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진 Apr 20. 2022

우리 아이를 칭찬해 주시렵니까?

춤추고 난 뒤의 고래까지 살펴볼 것!

 학원 강사 생활을 접고 칩거한 지 몇 개월 만에 과외를 시작하게 됐다. 과외는 실로 오랜만이다. 한 이십 년 만에? 세 명을 가르치게 됐고 그중 한 명은, 무려 대입을 위해 삼수 중인 남자 성인 아이였다. 몸의 나이는 스물둘이지만 수업 중 집중력은 부족했고 행동은 과잉이었다. 자기 몸에 대한 통제력이 초등학생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이러저러한 잔소리가 수업의 반을 차지하는 아이였다.

 

 한 달 정도 과외를 진행하고 나서 삼수생의 엄마와 상담을 진행하게 됐다.      

 나 : D가 생각보다 수업을 따라가는데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네요.

 D군의 엄마 : 우리 아이는 집중력도 부족하고 손이 많이 가는 아이지만, 그래서 칭찬과 격려가 많이 필요하답니다.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 중간중간 격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 : 네, 알겠습니다......     

 

 엄마의 요구를 정리하자면, 못 해도 우리 아이는 혼내지 말아 달라는 것이겠지. 그런데, 칭찬과 격려는 같은 걸까? 다르다면 또 어떻게 다른 건지, 대략난감이다. 그리고 칭찬과 격려 중심의 훈육이 그 목적을 다 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칭찬이 아이의 자기 효능감을 높여주고 지속적이고 만족스러운 학습효과를 가져온다고들 하는데, 개인적으로 저 자기 효능감이란 표현이 늘 맘에 들지 않는다. 인간이 자기 효능감을 느끼고 이를 성취감으로 치환해 인식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자기소외가 아닌지 의심케 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상대적으로 가르치는 인원이 더 적은 사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의 감정적 반응과 욕망은 더 쉽게 가르치는 사람에게 노출되고 감지된다. 학원이야 알다시피 선행학습이라는 동아줄(이라고 믿으셔야죠)을 던져두고 시험을 향해 짜인 빡빡한 진도표를 따라 아이들을 매질하며(메타포입니다) 가르치는 데 매진하는 곳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감정적 노출은 대부분 시험 성적과 과제물의 결과에 뒤따라 나타나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시험 결과가 나빠서 선생님이나 부모님으로부터 질책을 듣거나 반대로 좋은 점수에 대해 인정과 칭찬을 받는 상황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어디서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래도 아이에게 상처가 될 만큼 무자비하게 혼내고 체벌하는 일이야 요새는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개명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D군의 엄마처럼 칭찬은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학부모들은 요새도 여전히 많다(주로 초중등생 학부모들이긴 하지만).


 하지만 칭찬은 양날의 검이 분명하다.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에게 남이 아닌 자신의 성장을 확인해주는 결과물에 대한 칭찬은 충분히 제 몫을 다하겠지만 대부분의 칭찬은 (적어도 내가 경험한 사교육 현장에서는) 이 영역 밖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입 밖으로 내뱉어 온 숱한 칭찬의 말들은 끊임없이 등급과 상대평가의 프레임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렇다면 이런 칭찬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고 자존감이 높아졌을까, 하고 자문해 보면 대답은 아니다 쪽에 더 가깝다.  

    

 부모나 교사와 같은 자신보다 권위 있다고 여겨지는 타인으로부터의 칭찬과 인정에 빈번하게 노출된 아이들은 자신만의 내재적 가치보다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가치만이 절대적이라고 믿게 되기 쉽다. 말하자면, 당연히 주관적이어야 할 성취감이 칭찬과 인정이라는 외재적 평가에 휘둘리고 대체돼버리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발 양보해서, 과정이야 어찌 됐든 성취감을 얻는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일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늘 좋은 결과, 높은 점수만 얻는 아이들은 드물다. 어느새 점수가 자신의 가치 표현이라고 믿게 된 아이들은 성적이 떨어지는 상황을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 속에서만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되고 불안과 변명이 상수처럼 늘 따라붙는다. 그러니 아이들이 높은 점수와 칭찬을 담보해 주는 안전한 선택과 과정만을 점점 선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다.

 이런 태도는 결국 새로운 과정을 경험하기 위해 미지의 영역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도전을 꺼리는 뻔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도식을 내면화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좀 슬픈 일 아닌가?

    



 다소 극단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듯도 싶고, 칭찬에 과하게 노출됐던 아이라도 스타트업 CEO로 성장하지 말란 법은 없을 것이다. 교육 전문가도 아닌 일개 강사일 뿐인 내가 침소봉대하여 학부모의 별 뜻 없는 말에 예민보스처럼 군 걸지도 모르겠고. 그저 칭찬의 부작용을 경험칙으로 어느 정도 겪어서 알고 있는 강사 한 명이 다 큰 성인 아이에게 칭찬을 지어서 떠먹여야 하는 상황에 닥치고 보니 할 말이 좀 많았구나, 하고 이해해 주시길.     


 격려를 네이버 국어사전에 한 번 쳐봤다.

‘격려 : 용기나 의욕이 솟아나도록 북돋워 줌.’     


 칭찬이 좋은 점이나 잘한 점을 찾아 높이 평가하고 우쭈쭈 해 주는 거라면, 격려는 용기를 주는 거란다. 저 용기가 결과에 목매지 않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등을 두드려주는 말이라면, 격려를 오늘부턴 좀 더 연습해야겠다. 칭찬 없이 격려가 가능할지, 또 연기로 보이지 않을지 걱정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닥치고 격려하겠습니다, 어머님!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와 함께 격리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