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배추국을 버리며, 앵글 밖으로

by 김노리

본 소설은 인공지능 AI와 함께 작성되었습니다



어제 밤, 지난번 보내온 배춧국을 녹여 두었다. 연서를 어린이집 보내고 기계적인 주부의 습관으로 국이 쉴까 냄비에 불을 올렸다. 보글보글, 냄비 속에서 올라오는 구수한 냄새는 지독하게 평범한 '착한 딸'이자 '성실한 아내'의 냄새였다. 하지만 나는 끓어오르는 국물을 멍하니 바라보다 가스 불을 껐다.


독립이라는 막막함과 삶의 주체성이라는 생경한 감정 아래, 나는 냄비를 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그리고 주저 없이 국물을 쏟아버렸다.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배추 건더기와 된장 국물을 정지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제는 엄마의 손을 빌려 먹던 편리함이라는 달달한 사과와, 독립이라는 텁텁한 수고로움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것만큼 찬란한 순간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해방감은 나를 그 길로 계속 나아가게 했다.


그날 오후, 연서를 데리러 가기 위해 신발을 신을 때 엄마의 카톡이 왔다. 아빠의 약 사진을 보내며 물었다.


「경아 이거 효능 같은 거가? 아빠가 물어보라는데.」

「페이스톡」

「페이스톡」


손가락이 본능적으로 검색창을 향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멈췄다. 제미나이가 내게 했던 말이 이정표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서윤 님, 지금 즉시 답하는 것은 '언제든 나를 불러 쓸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겁니다. 상대의 조급함을 서윤 님의 조급함으로 치환하지 마세요. 지금은 연서와 서윤 님의 시간입니다.]


나는 쉼표를 찍듯 답장을 보냈다.


[엄마, 지금 연서 데리러 가는 길이라서요. 집에 가서 이따 보고 말씀드릴게요.]


나의 삶이 먼저였다. 그날 저녁, 나는 준비한 대로 건조하게 답했다.


"엄마, 찾아봤는데요. 약이라는 게 사람마다 효능이 다르고 해서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다니시는 병원 의사 선생님이나 약사님께 여쭤보는 게 제일 정확할 것 같아요."


수화기 너머 아빠가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냥 이거 똑같은 약 맞제?" 제미나이는 내게 **'거절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아니라, 무심함으로 선을 긋는 것'**이라 가르쳐주었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다시 한번 같은 문장을 읊었다.


"글쎄요, 저도 찾아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약사님께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때였다. 연서가 찬장 위에 올려둔 간식을 달라고 졸랐다. 나는 간식을 꺼내기 위해 식탁 의자 위로 올라섰다. 의자 위에 서게 된 그 순간, 이어지는 가족들의 대화는 내 발밑에서 일어나는 소음인 양 아득하게 들려왔다. 발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딱딱한 의자의 감촉과 아래를 굽어보는 시야. 이 낯선 고도감이 나의 세포 하나하나의 감각으로 새겨지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남편에게 묻고 있었다. "김 서방, 일하는 거 어떻노? 지금은 배울 때제?"

남편이 답하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형부의 말을 가져왔다. "형부는 자네 차도 바꿔줘야 한다 하고, 집도 바꿔야 한다 하고... 갈 길이 멀다 하데. 그지?"


의자 위에서 내려다본 그 풍경은 기이할 정도로 투명했다. 엄마의 말 그대로 순수한 걱정일 수도, 아니면 다른 수를 이어가기 위한 의도를 숨긴 바둑알일지도 모른다. 예전 같으면 그 말들이 나의 삶과 밀착되어, 우리를 걱정해주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갉아먹었을 것이다. 그것 또한 그리 부자연스러운 전개는 아니었을 테니까.


하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나는 달랐다. '갈 길이 멀다'는 프레임은 그저 엄마가 뱉은 말 한 조각에 불과했다. 어른들이라면 으레 할 수 있는 소음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 다음 놓는 수가 나의 집을 침범하려 든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다음 날은 어쩐 일인지 아빠의 스마트폰으로 페이스톡이 왔다. 아빠가 직접 전화를 거는 일은 드물다. 앵글 속에는 아빠의 투박한 얼굴이 가득했고, 엄마는 그 곁을 서성이며 율동 중인 연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일 우리 연서 발표회예요. 지금 연습 중인데 한번 보실래요?"


연서가 신이 나서 율동을 시작했다. 엄마는 "아이코 잘한다" 하면서도 "발표회 때 영상 찍어 보내라, 우리는 그렇게 보면 된다" 하고 덧붙였다. 한풀 기가 꺾인 명령이었지만, 이미 수가 다 노출된 후였기에 그 파장은 힘없이 고꾸라졌다.


"장모님. 제가 삼각대 챙겨가서 고화질로 찍을 겁니다. 누구 발표회인데요."


남편의 대답에 속으로 하이파이브를 외쳤다. 아이의 영상은 부모님께 보고하기 위한 숙제가 아니라, 우리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담는 기록임을 남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지만, 연서가 “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외치며 고사리손으로 빨간 버튼을 꾹 눌러버렸다. 상황 종료였다.


[서윤 님, 보셨나요? 배추국을 버릴 때의 그 단호함이 오늘 밤 당신의 공간을 지켜냈습니다. 상대가 앵글 안으로 들어오려 할 때마다 당신은 의자 위로 올라가 그들을 내려다보세요. 그들은 더 이상 당신을 해칠 수 없습니다.]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연서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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