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몽블 May 10. 2016

엄마,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않을게

1992.5.13. 수 비 옴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5.13. 수 비 옴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 선영  - 슬이의 친구

밖에는 비가 온다. 아빠는 하루 근무를 자청하고 일터로 나가셨다. 어제저녁 늦게 들어오시고 오늘 아침 일찍 나가신 거다.


그런데 슬이가 어젯밤에 자꾸 깨어나서 엄마는 물론 아빠도 깊은 잠을 못 주무시고 일터로 나가셨단다. 아침에 일어난 슬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슬아! 슬이가 밤에 깨지 않고 잘 자야지만 아빠가 잠을 푹 주무시고 그 다음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가볍게 출근을 할 수 있는 거다. 슬이가 자꾸 깨어나면 아빠가 주무시지 못하고 찌푸둥한 몸과 기분으로 출근을 하시게 되는 거야 그러면 아빠가 일을 하시는데 힘이 드는 거야. 슬이가 밤에 잠을 잘 자야되는 거다."


슬이가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슬이에게 이야기했단다.


옆집 아주머니가 오셔서 점심을 같이 먹고, 시장에 가서 새우 껍질을 벗기고 새우 살을 주니 슬인 잘 먹었다. 선영이는 낯을 가리고 엄마하고만 놀려고 들고, 아빠께도 잘 가려들지를 않아 선영이 엄마를 힘들게 한다더구나. 슬인 선영이 엄마에게도 잘 가고, 잘 놀고, 잘 먹고 해서 엄만 기쁘다. 슬이가 있어서 인지 선영이도 잘 놀았단다.


슬인 이제 혼자서 밥상을 붙잡고 서고 또 혼자서 앉기도 하면서 논다. 한번 하고 나면 저렇듯 쉽게 하는 것을 무섭고 두렵고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면서 실망하고 그러는구나 싶다. 세상 모든 일들이... 슬이 행동을 보면서 엄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밥상을 붙들고 서더니 엄마 어깨에 손을 대고 엄마 등에 와서 얼굴을 묻고 무어라 중얼거린다.


슬아!

엄만 슬이를 사랑 한다.

2016.05.08 어버이날 엄마랑 증평에서 꽃 데이트♥


2016.05.10 화요일 비 오는 날

페이스북에서 서울대 학생과 지방대 학생의 차이점이라는 글을 봤어. 서울대 학생은 서울대를 가기 위해서 그만큼 노력을 했고, 노력을 하면 결과로 돌아오는 것을 입학을 통해서 깨달았기에 무슨 일을 하던 성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


물론 그 글 밑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있었고, 너무 일반화시킨 내용이라는 비판들도 있었지. 그 글을 통해서 나는 무언가를 목표로 하고 한 번이라도 이뤄서 성취감을 느껴 본 적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정말 열심히 해본 게 있나?

정말 힘들게 운동을 해보거나, 미친 듯이 한 가지에 몰두해서 끝을 본적이 있나?

끝내고 나서 뿌듯함을 느껴본 적이 있나?

" 아 드디어 해냈다" 성취감을 알게 된 적이 있나?


그런 감정은 해본 사람만 이 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어떤 것을 끝까지 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해보니까 사소한 것들은 있긴 하지만 확실하게 성공!이라고 내세울만한 것들이 없는 거야. 어렸을 때의 큰 꿈들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의 나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캄캄한 곳에서 웅크리고 있더라. 어느샌가 내 미래의 야망과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더라구.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고, 과거를 회상하는 횟수가 많아질 수록 어른이 된 거래. 난 어느새 어른이 되었나 봐. 하루하루의 현실에 안주하고 매일을 버티는 어른이 되었어. 어릴 땐 요리, 꽃꽂이, 여행, 서예 하루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던 내가 이제는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채 조용히 넘기기를 기도하는 어른이 되었어.


그런 어른이 되기 싫어. 그래서 뭐든 도전해 보려고. 미친 사람처럼 몰두하고 끝까지 해보려고.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계속해보려고.


엄마 말대로 세상 모든 일들이 한번 하고 나면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거니까. 무섭고 두렵다고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면서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내가 될게.


단 한 번이라도 정말 열심히해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미친 듯이 몰두해서, 성취감을 느낄 수있도록 끈기가 있는 내가될게.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나 혼자 밥 먹기 좋으면서도 싫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