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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몽블 Jul 06. 2016

엄마, 난 잘생긴 남자가 좋아

사실 내 이상형은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7.8. 수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 이름 - 이슬
: 현준 - 이슬의 사촌
: 선영  - 이슬의 친구


지난 6日에 현준이 동생이 태어났단다. 여동생이다. 그래서 시골에서 외할머니와 작은 외숙모께서 오셨고 슬이와 엄만 어제 병원에 들러 현준이네 집엘 갔었다. 이모 병실에 있는 컵에 담긴 물을 손으로 잡고 장난을 치려고 하기에 못하게 했더니 마구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다. 그 모습을 본 이모는 '슬이 성질이 보통이 아니네' 하셨단다. 슬이가 자꾸 떼를 쓰고 대들 듯이 마구 소리를 질러 엄만 가끔 민망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곤 한단다.


현준이 오빠네 집에 있는 조그만 자동차를 슬이 앞에 놓으면 발로 걷어 차곤 했다. 며칠 전부터 슬인 대변을 어른들처럼 되게 보았다. 전에는 묽은 변이었는데.. 슬이가 밥을 먹어서 인가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오빠들과 언니를 만났다. 슬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오빠들이 잡아주었다. 언니가 손을 내밀자 슬인 본 척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언니는 '얘가 분명 여자일 거라고 하면서 남자만 좋아한다고 끼가 다분하네' 해서 모두들 웃었단다. 


빽빽이 들어찬 지하철 안에 땀을 흘리면서도 슬인 칭얼거리지 않고 언니 오빠들과 놀면서 집엘 왔다. 그런 슬이가 무척 대견스러웠다. 슬이가 정말 착하다 싶어 엄만 많이 많이 칭찬해 주었단다.


오늘은 할머니와 외숙모가 집에 오셔 슬이와 놀아 주었다. 오후엔 선영이가 와서 같이 놀았다. 슬이 머리에 (앞부분) 작은 땀띠가 난 것 같아 걱정이다. 어떻게 보면 땀띠 같고 또 어떻게 보면 긁어서 발갛게 된 것 같고 그렇구나. 오늘도 무더운 날이었다. 선풍기를 꺼내놓으니 슬인 신기한지 만지려 든다.



2016.7.6 수요일 날씨 비올 것 같음. 제가 쓴 일기입니다.


책상 정리를 하다가 내가 중학교 때 만들었던 작은 나만의 책을 발견했다. 그 책에서는 10년 전에 내가 쓴 나의 이상형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내가 만든 나만의 책. 나는 완벽한 남자를 찾았나보다ㅋㅋㅋㅋㅋㅋㅋ

첫 번째, 고기를 잘 굽고 과일을 잘 깎는 남자입니다.


고기를 잘 굽는 남자는 사회생활을 많이 해본 사람으로서, 인맥관계가 넓고 두터운 사람을 뜻합니다. 또한, 고기를 자신이 구우면서 다른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상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솔선수범하고 생활력이 강한 남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과일을 잘 깎는 남자는 섬세하고, 집안일도 잘 도우며 많이 남을 챙겨주는 남자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피부가 좋고 옷을 잘 입는 남자입니다.


피부가 좋고 옷을 잘 입으려면, 피부관리와 몸매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자기 계발과 자기투자의 시간을 갖고 있는 남자라는 뜻입니다. 또한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뜻은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어디서든 믿음직스러우며, 맡은 일은 확실하게 끝내고, 똑 부러진 성격을 가진 남자를 뜻합니다. 그리고 피부가 좋으려면 담배를 안 펴야 하고, 담배를 안 피우면 건강하기 때문에 두 번째 이유를 이렇게 정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책을 많이 읽고 시도하는 사람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지식이 풍부하고, 소통과 대화가 잘 됩니다. 책을 읽고 책 속의 내용을 실천하면서 목표의식을 가지고 도전하고 시도하려는 사람입니다. 또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줄 알고 있는 사람이고, 어느 정도 인격과 성품이 갖춰진 사람을 뜻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배우자 선택 기준을 고기를 잘 굽고, 과일을 잘 깎는 남자. 피부가 좋고 옷을 잘 입는 남자. 책을 많이 읽고 시도하는 남자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10년 전에 내가 쓴 글을 읽으니까 되게 웃겼다. 그때 이상형은 성격은 착하고, 얼굴은 잘생겼으면 좋겠고, 나를 엄청 사랑해주면서 돈을 많이 버는 남자가 이상형이었다. 내가 이 이상한 책을 만들고 엄마에게 가서 보여 줬을 때 엄마가


"너는? 너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착하고 헌신하고 집안일도 잘하고 예쁜 사람이니?"

라고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땐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이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내가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내가 아빠 때문에 화가 나서 너무 가부장적이라고 엄마한테 화를 내면서 아빠랑 어떻게 20년이 넘도록 같이 살았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아빠는 엄마가 못하는 기계를 고치는 일을 잘해. 그리고 책임감도 강한 사람이고, 또 내 사람은 끝까지 지킬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엄마는 잘생기고 옷 잘 입고 돈 잘 벌고 그런 남자를 찾기보단 내가 싫어하는 걸 안 하는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자신이 좋은 여자가 되라고 나에게 말했다.


내가 싫어하는 걸 안 하는 남자. 그리고 나 자신이 먼저 좋은 여자가 되라는 말. 생각해보면 그 두 말이 같은 의미인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해주는 것,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이에게 하지 않는 것.


생각을 하니까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에 썼던 내 이상형처럼 나도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솔선수범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은 여자가 되면.. 그럼.. 좋은 남자가 오겠지?


아, 그냥 나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남자 그냥 그 자체로 좋아 죽을 것 같은 사람 어디 없나.

꼭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이 오는 걸까.


근데 엄마 그거 알아? 아빠 예전 사진 보니까 엄청 잘생겼어. 심지어 남동생도 아빠를 똑 닮아서 잘생겼다고.

엄마도 외모를 본 것 같은데..?


난 엄마를 닮았나 봐.

그냥 잘생긴 남자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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