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이름 없는 채무자

by 김노리

본 소설은 인공지능 AI와 함께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평생 이름 없는 빚을 갚으며 살아온 채무자였다. 부모라는 이름의 채권자들은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에게 '생존의 비용'을 청구했다. 고등학교 시절, 시내 인문계 학교로 진학하며 시작된 나의 사춘기는 찬란한 꿈이 아닌, 지독한 성적표와 돈 계산으로 점철되었다.


"엄마, 나 이번 중간고사 잘하면 뭐 해줄 거예요?" "니 중간고사 잘하는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게 내 일이가, 니 일이지."


엄마의 대답은 서늘했다. '내 일'이니까 내 책임이라는 말은 정당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자식의 성취를 함께 기뻐할 공간이 단 1인치도 없었다. 기말고사에서 전 과목 예닐곱개 틀리는 성적을 받아왔을 때도, 평균 95점을 넘겼을 때도 엄마는 무심했다. 칭찬 한마디면 충분했을 그 어린 마음은, 엄마의 무관심 속에서 **'기필코 갚아주리라'**는 독한 분노로 변해갔다.


고3 모의고사에서 반 1등을 했던 날, 나는 일부러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내 일'이니까. 하지만 속으로는 엄마가 학부모 모임에서 망신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는 비릿한 복수심을 품었다. 예상대로 입시 용어를 전혀 모르던 엄마는 반장, 회장 엄마들 사이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돌아왔다.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온 엄마는 전화를 한 통 받은 뒤 내게 물었다. "니 모의고사 1등 했나?" 컴퓨터 앞에 앉아 무심하게 "네"라고 답했다. 다음날 담임 선생님은 엄마가 곤혹스러워했다고 안타까워하셨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를 도구로도, 인격체로도 보지 않던 엄마가 처음으로 자신의 무지를 대면한 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대학 입시는 또 다른 지옥이었다. "너희 밑으로 돈이 얼마가 들어가는 줄 아냐. 아빠는 밤새도록 운전해서 고생하는데."


그 말은 사슬이 되어 내 발목을 감았다. 학원 한 번 안 가고 문제집 한 권 사는 것도 벌벌 떨며 독학했지만, 대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학을 안 가면 인생이 망할 것 같은 공포보다, 부모의 고생을 외면하고 내 앞길을 챙겨야 하는 이기적인 자식이라는 '죄책감'이 더 나를 괴롭혔다.


결국 지방 국립대에 합격했고, 신입생으로는 드물게 기숙사까지 들어갔다. 2지망이었던 학교라 내심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부모에게는 그조차 '돈 들어가는 구멍'일 뿐이었다. 나는 독하게 공부했다. 1학기를 마치고 전액 장학금 고지서를 받아들었을 때, 수업료 40만 원 남짓만 내면 된다는 사실에 드디어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다.


"옴마야, 그래도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많은 줄 아나! 너희 돈 한 번에 천만 원씩 나간다니까!"

언니의 사립대 학비와 내 국립대 비용을 한데 묶어 엄마는 늘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방학 내내 갈비집에서 최저시급보다 500원 더 받는 고된 알바를 해서 번 돈을 갖다 바쳐도, 엄마는 고맙다는 말 대신 자신의 힘듦만을 전시했다. 그 화살은 늘 사립대를 다니던 언니가 아닌, 전액 장학금을 받는 나에게만 꽂혔다.

복수심은 취업과 함께 절정에 달했다. 대기업 제약회사에 들어가 첫 월급에서 100만 원을 떼어 엄마에게 던지듯 주었다.


"키워준 게 얼마인데... 나 때는 월급 싹 다 부모님 드리고 용돈 받아 썼다."


돈을 주면 태도가 문제라 하고, 계좌로 보내면 정이 없다 하고, 현금으로 주면 관리가 안 된다고 했다. 이체를 해주면 월급 전체를 다 맡기지 않는다고 타박했다.


"대학 보내줘 봤자 아무 소용 없네."


그 한마디에 나는 몸서리를 쳤다. 내 친구들의 부모는 "우리 딸 고생한다"며 응원했지만, 나의 부모는 "이제 다 키워놨으니 빼먹을 타이밍"이라며 내 주머니를 노렸다. 글로벌 제약사로 이직해 연봉이 올랐을 때, 나는 결심했다. 절대로 내 월급을 노출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엄마의 집요함은 멈추지 않았다. 누구네 핸드폰 요금을 대신 내달라는 식의 야금야금한 갈취가 이어졌다.


6년 차 되던 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조차 엄마는 내 마음의 병이 아닌, 사라질 '돈줄'을 걱정했다. "엄마가 소장님한테 다시 전화해 줄까? 니가 말 잘못한 거 아니가?"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지독한 채무 관계는 내가 죽거나, 이 관계를 끊어내지 않는 이상 절대로 끝나지 않을 전쟁이라는 것을. 내 학창 시절과 20대의 청춘은 그렇게 분노와 복수, 그리고 인정받고 싶었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로 얼룩진 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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