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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May 08. 2024

고백

대화의 단서

열시면 자는 사람이 있다. 열 한시가 넘어도 잠들지 못한다. ‘연애가 불편하다’는 각성이 있었다. 상대방의 문제가 아녔다. 단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생각도 같이 꼬이는지 복잡해만 갔다. 누군가의 새벽 두 시 같은 감성이 깊어갔다. 결국 가장 쉬운 방법으로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 얘기인 줄 알고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단 조언이 나왔다.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한 뒤의 당황스러움. 일을 크게 만들기 전에 내일 이야기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알람 없이도 깬 여섯 시. 기지개 켜고 몸을 몇 차례 움직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어제 못다 한 생각이 들었다. 아침이라고 생각이 더 선명한 건 아녔다. 카페로 가서 빵과 커피를 먹고 글 쓰며 생각을 정리해 볼 요량으로 움직였다. 찬물이 두피에 닿을 때 찬물로는 절대 머리를 감지 않는다던 연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의 사소한 말도 내것같은 지금이 되기까지 우리는 일 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스민 생각은 관성이 얼마나 셀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연애가 편하지 않단 생각도 아주 사소한 것에서 왔다. 내키지 않은 음식을 먹고, 계산을 하고 나온 상대를 보았을 뿐인데 그런 순간에 나는 기분이 빠르게 상했다. 결제하고 뒤따라 나온 상대를 이해시킬 자신은 없고 몸은 상대의 걸음보다 빠르게 나아간다. 그가 모르지 않을 만큼 긴장감이 흐른다. 밥 산 그도 가만히 있는데 나는 왜 날 눈치 주는 걸까. 비슷한 상황일 때마다 어김없이 마음이 상했다. 분명한 이유는 몰라도 그와 자존심 대결을 하고 있었다. 그가 이유라기엔 그전의 모든 사람과 비슷한 기억이 떠올랐고 그래서 나는 연애가 불편하단 걸 알았다. 왜냐면 난 늘 상대들과 경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임신한 친구가 남편을 너무 좋아해서 아이 성별은 남편이 바라는대로였으면 한다는 간질간질한 말을 할 때,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으로 자존심이 상한 경험을 물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반문하는 무구한 표정의 친구를 볼 때 나는 내게도 마땅히 저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 덕분에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경쟁하는 태도가 편한 사람이란 걸 알았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경쟁인 게 자연스러운 사람 그게 나였다. 언젠가 아빠의 사랑은 성적순이란 말로 많이 미웠단 말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랑을 받은 나는 그 방식을 체화했다.      


연애가 시작되기 전 고백이라는 성취가 있는 썸이 흥미롭고,  합격이든 무엇이든 나와 너무 달라질 것 같은 연인에게는 그전에 차마 하지 못한 이별을 얘기하던 나를 떠올려본다. 나는 그런 사람이였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그런 사람일 수 있겠네.   


연인과 다시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았다. 음식이 이렇네 저렇네라고 말하는 와중에 뚝딱거리는 상대를 본다. 긴장되는지 습관적으로 얼굴을 꼬집거나 코를 만진다. 크게 웃지 않으면서 내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응시하는 그의 눈길을 다시 따라 밟는다. 나는 할 말인지 못할 말인지 확신할 수 없는 와중에 쉽지 않지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쓴다. 계산대 앞에서 위축되고, 마음 상하며, 너를 견제하고 경쟁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당장 안 그럴 상황보다 또 그럴 상황이 자주 있을 거고, 너여서 그런 건 아니며, 나 스스로도 모른 채 자존심을 이유로 연애를 관둔 적이 있던 것 같다고. 내가 아는 좋은 사람들은 그러지 않아서 내 마음에 사랑, 좋은 것만이 넘치는 것 같지 않지만 오늘 나는 너와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게 크고, 너도 그렇다면 우린 어제처럼 연인이겠다고.

  

오늘도 편하지 않지만, 밥을 사달라고도 말해본다.


사랑의 꿀이 넘쳐흐르는 포근한, 금 하나 가지 않은 단단한 사랑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대신에 조용하다 재잘거리고 웅성이고 왁자지껄한 주황, 보라, 노랑, 빨강, 분홍, 연두 색색이 섞여있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는 그런 다채로움. 나는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


이 고백은 얼마간의 힘이 있을까. 공기 중으로 사라진 소리만큼 가볍거나 까먹거나 한대도 솔직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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