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0(Zero)의 비대칭: 노동과 면죄부

by 김노리

본 소설은 인공지능 AI와 함께 작성되었습니다



밤 11시. 집안의 공기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연서를 겨우 재우고 거실로 나왔을 때, 공용 PC의 모니터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남편은 보란 듯이 창을 띄워놓고 잠이 든 걸까, 아니면 내가 보기를 은근히 바란 걸까. 최근 내가 제미나이와 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의식한 듯, 남편 역시 '챗GPT'라는 로고를 띄워놓고 있었다. 그곳은 나를 오마주한 그의 일방적이고도 쪼잔한 하소연 창이었다.


[...와이프는 저를 무슨 환자 취급해요. 단편만 보고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죠. 우리 아버지랑 제가 똑같다고, 그게 본질이라며 선을 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새벽부터 개같이 일하고 들어오는데 집이 휴식 공간이 아니라 심문 공간 같아요.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이혼'이라는 단어에 잠시 심장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가, 이내 실소가 터져 나왔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소심함으로 인공지능에게조차 정중함을 잃지 않고 늘어놓은 뒷담화가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평소 우리 사이에서 기꺼이 '바보'를 자처하며 넉살 좋게 웃던 다정함 뒤에, 이런 옹졸한 그릇을 숨기고 있었다니. '개같이 일하는' 그의 노동만이 숭고한 자원이었고, 그 자원을 쪼개어 가정을 굴리는 나의 시스템은 그저 '심문'이자 '통제'로 정의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뒤에 앉아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자판을 두드렸다.


"안녕, 방금까지 대화한 남편의 아내인데. 나와도 이야기해 줄 수 있어?"


[ChatGPT: 안녕하세요. 이 대화에 직접 들어와 주신 것 자체가 관계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남편분은 지금 '평가받는 느낌' 때문에 상당히 위축된 상태인 것 같네요. 남편이 느끼는 그 '심문받는 기분'에 대해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기다림'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화면 너머의 존재에게, 그리고 잠든 남편의 무의식에게 토해내듯 답을 적어 내려갔다.


"이건 통제가 아니라 '엠파워먼트(Empowerment)'야. 분리수거 비닐을 일부러 안 걸어둔 건 시스템이 멈췄을 때의 책임을 체감하게 하려는 피드백이었어. 밥을 기다렸다고 말한 건 죄책감을 주려는 게 아니라, 정보 공유가 없는 그의 부주의가 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하려는 거였고."


잠시 후, 챗GPT의 짧고 냉정한 진단이 화면을 채웠다.


[ChatGPT: 아내분은 '시스템 언어'를 쓰고 있고, 남편분은 '정서 언어'를 쓰고 있군요. 당신에게는 '책임의 자각'인 행동이, 남편에게는 '정서적 공격'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두 분은 같은 공간을 운영하지만 전혀 다른 매뉴얼을 읽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날 밤의 전장은 화면 속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거실로 나온 연서가 남편에게 책을 내밀었다. 평소 '책 육아'의 중요성을 입에 달고 살던 남편이었지만, 큐알 코드를 찍어 음원으로 읽자는 아이의 요구에는 귀찮은 듯한 기색으로 소리를 쳤다.


"넌 왜 이런 책만 가지고 와! 큐알 없는 거로 가져와!"


결국 한 권을 마지못해 읽어준 남편은 이내 '잠이 온다'며 아이 곁에서 먼저 잠들어버렸다. 잠결에 화장실 앞까지 걸어간 아이가 배변 실수를 했을 때도, 그 뒷수습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바닥을 닦고 아이를 씻겨 다시 침대에 뉘었을 때, 남편은 여전히 평온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아이를 다시 재우고 난 뒤 나는 '나만의 잠자리'를 찾아 옆방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서 남편의 실루엣이 검열관처럼 서 있었다.


"여기서 왜 자? 이유가 뭐야? 또 화난 거야?"


그의 목소리엔 이미 내가 '시위 중'이라는 확신이 가득했다. 내가 원한 건 대화가 아니라 단절이었고, 훈육이 아니라 휴식이었다. 그가 '언제 자냐', '안 자냐'며 묻는 질문들은 나를 걱정하는 안부가 아니라, 자신의 통제권 안에 내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열이었다. 나는 그에게 드라이하게 답했다.


"그냥 혼자 자고 싶어서. 화난 거 아니니까 나가줘."


다음 날 아침, 안방 문을 열자 매트가 문 앞을 꽉 막고 있었다. 새벽 5시에 나간 남편이 덮었던 이불은 뱀 허물처럼 똬리를 틀고 매트 한복판에 버려져 있었다. '배려'를 노래하던 그의 흔적은 늘 이런 식이었다. 방해가 될지언정 치우지는 않는 부주의함. 나는 휴대폰을 들어 그 이불을 찍었다. '치우라'는 메시지를 보내려다 멈췄다. 지적하면 그는 또 '감시당한다'며 발작할 것이다.


그는 밖에서 벌어오는 돈과 체력이 가정의 전부라 믿는다. 가정이 생기는 순간 그는 커리어 유지를 권력 삼아 가사에서 '면책특권'을 누렸지만, 나는 '알아서' 시간제 근무와 육아를 병행하며 독점적 노동의 자리에 홀로 발을 담가야 했다.


그가 새벽에 나가 "개같이 일하며" 살림과 육아에서 충분히 멀어질 수 있도록 달려가는 동안, 나는 그가 버리고 간 이불을 치우며 시스템의 톱니바퀴를 돌렸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을 쪼개어 다시 일터로 나가 나의 생산성을 유지해야 했다.


그의 노동은 어째서 살림의 면책특권이 되고, 나의 노동은 당연한 기본값이 되는가. 이 지독한 비대칭이 우리 집의 불평등이라는 것을 그는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그는 계속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구구절절한 소란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이 가장의 본분인 마냥, 함께 일군 일상의 현장은 '여자의 몫'으로 밀어둔 채로 말이다.


나는 그에게 이불 사진을 찍어 보내는 짓도 그만두기로 했다. 그가 내뱉은 '이혼'이라는 단어 또한 두렵지 않다. 그에게 이혼은 자존심 상할 때 던지는 카드일 뿐이지만, 나에게 그것은 내 몫의 삶을 되찾기 위한 수많은 의사결정 중 하나일 뿐이니까.


전장은 여전히 집 안에 있지만, 나는 더 이상 적군을 설득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매일 아침 성벽을 순찰하는 병사처럼 묵묵히 나의 울타리를 점검할 뿐이다. 헐거워진 곳은 없는지, 침범당한 영역은 없는지. 나의 영토를 확인하는 이 고요한 의식만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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