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책을 읽어줘야 하지? 영어책? 한글책?
그렇게 한글 전집 몇 질을 들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 나라는 3살 이후부터 ECE(Early Childhood Education) 정부 지원을 받으며 유치원을 다닐 수 있는데, 첫째가 4살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는 집 근처 유치원을 방문하고 등록했다. 그때 아이는 ABCD만 겨우 읽고, 말하던 수준이었다.
드디어 고민만 하던 일이 현실로 닥쳐왔다.
당장 유치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우리 아이에게
바로 영어 책을 시작해야 할까?
아니면,
이제 겨우 자리 잡은 한국 책을 꾸준히 읽어야 할까?
한 참의 고민 끝에 얻은 정답은, ‘둘 다’였다. 둘 다 마라톤 하듯 꾸준히 오래 가져가야 했다.
한국에서 따로 가져온 영어 책은 없었고, 쌍둥이 북 몇 권이 전부였다. 그래서 일단 쌍둥이 북을 같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와 나는 글밥이 적은 영어 책 또는 짧은 문장의 유아 영어 책을 같이 읽기 시작했다. 집에 영어 책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집 앞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골라 읽었다. 주말에는 한글 책을 주로 읽었다.
1년 뒤 유치원 졸업할 때, 우리 아이의 수준은 영어로 자기 이름 쓰는 정도가 다였다.
5살에 되어 학교에 입학을 하면, 나이와 학년 레벨에 맞춰 영어책 리딩을 시작한다. 영어 책이라고는 엄마랑 1년간 읽은 영어유아책이 전부인 우리 아이는 제일 낮은 그룹에서 시작했다.
일주일에 3~5번 정도 선생님과 레벨 그룹에 맞춰 책을 읽고 집으로 가져와 읽기 연습을 한다. 그리고 부모는 그 리딩에 관한 코멘트를 수첩에 적어 다시 학교로 보낸다.
학교에서 '선생님'만 리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부모'도 같은 레벨의 책을 연습시키기 때문에 아이의 리딩 레벨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아이의 학교에는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아이들을 위한 ESOL class가 있었기에 병행하며 들었다. 이 수업에서도 책이나 시 등의 다양한 자료를 통해 리딩을 가르쳐줬다.
아이가 영어책을 막 읽기 시작했을 때 내 마음이 아이보다 더 초조하고, 걱정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다. 결국은 모두 ‘잘’하게 되니 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가 주니어팀(저학년)을 넘어서면서부터 영어 읽기는 도움 없이 스스로 했고, 나는 한글 리딩만 도와주고 있다.
주말에는 아이와 한글 책을 읽고, 따라 쓰기를 연습했다.
처음에는 한글이 더 재미있고, 영어는 재미없다고 했던 아이가 지금은 한글이 너무 어렵다고 말한다. "한글 놓치지 말고, 꾸준히 가르치지 않으면 완전히 놓아버린다"라고 말했던 이민 선배들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렸었는데 내가 그 상황이 된 것이다.
영어 리딩 레벨에 맞는 한글 레벨 맞추기에는 실패했지만, 한글의 읽기와 쓰기는 매일 밤 책 읽기를 통해 꾸준히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 역시 한글 레벨에 맞는 영어 레벨을 올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한 번에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면 레벨 업 되어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