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을 읽으며 한 장면 한 장면이 내 머릿속 이야기로 떠오르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을 읽으면서 마신 커피의 영향이 없진 않았겠지만, 살뜰히 쓰인 감정을 읽으면서 이야기 속의 인물, 가상의 인물을 만든 사람, 어느 게 진짜 인물인지 중요해지지 않은 채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읽다 보면 쓰고 싶다는 욕구를 참기 힘들었다. 드물게 드는 그 욕구가 사라지기 전에 완벽히 재현해 내진 못하더라도 기록하고 싶었다. 마치 내가 그들에게 빌려온 온기를 다음으로 전달하는 방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유독 차분한 목소리로 따뜻함을 표현하는 장르가 좋았다. 그때 내 안에 따라 들어오는 다정함이 좋아서였겠다. 사람들 앞에서 당황스러워 괜히 괜찮다며 웃거나, 꺼낸 말이 괜한 아양을 떤 것 같아서 이틀이고 삼일이고 떠올릴 때마다 작아지는 책망의 내가 아니라 수줍을 수 있을지언정 어떤 부끄러움도 발견되지 않아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나.
엄청난 양의 말이 이어지지만 추임새 외에는 소리가 새는 법이 없는 글쓰기와 그 옆 가습기에서 맺힌 물방울이 다시 떨어지는 소리가 가장 큰 소음인 시간이 좋았다. 그 시간에선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다.
쓰다가 힘이 달리면 다시 책 속에 들어앉아 읽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당신들의 호흡을 내 숨과 재어본다. 나와 당신들이 가까이 마주하고 누워서 뱉은 숨을 나눠 마시는 것처럼 눈 앞에 종이를 읽는다.
담담하게 표현할 수 없어 부러 터트려내고 때론 모르지 못하게 꼼꼼히 적어낸 문장에서 나는 당신이 의도한 마음을 눈치챘는지, 그래서 나도 떨리고 아린지를 본다. 그렇게 사람 없이 살지 못하는 경험을 반복한다.
어제 오늘 눈이 내렸다. 쌓인 눈을 녹이는 오전의 볕과 눈에 젖어 더욱 또렷해진 나뭇가지의 선명한 대비가 그림 같다. 도로를 걸으면서 창밖을 보면서 족히 두 번은 마음을 뺏겼기에 이제 겨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정오에 가지 위의 쌓인 눈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온기를 빌린 탓인지 나의 말도 당신처럼 다정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들은 이것도 저것도 잘 따라 하는 인간이지만, 다 잘할 수는 없는 게 또 사람이라며 괜히 뒤틀리는 마음이 새어 나올 때 그때 다시 당신의 이야기를 꺼내 읽으며 따스함을 연장해 나간다. 지금처럼 말이다.
다정함 속에 있는다는 게 끼니때 밥, 자정의 잠처럼 남들 할 때 하면 되는 게 아닌데 밥이나 잠만큼 늘 챙겨야 한다는 걸 늦게 알았다. 그 중요한 걸 몰랐다.
며칠을 굶주린 사람에게 누가 밥을 차렸는지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듯이 온정의 결핍 앞에 누가 주는 정인지를 묻지 않고 지금껏 당신들로부터 마음껏 받아왔다. 그래서 나는 언감생시 내가 줄 수 있는 것에 따져 물을 생각을 않는다.
편지를 한다. 인사를 한다. 문을 잡아준다. 온전히 다정한 순간을 지난다. 소설을 읽으며 웃던 표정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