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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몽블 Jun 21. 2016

엄마, 내 행복은 있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7.31. 수 비 옴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 이름 - 이슬
: 예슬, 우람  - 슬이의 친구

7월도 마지막이다.

엄마보다 일찍 일어나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우는 슬이에게 견디다 못해 엄마는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요즈음엔 엄마가 머리맡에 머리띠를 풀어놓고 잠이 들면 슬이는 일어나서 머리띠를 자기 머리에 꽂아도 보고 올려놓기도 하고 놀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면 엄마 머리도 잡아당기고 얼굴도 꼬집고 해서 엄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단다.


슬이가 머리띠를 가지고 놀다가 슬이 머리에 꽂으면 엄마가

'슬이 정말 예쁘구나' 해주면 좋아서 인지 아니면 쑥스러워서인지 슬인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한다.


오늘은 금요예배를 예슬이네 집에서 하는 날이라 슬이를 데리고 갔다. 우람이도 놀러 와서 셋은 같이 놀았다. 슬이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으로 예슬이를 때리려 든다. 우유병, 심지어는 음료수 캔으로도 마구 때리려들어 엄마가 슬이를 혼내 주었단다. 처음엔 예슬이가 자꾸 슬이를 때려 예슬이를 혼내 주었더니 예슬이는 때리지 않더구나. 슬이는 자꾸 때리려 들어 엄마는 걱정이다.


집에 오는 길에 슬이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계속 엄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코도 맞대고 깔깔 웃으면서 긴 거리를 즐겁게 웃으면서 왔단다.

슬이가 다 큰 것 같아 엄만 무척 행복했다.


2016.06.18 눅눅한 더운 날 제가 쓴 일기입니다.


마을버스

여름 치고는 선선하게 느껴지는 구름 한 점 없는 평평한 날씨였다. 주말에 할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무엇보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집엘 내려가기로 했다. 집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 그렇게 고속버스를 1시간 40분 정도를 타고 '증평'에 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터미널은 예상외로 늘 북적인다. 시멘트가 벗겨져 비듬처럼 떨어지는 벽에 남아있는 온갖 낙서들. 초록색 등박이가 없는 의자가 줄지어 있고, 안에는 매점 두 개가 양쪽으로 포진되어 있는 곳. 이곳이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시골 터미널이다. 그렇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터미널을 지나서 우체국 앞에서 마을버스를 탄다.


내가 좋아하는 마을버스는 굉장히 특이하다. 일반 시내버스와 모양은 같으나, 버스를 탈 때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타는 게 특징이다. 그러곤 아무도 돈을 내지 않고 앉아있는다.


대학생 때 서울 친구가 우리 집엘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도 이 마을버스를 같이 탔었다.

"왜 돈을 안내?"

그 친구의 놀란 표정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이 버스는 공짜야."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친구는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내 말을 믿었다.


이 마을버스는 내릴 때 돈을 낸다. 운전을 해주는 아저씨가 일일이 손님을 기억해 거리마다 요금을 다르게 받는 것도 신기하지만, 다리 아픈 할매들의 큰 짐이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올라오며 그 짐들을 먼저 탄 사람들이 들어준다. 이 버스는 할머니들이 자리에 다 앉은 뒤에나 출발을 한다.


나는 이번에도 벨도 누르지 않고 버스아저씨에게

"저기서 내려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버스는 근처 버스정류장에 선다. 그제야 버스비를 결제하고는,


서울버스를 탔을 때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 "감사합니다."를 내리기 직전 버스아저씨에게 크게 말할 때 그때, 이 마을버스가 좋다.

엄마가 있는 집에 다 왔다는 설렘과 함께 무언가 뭉근한 시골 정이 이 버스를 내릴 때 내게 묻어나는 것 같아서.


우리집 옆 담벼락 능소화

엄마의 밥 그리고 당면 김치찌개


"엄마 또 삼겹살이야?"

삼겹살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지만 매번 저녁 삼겹살은 쫌 그렇다.

아침은 패스. 점심은 배달. 저녁은 삼겹살인 우리 집은.

참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식단이 쫌 그렇다.


맛있는 집밥이 먹고 싶어 고등학교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요리는 입맛만 까탈스러워지고 엄마를 닮은 손맛 때문인지 일찍 요리사의 꿈을 접었다. 물론 요리를 배운 경험 때문에 요리 관련 일을 하고 있지만 서도.


유일하게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열광하는 건 엄마의 밥과 당면 김치찌개다.

엄마의 밥은 말 그대로

흰 쌀밥.

반찬은 사와도 밥만은 꼭 금방 한 것을 먹어야 한다는 울 아빠 덕에 엄마는 다른 건 안 해도 밥은 꼭 압력밥솥에 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그 흔한 일반 밥솥 하나 없다.


압력밥솥에 물 맞추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일반 자동 밥솥은 물 넣는 선이 그어져 있어 그대로 넣고 취사만 누르면 되지만 압력밥솥은 일반 밥솥보다 물을 더 적게 넣어야 하고, 중간에 불 조절을 해줘야 하며, 불을 끄고 나서는 뜸을 잘 들여야 한다. 잘못하면 밑바닥이 타기도 쉽다.


아빠는 약간 진밥을 좋아하고 나는 고슬고슬한 밥을 좋아하기에 엄마는 일부러 압력밥솥에 들어가는 쌀을 기울여 놓는다. (한쪽은 높게 한쪽은 낮게) 그러면 높은 쪽 쌀은 고슬고슬해지고 낮은 쪽 쌀은 물이 더 많아 촉촉해진다. 입맛도 다른 아빠와 나에게 맞추기 위해 엄마도 여간 신경을 쓰는 거다.


두터운 돼지고기를 달달-볶아서 잘 익은 김치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마지막엔 다른 집에선 잘 넣지 않는 '당면'을 넣는 김치찌개. 팅팅 불어 김치찌개의 깊은 맛이 고대로 배어있는 당면에 식감 좋은 고기와 얼큰한 국물에 치익치익-압력밥솥이 만든 고소한 윤기도는 밥을 먹으면 그냥 게임 끝이다. 밥 한 공기 뚝딱. 그러고 나서 과일이랑 아빠가 손수 만든 막걸리를 한잔 하고 나면

아-! 있는 그 자리가 행복한 삶이란, 이런 거구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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