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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봉구 Aug 07. 2023

노란 신호등이 켜지면 무조건 멈춰라

전립선암 치유기 02

180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암 진단을 받은 뒤부터 뼈로 전이된 암세포가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

“선생님, 약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완치되나요?”

“암 치료에 완치란 없습니다!”

초등학생 같은 질문을 비웃기라도 하듯, 잠깐의 침묵을 깨며 무거운 공기를 흔들며 날아와 기어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비수에 찔린다면 이런 느낌일지도 몰라!’하며 속울음을 울컥 쏟아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던 동공과 기계음 같은 차디찬 음성으로 차분하게 암 선고(?)를 내린 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 마음에 환자에 대한 애정과 연민 같은 게 없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 말의 참뜻을 헤아릴 지혜가 그때는 없었지만 180일이 지난 후의 내가 그 의사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14일! 암이라는 터널에 진입해서 어둠에 익숙해지는 데 걸린 시간. 그 기간 동안 참 많이 힘들고 불안했다. 때때로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견디기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한편 그 공포가 없었다면 맨발걷기를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두 살 터울인 막내누이는 한참 동안 울음을 토해냈고, 아내와 두 딸은 나보다 더 깊은 불안을 숨긴 채 예민해진 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출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도서물류 사업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시골이 고향이지만 시골살이를 그 누구보다 싫어했던 아내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내려가자고 했다. 이러 저런 고민과 불안 그리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2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래! 나도 박성태 할아버지처럼 살 수 있어! 그 분은 나보다 PSA 수치가 두 배나 높잖아. 맨발로 걸은 지 6개월만에 완치되었다니, 나는 그 분의 반 정도밖에 안 되니… 3개월이면 완치될 수 있는 거잖아!”

비과학적이었지만 뜬금없는 희망이 생겼다. 맨발로 걷기 시작한 그날 밤 수십 년 만에 처음 숙면을 취했고, 아침의 황금변은 얼마만이었는지… 그날 이후 맨발은 내게 희망이 되었고,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이런 저런 고민도 중단하기로 했다. 모든 것을 암을 치료한 후로 미뤘다. 남편 식사 챙기랴 남편이 중단한 일을 대신하랴 몸이 두 개라도 부족했던 아내에게 “3개월만 버텨 줘! 3개월이면 완치될 수 있어!”라며 짐을 싸들고 충북 영동으로 내려갔다. 강원도만큼 깊지는 않았지만 큰누님의 주말농장 컨테이너에 짐을 풀고 한 달! 맑은 공기 가득한 숲속에서의 한 달동안에도 맨발걷기를 멈추지 않았고, 몸무게가 무려 10kg이나 빠졌고, 혈색이 돌아왔다.

‘그래! 암은 사형 선고가 아니라, 내 몸이 내게 준 선물이야! 이제부터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신호야!’

일상을 바꾸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죽음 앞에서는 어려울 것도 없었다. 50년 이상 살아온 삶의 방식과 반대로 살면 되는 일이었다. 그간 익숙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이별했다. 유튜브, 술, 커피, 빵, 치킨, 고기, 우유, 달걀을 끊었다. 오로지 채식과 현미로만 밥상을 차려냈다. 토마토와 표고버섯, 마늘을 매끼니마다 챙겨먹었다. 밥상을 차리는 일도 설거지도 내 손으로 직접 했다. 화도 덜 내려고 노력했다. 어쩌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면 곧바로 신발을 벗고 흙을 찾아 걸었다. 호흡이 돌아오고 심신이 안정되었다. 

아, 또 바뀐 습관 하나! 노란 신호등이 켜지면 재빨리 사거리를 통과하거나 머뭇거렸던 운전습관도 바뀌었다. 이제 노란신호등이 켜지면 ‘무조건 멈춘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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