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모든것을 끝까지 해야하는 걸까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4.06. 월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 이름 - 이슬
예슬- 슬이의 친구
어제 예슬이네가 시골을 다녀 왔다기에 오늘 예슬이네 집엘 갔었다. 가기전에 세째 작은 엄마가 아기를 낳을려고 병원에 갔다고 전화가 왔고, 저녁 때는 아들을 낳았다고 전화가 왔다. 슬이 사촌동생이 태어난 거다.
남동생을 보게되어 엄마도 무척 기쁘다.
예슬이는혼자 앉기도 하고 엉금엉금 잘 기기도 했다.
예슬이네 집에서 슬이보다 5일 늦게 태어난 '우람'이를 만났다. 우람이는 남자라서 인지 예슬이보다 튼튼했다. 엄마가 슬이와 예슬이를 앉혀놓고 '엄마 앞에서 짝짝쿵..'을 해주었더니 슬인 즐겁다고 손뼉을 치면서 깔깔 웃었다. 예슬이도 즐겁다면서 깔깔 거렸다. 둘이 서로 양손으로 엄마를 잡으려고 했단다.
엄마 한손으로는 슬이를 잡고 또 한손은 예슬이를 잡고 슬이와 예슬이가 또 한손을 잡기를 바랬는데 서로 엄마손을 잡으려는 너희들 모습을 보고 예슬이 엄마와 엄만 웃었단다.
저녁 때 아빠가 저녁을 드시고 계신데 슬인 슬이도 상 곁에 있고 싶어서 자꾸 손을 잡아달라고 손을 내밀었단다. 해서 슬읻 상 앞에 앉혀 주었더니 슬인 두손을 상에 꼭 붙잡고 혼자서 일어섰다. 엄마와 아빤 너무나 기뻐서 웃었단다. 예슬이네 집에서 가져온 '영덕게'를 입에 넣어주니 잘 먹었다.
내가 포기한 것들
먼저 기억에 남는 건 초등학교 4~5학년 때, 체육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간단한 줄넘기 시험이었는데, 연속으로 8자 뛰기를 10번 하고, 2단 뛰기를 2번 이상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몸무게가 28kg이었으니, 초등학교 4~5학년 때는 아마 더 마르고 약했었을 거다. 나에게 체육은 먹다 뱉은 껌을 다시 입에 넣는 것보다 어려웠다. 엄마의 꾸중을 들으면서 나는 집에서 미친 듯이 밤새 줄넘기 연습을 했다. 줄넘기는 수학 점수를 100점 맞는 것보다 내게 힘들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배로 연습을 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요리를 배울 수 있는 특수목적고등학교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한식부터 양식 중식에 이르기까지 고등학교 3년 내내 요리를 배웠다. 한식, 양식 자격증은 3번씩 도전해서 총 6번 만에 취득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과와 제빵은 12번씩 시험을 봤는데도 계속해서 떨어졌다. 생각해보면 레시피를 외우지 않았고, 그냥 물 흐르듯이 옆사람을 똑같이 따라 했으며,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빵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제과 제빵 자격증 시험을 그만 보기로 했다.
호텔경영학과라는 과를 선택했다. 요리를 했기에 좀 더 이해가 수월할 것 같았고, 뭘 해야 할지도 잘 몰라서 그냥 어중 띄게 성적에 맞춰 아무 곳이나 정했던 게 호텔 과였던 것 같다. 공부를 하다 보니 호텔에서 일을 하는 것은 3교대인 육체적 노동이 많이 필요하고, 서비스 정신이 투철해야지만 가능한 일이라 생각이 되었다. 체력이 약했고, 나는 서비스 마인드도 부족했다. 그래서 쉽게 그 길을 돌아섰다.
한 때 남들에게 보이는걸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는 텔레비전에 얼굴이 나오고, 내 식품 쪽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렇게 '쇼핑호스트'를 준비했다. 발음을 공부하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꿈을 꿨지만, 생각해보면 어딘가에 나가 제품들을 판매한다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말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라는 책은 1권만 3번째 읽고 있고 (총 4권), 서예는 다니다가 지겨워서 한 달 만에 그만뒀고, 블로그는 사진 편집이 귀찮아한 때 열성적이었다가 금세 시들해졌으며, 토익 책은 늘 앞장에만 펜 자국이 남아있다.
이렇게 나는 포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꼭 모든 것들을 끝까지 해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말한다 최선을 다해, 미친 듯이 끝까지 해보라고. 끝까지 하다 보면 안 되는 건 없다고. 한 우물을 파서 무슨 일이든지 끝까지 가보라고. 그런데 꼭 한 우물만 파야하는 것일까. 한 우물을 파다가 물이 없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 우물 저 우물 파다 보면 나중엔 크고 좋은 수영장이 될지도 모르는데.
뭐 어찌 생각하면 금방 포기하네~ 하고 생각할 수 도 있다. 나는, 안돼도 계속해서 시도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줄넘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운동이 되었고, 제과 제빵 자격증을 따지는 못했지만 빵에 대해 남들보다 많이 알게 되었으며, 학과에서 배운 마케팅으로 식품마케팅 관련 일을 하고 있고, 쇼호스트를 공부했던 경험으로 PT를 맛깔나게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포기가 아니라 그 포기가 배움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모든 일들은 배울게 있고, 쓸 떼 없는 일은 없기에 나는 늘 계속해서 도전하고 포기하고 있다. 새해 들어서 다짐한 운동도, 아침을 꼭 챙겨 먹자는 의지도, 어느새 훨훨 날아가 지금의 나와 이별해 버렸지만 나는 누구보다 잘 걸어가고 있다고, 시도하고 도전하고 있다고, 혼자서도 잘 일어나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사진은 다 제가 찍힌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