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보히니 보겔산
보겔산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게 되면, 어느 평범한 카페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뒤편으로 문이 하나 보이는데, 뒷문을 통해서 스키장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전망카페에는 거대한 대형견 한 마리가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인명구조견이라 한다. 그래도 견딜만했던 날씨는 산의 보겔산의 정상에 올라서자 굉장히 쌀쌀해진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은 여행과도 같기에, 언제 어디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살짝 추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나 스스로 오른 산은 아닐지언정, 정상에 올랐기에 전망을 봐야 하지 않을까.
뒤편으로 나오니 거대한 스키장의 모습을 나의 눈앞에 다가섰다. 실로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라보던 스키장의 모습이 아닌, 알프스의 자연 한 귀퉁이에 조성된 비범한 스키장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모습에서 뿜어져 오는 아우라와는 별개로 굉장히 귀여운 표정을 하고 있었던 인명구조견의 모습이다. 나는 이 녀석을 따라서, 카페의 뒷문을 통해 이곳 전망 포인트까지 오게 되었다. 계속해서 신나 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날이 추워 몸을 움츠리고 있었던 나 역시도 함께 뛰어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앙상한 나뭇가지를 하고 있는 나무들과 별장이 눈에 들어온다. 여행이란 꿈을 꾸며, 낯선 세상에서 특별한 풍경을 만나고 그저 바라본다. 여행은 우리에게 참 많은 생각들을 던지는 것 같다.
스키장의 눈을 고르게 하는 장비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에, 나의 뒤편 세상에서는 매직 아워가 시작됐다. 흔히 해가 지기 20분 전, 20분 후를 사진을 찍기 가장 아름다운 시간인 매직 아워라 한다.
흐릿한 하늘에 어두운 세상, 먹구름이 주황빛 하늘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운 좋게도 알프스는 나에게 매직 아워를 선물하려 하나보다. 비록 떨어지는 태양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어두운 세상 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주황빛 하늘이라 그런지 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흰색 설산 위의 봉우리를 비추는 주황빛 태양의 잔상은 마치 불안하고 위태로운 하루하루의 끝이 헤피엔딩으로 끝나는 듯한 기분을 나에게 선사하였다. 그리고 나는 추위마저 잊은 채 이곳에서 계속 머물르며,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비록 매직 아워는 빠르게도 끝을 내려버렸다. 바람을 따라서 먹구름이 밀려왔고, 내가 바라보던 주황빛 세상은 어느새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어둠은 파란색이 되고, 다시 검은색이 된다. 이 시간 속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아쉬운 순간이 끝나가고 나는 이제 보겔산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 찾아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