끼게 된다.


요즘은 기상변화로 인해 몬순 폭우가 더 강력해지고 기간도 점점 불규칙해져 가고 있다 한다. 우리나라도 점점 여름철 스콜 현상이 잦아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 먼 이야기가 아니다. 여름에 내리는 물 폭탄이 점점 거세지고 잦아진다면, 우리의 안전한 일상에도 분명 변화가 있을 테니 말이다. 내가 겪었던 대단하고 무서웠던 몬순의 경험을 한국에서건 혹은 다른 곳에서건 또다시 마주할 일이 많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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