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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몽블 Jun 24. 2016

나쁜 일이여 올 테면 와라.

불행 하나에 행복 하나야. 그러니 모든 일에 크게 동요할 필욘 없어.

내 알람은 어두 컴컴한 방안에서 아침 8:11분에 어김없이 울린다. 평일은 6:43분, 주말은 8:11분. 이상하게도 나는 정시에 알람을 맞춰놓지 않는데 그 이유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애매하고 또 애매한 시간에 알람이 늘 울린다.

그렇게 주말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목이 칼칼했고 몸이 무거워 어제 밤에 떠놓은 자리끼 한잔을 벌컥벌컥 마셨다. 무언가 목구멍을 간질간질 거리는 기분과 코가 답답 먹먹한 기분에 감기임을 직감했다. 대충 얼굴에 물을 끼얹어 세수를 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는 집을 나왔다.


눅눅한 궂은 날씨에 우산을 챙길까 했지만 나는 그냥 그대로 걸어 버스 정류장에 왔고, 눈앞에 허망하게 지나간 버스에 '에라 잇-' 속으로 말하며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이비인후과에 왔다.

 


"감기네요"


역시나, 감기. 간단하다면 간단한 약간의 성의 없는 진료를 받고는 병원 바로 옆 약국에 들러 약을 구입했다.


그러곤 왼쪽 다리에 멍이 심해서 치료를 받으러 근처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 날따라 사람은 많았고, 덕분에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렸다. 물리치료까지 한 시간이나 걸렸고, 치료를 받고 나서 감기 때문인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비타민 주사를 맞았다. 간호사 언니가


"20분이면 될 거예요. 다 들어가면 불러주세요."


나는 네-라는 간단한 대답을 하곤 똑똑 떨어지는 수액을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것 같았는데 벌써 한 시간이 지났고, 그렇게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오후 3시.


뭉글뭉글 짜증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지하철을 탔는데 배가 너무 고팠고, 감기 때문에 어지러웠고, 다리는 시퍼런 멍으로 만신창이였고 그걸 알아줄 사람은 없었다.


지하철을 둘러보았는데 자리가 없어서 잠시 서있었다.

그러곤 얼마 후 내 앞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여기에 좀 앉아야겠다-'

그때 갑자기 아주머니가 나를 툭-치더니 자리를 빼앗아 갔다. 나는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여긴 내 자리였다고! 내 앞에 있던 자리!


아주머니는 먼저 앉은 사람이 임자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속이 부글거렸다. 그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 내려야 할 곳보다 두 정거장 빨리 내렸다. 늘 먹던 가게가 있어서 밥이나 한 끼 때우고 집에 갈 요량으로.


하늘도 무심하시지. 갑자기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졌고, 우산은 없었고, 주변에 딱히 우산 살 곳이 보이지 않았다. 지하철 역에서 음식점까지는 쫌 멀었고, 그냥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냥 뛰고 싶지 않았다.


3:30부터 브레이크 타임. 지금은 3:35분.


제기랄.


배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집에 가려했건만 비 때문에 온몸은 쫄딱 젖었고, 몸은 뜨거웠다. 저녁 오픈은 5:30.


기다리고 싶지 않아 다시 집에 가기로 했다. 온몸을 질척인 채 버스를 기다렸지만 버스 소요시간은 20분. 결국 다시 지하철로 돌아가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맑은 하늘이 나를 더 화나게 했다.

오늘은 진짜 수난을 겪는 날인가 보다.
photographer. 이진혁

화내건 웃던 간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축축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 샤워를 했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니 살 것 같았다. 비를 맞아서 인지 오늘의 샤워가 더 좋았다.


오랜만에 집에서 밥을 했다. 고소한 밥 향기가 집안 가득 퍼지면서 치익치익-소리를 냈고, 청양고추가 팍팍 들어간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었다. 샤워를 마친 후 밥 한 공기를 푹- 퍼서 두부와 애호박이 잔뜩 들어간 된장찌개를 쓰윽쓰윽- 비벼 밥을 해치웠다.


통통-

배를 두들기다가 후식으로 파인애플을. 또 다음 후식으로 요플레를. 또 다음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리곤 약을 먹었다. 에어컨을 켰고 눅진한 습기가 사라졌고 나는 두꺼운 이불속에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으- 행복해.

그렇게 약기운에 취해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photographer. 이진혁

비를 맞았기 때문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좋았던 것이고, 배가 고팠기 때문에 흔한 된장찌개가 너무나도 맛있었던 거고, 피곤했기에 더 잘 잘 수 있었던 것 같다.


불행 하나에 행복하나, 그렇게 오니까.

너무 행복해하지도 너무 아파하지도 말자고.


출처: かご猫 Blog

 자잘한 일들이 모여 나에게 스트레스를 줘도 나는 반응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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