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보겔산
조금은 늦은 오후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11월의 발칸반도의 해 지는 시각은 조금 빠른 편이다. 오후 4시경이면, 일몰을 볼 수 있고 12월이면 오후 3시에 지는 태양을 마주할 수 있다고 한다. 하늘에 태양은 없었고, 조금은 늦은 오후 같지만 아직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던 어느 날 보겔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알프스 산맥에 속한 보겔산이기에 어떤 모습들을 나에게 선물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나를 환영하는 인사말이 낯선 산으로 향하는 나의 기분을 더욱 설레게 한다. 그리고 낯선 이국에서 마주하는 낯선 언어들이 내가 지금 여행을 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준다.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뒤섞인 사진 한 장이지만, 이 사진을 통해서 다양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슬로베니아 보히니 '보겔 산'으로 향하는 케이블카에 올라서 바라본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눈이 내리지 않았던 세상을 여행하고 있었던 터라 그런지,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설산은 꽤나 아름다웠다. 눈 덮인 세상 중심부에는 줄리안 알프스의 눈동자라 불리는 보히니 호수(Bohinj Lake)가 자리 잡고 있다.
해 질 무렵의 세상이었지만,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또 그런 세상이다. 어두운 먹구름과, 파란 하늘, 그리고 흰색 구름이 가득 찬 세상이 흰색으로 뒤덮인 설산 위에 드리웠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 속에 지금 서있었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사진을 담아내면서 어떤 순간에는 세로로, 어떤 순간에는 가로로 찍게 되는 것 같다. 사진을 찍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세로가 어울리는 세상을 마주하게 되고, 어떤 날에는 가로가 어울리는 세상과 조우하게 된다. 그저 이 순간은 이 엄청난 산의 근엄함을 담아내고자, 세로로 한 장 담아본다.
케이블카 아래로 바라다보는 보히니 호수와 멀리 보이는 작은 마울과 굽이굽이 펼쳐진 풍경들이 내가 지금 여행하는 곳이 어딘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내가 여행하는 곳은 '알프스 산맥에 속한 보겔 산'이다. 높은 세상으로 향할수록, 세상은 조금씩 더 신비감을 더해 가는 것 같았다. 보겔 산은 나에게 또 어떤 선물을 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시간이 흘러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