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을쯤, 김포와 가까운 인천에 집을 마련했다. 직장과는 거리가 꽤 있었고 역세권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으며 치명적으로 빌라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지만, 그렇게 됐다. (내 판단으론) 쌌고 깔끔한 신축이었으며 달리기를 좋아하는 내게 안성맞춤하게 집 근처에 강을 따라 러닝코스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투자나 돈을 불릴 목적이 아닌 순전한 주거 목적으로 샀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상당히 걱정하는 주변 지인들의 이런저런 말들을 잠재우고 남은 설렘을 이삿짐에 더해 결국 이사를 감행했다.
집을 사기 전, 난 늘 자유롭고 떠날 준비가 된 영혼이라고 주변에 떠벌리고 다녔다. 실제로 틈만 나면 혹은 틈을 내서 시시때때로 비행기에 올라타기도 했다. 그래서 집에 대한 소유욕은 제로에 가깝다고 확신하던 내가 덜컥 집을 산 것이다. 그러니 그건 좋게 말해 파격적인 행보였고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앞뒤를 (거의) 안 잰 충동구매였던 셈이다. 십 년 넘게 늘 그랬던 것처럼 대충 월세로 그저 그런 집을 알아보다 살 만한 월세 집들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블링블링한 신축 빌라 ‘구경하는 집’에 우연히 들어선 순간, 아드레날린이 격하게 솟구쳤고 어느새 난 빌라 매매계약서에 홀린 듯 도장을 찍고 있었다. 이후 십 년 가까이 후회를 거듭한 그날의 내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낯설고 설명이 불가할 정도로 비이성적이기는 했다.
집에 대한 욕망, 주거를 넘어 온전히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단 그 간절함은 긍정적으로 보자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들이 허들 경주 같은 생애 주기표를 하나씩 모범답안처럼 채워나가도록 추동해준다. 일탈하지 않고 규범을 지켜나가며 준거집단의 일원으로서 집단의 욕망이 계속 확대 재생산되도록 굳건히 도와주는 집에 대한 소유욕은 심지어 일탈 또는 이탈한(척하는) 자들조차도 쉬 포기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초연하게 집에 대한 욕망의 부재를 선언하고 다녔던 나조차 깊은 무의식의 한구석에선 사실 집에 단단히 결박당해 있었던 셈이니 말이다.
집을 산 후 말했듯 끊임없이 맘이 불편했다. 알고 보니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매매를 한 것이었고, 빚까지 넉넉히 내서 산 집이었기에 매달 내야 하는 이자도 힘들었다. 거기다 여행을 포기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집을 비우게 되면 꼬박꼬박 나가는 그 이자가 아까워 그동안 대신 살 사람들을 구하는 내 모습도 구질구질함 그 자체였다. 동네 부동산 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한해 한해 오르기는커녕 떨어지는 빌라 가격에 기분이 처졌고, 이 모든 게 다 내가 자초한 일이란 게 더 화나기도 했다. 잘 정비된 리버사이드를 따라 경쾌하게 달리는 상상 속 내 모습은 가뭄에 콩 나듯 현실이 되었으며 그사이 눈치 못 챙긴 뱃살만 불어 터진 콩비지처럼 흉하게 늘어났다.
여러 사정이 있긴 했지만 집을 소유하는 즐거움보다 무거움과 갑갑함이 극에 달했을 때쯤인 재작년 가을, 대한민국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다들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던 바로 그때 난 집을 팔고 인천을 조용히 탈출했다. 그나마 조금씩 거래가 이루어지는 걸 보고 미련 없이 집을 판 것이다. 워낙 ‘꾼’들의 먹잇감이 되어 비싸게 사기도 했고 아파트가 아닌 빌라였던지라 가격은 샀을 때보다 오히려 떨어져 있었지만 그나마도 감지덕지라 생각해 살 때와 마찬가지로 충동적으로 집을 팔고 미련 없이 인천을 떠나왔다.
만약 친구들의 조언대로 입지 좋은 곳에 좀 더 무리를 해서 아파트를 장만했더라면 난 행복했을까? 글쎄, 장담할 수 없다. 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올랐을 리도 만무하고 올랐다고 한들 더 오른 곳이 분명 또 있었을 테니, 난 또 배가 아파 드러누워 버렸을 것이다. 결국 다른 누군가의 삶과 내 삶이 끊임없이 엉켜 돌아가고 있는 한, 그리고 물러서 관조하고 성찰하는 삶의 철학이 없는 한 난 계속 ‘집 고문’을 당하며 생을 낭비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고 인정하고 싶은 ‘나’라는 정체성, 말하자면 유유자적 홀로 경계 없이 살아가는 고독을 체화한 외톨이는 ‘집’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욕망이 투사된 정물 앞에서는 그저 오천만 개로 쪼개진 한 명의 평범한 대한민국이었던 것이다.
어느 청춘의 프로필
저당 잡힌 평균치의 가난(대출)을 적당히 나눠 짊어진 채 집에 대한 욕망을 불사르며 오늘도 부동산 전쟁의 맹렬한 전사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 소시민의 삶에 비춰 보면, 영화 <소공녀> 속 주인공 미소는 참으로 보잘것없다. 그녀는 삼십 전후의 지독히도 건조하고 느릿한 삶을 살아가는 가난한 민달팽이 청년인 것이다. 좀 더 촘촘하게 그녀의 빈곤 목록을 해부해보자.
우선 웹툰 작가를 꿈꾸는 하층 노동자 남친이 있고, 잠자는 것 외에는 쓸데없어 보이는 단칸 지하 월세방도 있다. 직업은 일당 사만 오천 원의 (성실하고 당당한) 가사도우미이며, 거추장스러운 소소한 불행까지도 있다. 한약을 매일같이 먹는다는 게 그것인데,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 속에서 하얗게 샌 머리로 주목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행복의 리스트가 그녀에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갑질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방주인-그 또한 계약서상으로는 임차인일 뿐이지만-, 요즘 것들 같지 않게 순수한 남자친구, 담배와 위스키를 사랑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 등이 은혜롭게도 모두 그녀의 것이다.
어릴 때 우리가(?) 애니메이션으로 즐겨 보았던 아동소설 <소공녀> 속 주인공 세라처럼, 미소는 결.단.코 쉽게 절망하는 법을 모른다. 절망 거리가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러한 것들이 삶에서 차지하는 우선순위가 우리들의 것과는 달라서일 것이다. 그렇기에, 세라처럼 환상을 통한 현실 부정의 전략도 취하지 않는다. 일용할 양식에 더해 사랑하는 그 녀석,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담배 한 갑만 허락된다면, 그녀에게 삶은 그 자체로 충만하다.
미소, 집과 작별하다.
어느 겨울의 한 날, 이미 충분히 가난한 미소에게 월세가 오르고, 담배값마저 배로 뛰는 상황이 닥친다. 관성이 덕지덕지 붙은 삶의 양태를 포기하지 못할 대부분의 우리들이라면, 더 잰걸음으로, 더 앞만 보며, 그리하여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이 불쾌한 사태를 해결하려 들 테지만, 미소는 전혀 다른, 창의적인 해결책을 보여준다. 우리가 생명의 동아줄처럼 붙잡다 못해 친친 스스로를 치감고 있는 '집'을 미소는 과감히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월세방도 쪽방도 없는 완벽한 민달팽이가 되어 길 위에 나선다. 집을 지우고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달팽이다운 느릿한 걸음으로, 생필품만을 챙겨 담은 여행가방을 질질 끌고 지인들의 집을 찾아간다.
대학 시절 밴드 활동을 함께한 선후배, 동기들을 찾아가 잠자리를 구걸할지언정 자신의 삶에 대해 은근한 멸시와 훈계를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당당하다. 집을 필수 선택 사항에서 자발적으로 지웠을 뿐인 그녀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없다. 그저 집으로 상징되는 자신의 성취를 과시하거나, 과시하게 될 가까운 미래를 위해 미소를 경멸하는 여자들이 있을 뿐이다. 또한 집과 결혼제도의 유기적 결합에 필요한 마지막 나사 하나쯤으로 여성을 소모하는 실수를 범했거나, 범할 예정인 가부장적 남자들이 또 다른 한쪽에 있을 뿐이다. 그 사이를 부유하는 미소의 발걸음이 조금씩 무거워질 때쯤, 반쯤은 그녀를 닮아 위로가 돼주던 남자친구도 집이라는 ‘성소’를 쌓아 올릴 밑천을 구하러 외국으로 파견근무를 신청한다.
이런 강퍅한 삶의 순간순간에서도 미소는 결코 위로를 잃지 않는다. 자기 연민의 위로가 아니라, 근근이 버틴 삶의 진창 속에서 길을 잃고, 구덩이 속으로 숨고만 싶어 하는 타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위로와 공감의 몸짓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짊어진 것들이 무겁고 잃을 것이 많은 집달팽이들이 결코 들려줄 수 없는 진심들을 말이다. 오늘의 처연한 집달팽이들에게 집 밖으로 뛰쳐나간, 혹은 궤도를 이탈한 이방의 피가 섞인 미소를 받아들이는 것은, 힘겹게 버티고 쌓아 올린 정체성이, 혹은 경계가 흐릿해지는 불안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소라는 존재가 들춰내는 우리들의 즉물성은 부끄럽고 속되지만 그 또한 힘이 세다.
그럼에도, 혹시 어느 순간 위로와 친절만을 편취당하고 집 밖으로 밀려난 미소의 뒷모습이 외롭고 슬퍼 보인다면, 이탈하지 못했으나 자유를 어느 한때 꿈꿨던 소심한 행성들이 자신의 무(이)탈을 아직은 부끄러워한 탓일 게다. 당신 혹은 내 안에서 사그라들고 있는 미소를 연민한 탓일 게다.
소확행을 거세한 삶
미소가 사라지고, 미소가 여행했던 사람들은 함께 모여 그녀의 이름을 무심한 척 입에 올린다. 사라지지 않는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사라진 미소의 부재를 견딜 수 있다는 듯,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1/n로 나누어 짊어진 공범의 무게쯤은 견딜 수 있다는 듯, 애써 미소 짓는다.
이후 영화에서 미소의 떠돌이 여행자의 삶은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하얗게 샌 머리와, 한강 변에 쳐진 텐트의 불빛으로 짐작할 뿐. 아마도, 고요해진 미소는 다시 떠날 준비를 했을 것이다. 초라하고 작은 집조차 쉬 허용치 않은 이 지구에서의 여행은 기착지의 역할을 다한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 어떤 비난이나 원망의 시선도 없이 늘 하던 대로 순간의 확실한 행복에만 집중하며, 용서할 대상도 구하지 않고, 스스로를 조용히 낯설고 이해 불가한 여행지에서 거둬들였을 것이다.
미소에게 작고 확실한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작다'에는 저 먼 곳의 크고 궁극적인 행복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고, 그 '크다'에는 작은 것들을, 희생해야 할 사소하고 초라한 어떤 것으로 탈바꿈하는 마법이 있다. 소확행 속 작은 행복들은 영속되지 않는, 진위조차 알 수 없는 순간의 미혹과 같은 행복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애써 숨겨둬야 한다. 크고 확실한 행복을 끝없이 갈망하면서도, 작고 확실한 행복들에 위안을 받는 삶이란, 미소에겐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로서는 그런 미소의 경계 없는, 등급을 나누지 않는 행복이 그저 멀고 낯설기만 하다.
미소는 분명 언젠가 다시 찾아올 것이다. 며칠째 비가 퍼붓는 장마철의 어느 날, 아니면 폭설이 쏟아진 추운 겨울날, 그 험한 길을 걸어와 비에 젖은 손이거나 꽁꽁 언 손으로 우리 집 방문을 노크할 것이다. 문을 열면 낮고 느린 목소리로 미소는 그녀의 여정이 어떠했는지, 얼마나 고달팠는지, 그래도 얼마나 또 행복했는지 이야기할 것이다. 이번만큼은 불가능한 삶이라고 그녀의 말을 끊거나 훈계를 늘어놓지 않고 그저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고 미소 지어 주자. 미소와 우리 삶에 대한 작은 예의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