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변기가 고장 난 날

칼럼 또는 에세이 # 1

by 이로

변기가 고장 났다. 건물 주인에게 전화하니까 두 시간쯤 뒤 방문한다 했다. 그 두 시간 동안 괜히 고쳐보겠다고 변기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 물탱크를 열어 이것저것 만져보고 살펴봤다.


문득, 학창 시절에 냄새나지 않는 수세식 변기를 최초로 개발한 사람에 대해 조각 글을 읽은 게 떠올랐다. 그는 바로 시계 제조자이자 수학자였던 알렉산더 커밍. 1775년, 그는 밸브로 수도를 여닫아 일정 수량과 수압을 조절해, U자 모양으로 구부린 배수 파이프에 물을 일부러 고이게 해 배수관에서 올라오는 악취와 세균을 막고, 대기압으로 인해 물리적 높이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액체가 이동하는, 즉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해 오늘날 수세식 변기를 발명했다. 수세식 변기가 없던 시절, 재래식 화장실 형식 ‘뒷간’을 사용하거나, 다른 문화권은 길거리에서 대소변을 누는 일에 아무도 문제의식을 못 느끼던 시절도 있다. 거리에 배설물 냄새가 낭자했으며, 배설물에서 나온 세균에 전염병을 얻어도 그 출처조차 몰랐던 시대는 생각보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는 알렉산더 커밍이라는 위대한 인물 덕에 이제 집안에 뒷간을 들여놔도 아무런 위생에 위협이 없는, 그런 위대한 신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연장한 인류의 평균 수명이 과연 얼마일까? 운 좋게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던 작가들은 세균 전염으로 병들지 않고 좀 더 살아내 얼마나 더 많은 작품을 탄생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줬을까? 마찬가지로 이 수세식 변기 발명을 단지 ‘냄새나는 뒷간 해결’로서 바라볼 게 아니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키는 일로 해석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화석연료 사용과 지나친 환경파괴 때문에 지구온난화를 넘어서 지구가 끓고 있다(global boiling, 2023). 이번 여름은 정말 끝내주게 더웠다. 더군다나 앞으로 여름은 더 뜨거울 예정이란다. 그런 뉴스 보도가 왜 이렇게 무책임하고 냉소적으로 느껴지는지. 인간의 허영과 끝없는 욕심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며 동족 혐오하는 것도 힘들 만큼 더워 지쳤다. 그러다 보니 세계 최고 원자력 발전 기술을 보유한 한국은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이가 시린 추운 여름을 지내다 땡볕 아래 길거리를 걷는 일을 마치 벌 받는 것처럼 다녀도 참 잘 견뎌낼 참을성 많은 훌륭한 민족이라는 생각에 미치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는 화석연료 대부분을 태워 전기를 만들고, 보일러를 켜는 세상에 살고 있다. 더군다나 이제는 SNS ‘좋아요’와 조회수, 일상이 바쁜 현대인이 지우지 못한 스팸 메일과 무궁한 온라인 쇼핑몰 덕에 데이터센터를 지어야 하는 부지를 물질세계에 따로 마련할 만큼, 전기동력에 사활을 거는 지경에 이르렀다. 활활 타오르는 화석연료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엔트로피 증가 법칙에 따라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방출해 세상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고, 환경은 급속도로 망가져가고 있다.


누구나 걱정하지만, 누구나 외면하는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거대한 코끼리’ 같은 답도 없는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고민하다 문득, 고장 난 우리 집 변기가 새삼 너무나 신기했다. 정말 대단한 물건이다. 급등한 전기세와 가스보일러 비가 골치인 요즘, 어쩜 이렇게 가성비 좋고 대단한 발명품이 있느냐는 말이다. 필요한 전기동력이 제로라니! 과히 신의 물건 아닌가?


그렇게 한번 시작한 ‘변기’에 대한 내 고찰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만약에 이 수세식 변기 발명보다 먼저 전기를 발명해 지금처럼 석유와 석탄을 태우고, 원자를 폭발시키는, ‘에너지 과부하 세상’이 먼저 인류를 지배했다면, 우리는 불행히도 아직도 요강을 쓰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이 요강은 당신의 배설물을 밀봉하기 위해 요강 내부를 진공상태로 만들어 가열해 수분을 증발시키고, 증발한 수분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기 위해 최첨단 전기 모터가 장착되어 있으며, 그 모터를 충전하는 배터리 단자가 있었을 것이다. 추가로 고객 취향에 맞춰 무드등 기능까지 겸비한 일명 휴대용 ‘스마트 요강’이다. 그리고 이 스마트 요강은 스마트폰과 연동돼, 내가 현재 휴대한 배설물량을 체크할 수도 있고, 내용물 성분 분석을 통해 실시간으로 건강 상태를 측정해 스마트워치로 확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스마트폰에는 기본 메신저 아이콘 자리에 변기 아이콘이 가장 1순위로 설정되어 있을 거다.


일명 반도체 스마트 요강! 그런데도 악취는 어쩔 수 없어서 향수와 요강 악취를 혼합해 일명 ‘패션’으로 소화하는 문화까지 생겼을지 모른다. 아, 상상만 해도 당장 그 스마트 요강을 던져 버리고 싶다.


이쯤 되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최선’이라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한 거 같다. 그러니 너무 자만하지 않는 게 좋겠다. 비단 과학기술 영역에서만 필요한 생각은 아니지 싶다.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우리는 지나치게 새로운 것, 새로운 자극에 중독된 채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로 이렇게 급히 발전된 지난 몇 년 보다, 훨씬 더 오래 인류는 생존을 유지해 왔다. 그러니까 배설물과 함께 길을 거닐어도 마냥 즐겁기만 했던 비범한 적응력을 가진 종족이다. 그런데 어찌 미디어 노출과 중독에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는지. 쉽게 말해서, ‘좋아요’가, 내 피드 조회수, 구독자 수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좋아요’ 개수가 당장 내 기관지에 스며 패혈증을 일으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공지능 서비스가 추천하는 오늘의 점심 메뉴가 당장 녹아 없어지는 극지방 빙하보다 중요해 보이는 주객전도된 세상이라니! 아찔하다.


‘고장 난 변기’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1700년대에 다녀온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 뒤로 이 변기와 하수도 시설뿐 아니라, 나무와 빙하, 바다와 같이 열기로 들뜬 세상을 식히는 주변 것들에 굉장히 고마웠다.

현재 지구촌이 앓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방책과 발상은 앞으로 우리가 획기적으로 발견하고, 발명해야 하는 ‘프로메테우스의 불’ 같은 것이 아닐지 모른다. 고장 난 변기에 위에 앉아, 나처럼 잠깐 멈춰 이전 시대의 생각과 방식을 되새겨보는 게 더 현명해 보이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이후, 우리는 빛을 동경해 ‘전기 만능주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전등이 없어 밤에 일을 못 하던 때에 인류는 잠이라도 충분히 잘 수 있던 것처럼 말이다.


발전하는 기술과 문명이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인터넷 발명으로 급속도로 전 세계가 이어지며 사람들의 생활 습관과 사고방식은 이전과 아주 다르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연락할 수도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근데 연락하기도 전에 우리 모두 진짜, 더워서 죽게 생겼다. ‘원료를 뜨겁게 가열해 동력을 만드는 에너지 패러다임’이 이뤄낸 세상은 이제 불에 타다 못해 끓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나무를 베고, 쓰레기를 버리며 연료를 태우는 일뿐이라니. 우리 인간이 이렇게 대책 없이 맹목적인 종족이었단 말인가?


이 들끓는 세상을 잠재우는 방식, 지구를 차갑게 식히는 방식으로 과학 기술 영역뿐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언제나 생존이 문제다. 하지만 나는 인간 특유의 그 집요한 생존력이 이번에도 해내리라 본다.



움직이는 화랑 <비껴서기> 운영 |

코스미안뉴스 인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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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글쟁이 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