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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몽블 Apr 14. 2016

엄마, 나 예뻐지고 싶어

1992.4.17 금 맑음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년 4월 17일 금요일 맑은 날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 예슬, 선영 - 슬이의 친구
: 수정, 수연 언니 - 사촌언니
: 호영이 - 사촌동생


바람이 몹시 불었다. 마치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것 같다고 예슬이 엄마와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금요예배가 있는 날이라 선영이 엄마와 예슬이 집으로 갔다. 화요일엔 수정이 언니에 집엘 갔었다. 셋째 작은엄마가 아기를 낳아서 그곳에 갔었단다. 호영이는 작은 아빠를 많이 닮았더구나. 슬이 사촌동생이 태어난 거다.


수정이 수연이 언니는 슬이가 예쁘다고 자꾸 만지려고 했단다. 슬인 혼자서 놀고 싶은데 자꾸 언니들 만지니까 싫다고 칭얼거렸단다. 수연이는 슬이가 신기한지 살짝 만져보기도 하고 껴안아도 보고 아무도 몰래 슬이 머리를 '쾅' 때리기도 해서 슬이를 울리곤 했다.


그곳에 슬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슬이가 남자냐고 물었단다. 얼굴이 넙적하고 짧은 머리인 네가 남자로 보였는가 보다.


수요일엔 할머니가 오셨단다. 삼촌 방을 구해주러 오신 거다. 할머니와 함께 방을 얻으러 버스를 타고 가는데 슬인 뒷자리에 앉은 어떤 아주머니와 같이 '까르르-'하며 웃는 바람에 모든 사람들이 다 슬이를 쳐다보면서 천진스러운 네 모습에 모두들 웃었단다.

2016년 4월 14일 목요일


왜 난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얼굴이 넓적한 건 여전할 걸까? 그래도 여자처럼 보이기 위해서 머리는 열심히 기르는 중이야.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전에 내가 하던 일이 '인사' 쪽이었잖아. 근데 면접을 진행하시던 면접관님이 직원 면접을 보시더니 "쟤는 너무 뚱뚱해서 맞는 옷이 없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그 말에 요즘은 취업하려면 외모도 가꿔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조건의 사람이면 이왕 이쁜 사람이 좋은 것 같아. 그래서 요즘은 취업 성형도 많이들 하잖아.


언제였더라. 동상이몽이라고 부모와 자녀의 입장을 알아보고 고민을 해결해주는 그런 프로그램에서 예뻐지고 싶어 하는 고등학생이 나왔어. 이미 수차례 성형수술을 한 경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할 수만 있다면 여러 군데 성형하고 싶다'고 말했어. 성형 비용을 마련하려고 따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고. 요즘 고등학생, 중학생 들도 반 학생 30명 중에서 적어도 2명 이상은 성형수술을 했다네. "세상은 외모지상주의고, 나는 거기에 맞춰 나갈 뿐이에요."라고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어. 나도 모르게 공감이 되더라고.


텔레비전 속에도 예쁘고, 피부도 좋고, 몸매도 좋은 연예인들이 나오면 나는 자주 그들과 나를 비교를 해. 나는 왜 이렇게 얼굴이 크지? 나는 왜 이렇게 몸매가 안 좋을까? 한참을 생각하다 보면 자꾸 성형을 하고 싶은 거 있지.


사실 저번 주에 나 보톡스 맞았다? 아는 언니랑 같이 병원에 가서 나는 이마에 보톡스 맞고, 그 언니는 v라인 주사를 맞았어. 금요일 저녁에 회사 퇴근 후에 간 거였는데 사람이 30명은 병원에 있더라고.


엄마가 그랬지. 자연 모습 그대로도 이쁘다고 자신의 장점을 생각하라고. 근데 요즘 나는 자꾸 자존감이 떨어져.


누군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내면이 아니라 보이는 모습인 것 같아서.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었는지. 또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몸매가 좋은지.나도 모르게 세상에 기준에 나를 맞춰가는 것 같아.


그래도 나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할 거야. 이렇게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하기는 너무 어렵다는 걸 알아. 나의 큰 이, 반 곱슬머리, 갈색 눈, 넓적한 얼굴, 긴 턱을 사랑할 거야. 이것들은 결함이 아니라, 나의 일부이니까.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생겼다면 세상이 얼마나 이상하겠어. 사람들이 모두 자기다워짐으로써 세상이 더 흥미로워지고 생생해졌으면 좋겠어. 나 매력 있는 여자가 될래. 나도 엄마처럼 당당하게 살아갈게.

예쁘게 낳아줘서 고마워 엄마.

-엄마의 고슴도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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