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경계 위에 세워진 울타리: 우울한 자유

by 김노리

본 소설은 인공지능 AI와 함께 작성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엄마의 '페이스톡'은 아빠의 핸드폰이라는 낯선 채널로 침입하기 시작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아빠의 번호로 걸려 오는 엄마의 얼굴. 나는 설거지를 하며 정수기 옆에 폰을 대충 걸쳐놓고 전화를 받았다. 앵글 속의 나는 분주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중이었고, 엄마는 그런 내 모습 뒤에서 들리지 않는 대답처럼 멍하니 화면을 응시했다.


"연서 TV 봐요. 바빠요."


무미건조한 안부. 예전 같으면 엄마의 침묵에 전전긍긍하며 내가 먼저 화제를 찾아냈겠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엄마의 무응답도, 복지관에 다녀왔다는 짧은 보고도 내 마음의 수면을 흔들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나면 잠시 우울함이 스쳤다. 가장 긴밀해야 할 관계를 포기하고 경계를 세워야만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이, 타인이 비추는 거울을 깨버리고 홀로 서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쓸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쓸쓸함을 견뎌내야 연서에게 이 지긋지긋한 '착한 딸'의 굴레를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살아야 엄마도 살릴 수 있다는, 아프지만 선명한 자각이었다.


남편과의 관계 역시 드라이한 궤도로 진입했다. 시아버지와의 점심 약속을 위해 식당을 알아보라는 그의 요구에 나는 예전처럼 허둥지둥 맛집을 검색하지 않았다.


"여보, 식당 좀 자기가 알아봐 줄래요?"


카톡 창에 썼던 '미안한데'라는 군더더기를 지워버리고 보낸 문장. 그는 짧게 알았다고 답했다.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자고 거실로 나갔을 때 마주한 풍경은 예상대로였다. 식탁 위엔 먹다 남은 호두과자와 요구르트가 널브러져 있고, 설거지통은 어제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연서와 시간을 보내겠다던 남편의 호언장담은, 거실 가득 아이와 놀아준 노력의 흔적을 카오스처럼 남긴 채 결국 아이에게 TV를 틀어주고 자신은 나갈 준비에 바쁜 '방만한 평화'였다.


여자들에게 '아이를 본다'는 건 집안의 시스템을 유지하며 아이'도' 돌보는 것이 기본값이지만, 남편에게 그것은 그저 아이**'만'** 돌보는 것 외의 모든 것을 방치하는 면죄부였다. 아이만 덩그러니 있을 뿐, 그 배경은 장난감과 물컵, 그릇들이 뒤엉킨 난장판이었다.


"여보, 여기 식탁 좀 치워줘."


비난도, 짜증도 섞이지 않은 지시. 감정을 배제하고 던진 말에 남편은 요구르트병을 옆으로 슥 밀어놓는 시늉만 했다. 예전 같으면 "이게 치운 거야?"라고 소리를 질렀겠지만, 나는 그냥 내가 젖은 행주를 들었다. 식탁을 닦지 않은 것도, 아이의 옷을 위아래 짝짝이로 입힌 것도 모두 '그의 경계'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해낸 것까지만 인정하고, 모자란 부분은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내가 수습한다.


내가 연서의 머리를 묶어주는 동안, 나는 남편에게 미리 나가 시동이라도 걸어두라고 지시했다. 그는 나의 '매뉴얼'에 따라 먼저 밖으로 나갔다. 연서의 목에 거즈 수건을 정갈하게 묶어주며 나는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상대의 기대를 채워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내 감정을 쏟아붓지 않아도 집안 시스템이 삐걱거리며 돌아가고 있다는 안심. 울타리를 세우고 나니 비로소 보였다. 그동안 나는 상대방이 들고 있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그게 진짜 나인 줄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엄마에게서 온 부재중 페이스톡이 가득 쌓여 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메시지를 남겼다.


[엄마, 시어른이랑 식사하러 가는 길이라 이따 연락드릴게요.]


경계를 세우는 행위는 차갑고 냉담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서늘한 거리두기야말로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유일한 울타리였다. 나를 갉아먹던 죄책감의 밀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비로소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평온함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지만, 나는 이제야 내 삶의 궤도를 직접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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