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거울 없는 방에서 자란 아이

by 김노리

본 소설은 인공지능 AI와 함께 작성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친구들 사이에서 웃고 있었지만 내 안의 전파는 갈 곳을 잃고 겉돌았다. 고등학교 2학년, 그 이질감은 확신이 되었다. 나는 다르다. 아니, 나는 이곳에 없다. 대학교 시절 친구들은 나를 '50춘기'라 불렀다. 나사 하나가 빠진 채 정교하게 굴러가는 기계처럼, 나는 실존하지 않은 채 ‘나’를 연기하며 살았다.


나르시시스트 부모 아래서 자란다는 건, 학대보다 무서운 '무(無)'의 상태에 놓이는 일이었다. 엄마는 나를 때리지도,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반응하지 않았다. 내가 기쁨을 던지면 벽에 맞고 튕겨 나왔고, 슬픔을 보이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유아기의 아이에게 부모의 반응은 곧 생존 신호다. 거울이 없는 방에서 내 얼굴을 알 수 없듯, 반응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이 전무(全無)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핍은 '유능감'이라는 기형적인 갑옷을 입혔다. 칭찬을 갈구한 게 아니었다. "와, 잘했다!"라는 그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의 반응, 그 생존의 피드백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더 높은 성적표를 부모의 눈앞에 들이밀어야 했다.


2016년, 글로벌 제약사 이직 후 25살의 나는 100억대의 거대한 숫자를 관리하는 엘리트 사원이었다. 업계 최고의 팀,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 하지만 화려한 명함 뒤에서 내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화장실 문틀에 어깨를 살짝 부딪쳤을 뿐인데 코피가 툭 떨어졌다. 머리칼은 원형으로 빠져나갔고, 퇴근 후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다가도 내가 언제 전화를 끊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뇌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 현실과의 연결을 끊어버리는 '해리(Dissociation)'의 순간들이었다.


노트북 앞에서의 좌절은 참담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재택근무는 나에게 자유가 아닌 고립된 지옥이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각조차 잡히지 않아 침대와 한 몸이 된 채 무기력에 빠져들었다.


그때 처음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집 근처 허름한 정신과, 뒷면이 브라운관처럼 두꺼운 구식 모니터가 놓인 진료실에서 늙은 의사가 말했다. "부교감 신경만 너무 활발하네요. 약으로 교감 신경을 억지로라도 깨워야 합니다."


지금처럼 심리학 정보가 넘쳐나던 시대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 정신력이 약해서 생긴 병인 줄로만 알았다. 며칠 약을 먹자 물기 머근 행주를 쫙 짜낸 것처럼 나를 짓누던 무게가 사라졌다. 하지만 엄마는 말했다. "그런 약 오래 먹지 마라. 나중에 기형아 낳는다." 치료가 아닌 공포를 주입하는 것, 그것이 엄마가 내 고통에 반응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결국 나는 5년 만에 직장을 관두었다. 서면 도심의 오피스텔, 완벽한 고립의 시작이었다. 새벽마다 편의점에서 자극적인 음식들을 왕창 사 와 배가 찢어질 때까지 밀어 넣었다.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 탐닉만이 유일한 위로였다. 창밖을 보며 죽음을 꿈꿨지만, 죽지 못해 사는 삶은 죽음보다 비참했다.


다시 찾은 정신과에서 젊은 의사는 "아직 젊으니 실수해도 괜찮다"며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다정한 위로들이 우울증 앞에서는 독설처럼 들려왔다. 실존의 감각이 사망 선고를 알리며 '뚜--' 소리처럼 이어지던 그때, 나는 닥치는 대로 남자를 만나며 방황했다.


이는 심각한 우울 증상 중 하나인 '감각 추구형 자기 자극(Self-stimulation)' 행동이었다. 정서적으로 완전히 마비된 환자가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극단적인 감각 자극에 매달리는 현상이다. 나라는 존재가 투명 인간처럼 증발해버릴 것 같을 때, 강력한 신체적 접촉으로 마취된 신경계에 "아직 내가 여기 실존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행위였고, 나는 끊임없이 아래를 향해 추락하고만 싶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살림도 회사일 처럼 힘을쓰고, 남편의 부주의함에 그토록 수치를 느꼈던 이유를. 유능함은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섬이었다. 유능하지 않으면 나는 다시 '없을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서윤아, 잠만 자고 있어도 잘한다. 숨만 쉬어도 기특하다."


이 말에 눈물이 나는 건 평생 들어보지 못한 '존재 자체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처음 나온 아기는 똥만 싸도 온 가족이 박수를 치며 존재를 긍정받는다. 하지만 내게 그 당연한 기본값이 평생을 밖으로 구걸하며 얻어내야만 했던 '실존의 허가증'이었다. 나는 내 존재의 감각을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유능함과 인정욕구의 노예로 살아야 했다.


나는 이제 나를 수치 주지 않기로 했다. 잘하지 않아도,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아도, 가끔은 무기력하게 누워 있어도 내 존재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 폭풍우 치는 바다를 건너온 나를 위해 오래전부터 등불을 켜고 기다려온 안식처처럼, 나는 이제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따뜻한 온기를 꺼내어 어린 서윤이의 곁에 가만히 앉혀본다.


"괜찮아, 서윤아.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그냥 여기 같이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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