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또는 에세이 #17
얼마 전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우분께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 고생이 즐거워서 하신다니 정말 대단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당황스러웠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만들지 않고선 도저히 괴로운 인생을 사는 팔자다. 글도, 그림도 하물며 요리도. 무언가를 만들지 않으면 불안하다. 고생이라 생각해 볼 겨를 없이 무언가에 쫓기듯 표현하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일단은 만들어 왔다.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공부하고, 익히고 배웠다. 이런 게 내게는 습관이다. 대단한 일은 아니다.
같은 날 저녁, 뮤지컬을 보러 갔다. 무대 연출이 굉장히 세련돼서 인상 깊은 찰나, 1부가 끝나고 20분간의 휴식 시간이 됐다. 같은 열에 앉은 대학생 한 분이 뒷 열에 교수님과 아는 사이인지 작품에 대해 짧게 이야기 나누는 것이 들렸다. “저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 보려고 해요.” 공연예술을 공부하는 대학생 같았다. 이어지는 말 전부를 듣고 나니, ‘이 뮤지컬이 대학에서 열린 공연이니 이 학교 학생이겠지. 나랑 동문이겠군. 저 친구도 영감을 받으려고 열심히 하는구나.’하고 자연스레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말을 하는 학생 눈은 반짝였고, 누가 봐도 열정을 가진 청춘이었다. 그래서 초면이지만 친구처럼 반가웠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혼자 오는 길이었지만 오히려 마음이 풍족했다. 그날 본 작품은 멋졌고, 그 학생에게 동질감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열정을 가진 이를 지켜보는 일은 즐겁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돌아오는 버스 안, 밤이 내려앉는 창밖을 보면서 지친 몸이지만 가슴이 오랜만에 뛰었다. 그러다 낮에 들은 ‘그 고생이 즐거워서 하신다니 대단하다.’는 말이 다시 생각났다.
누군가에겐 나도 열띤 ‘청춘’이리라.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눠, 가장 낮은 단계인 생계를 해결해야 다음 단계인 소속 욕구도, 자아실현도 욕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큰 확률로 적절한 이론이지만, 아닌 사람도 꽤 있다. 외로운 게 죽기보다 싫어서 생계를 포기하기도 하는 게 사람의 복잡한 심리다. 그리고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럴지도. 사실 나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표현하는 자아실현이 어떤 욕구보다 앞서는 사람이다.
얼마 전, 2005년 이준익 감독 영화 <왕의 남자>를 다시 봤다.
“줄 위라고 생각하면 안 돼. 줄 위는 반 허공이야.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반허공.”이라는 대사에서 ‘반허공’이라는 단어를 나는 정말 좋아한다. 사람에게 예술이란 게 무언지 참 멋스럽게, 그리고 간결하게 잘 표현했다. 땅에서 들끓는 아우성을 소재 삼아 하늘로부터 받은 영감을 타고 줄타기하듯, 아슬하게 표현해야 하는 운명. 안타깝지만 나도 그런 운명인 것 같다.
굳이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반허공을 휘저어 겨우 줄에 매달려야 재미난 인생.
무언가를 만들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내가 소모품으로 대체될까 두렵다. 즉,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내 유일한 자유의지다. 그래서 난 오늘도 쓴다. 이 아슬한 줄타기가 몹시 즐거워 오늘도 살아간다.
움직이는 화랑 <비껴서기> 운영 |
코스미안뉴스 인문 칼럼니스트
브런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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