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신과 방문에 내가 느낀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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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서점을 구경해보면 '우울', 나아가 '정신과 상담의 경험을 담은 책들이 자주 보인다.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엄청난 인기를 끈 영향이 도화산이 되어 예전부터 해야 할 '숙제'처럼 느낀 정신과 상담의 문턱에서, 그까지 껏 별 일 아니라고 말해주는 한 손을 잡게 됐다. 삶에서 남과 비교하자면 끝이 없는데 그 비교의 항목 중 '우울'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나? 또 그 우울의 경중을 비교로 따지는 것조차 누군가에게 불가해한 일일 수는 있다.
이 책을 통해 내 심증으로 느낀 작가의 우울감을 지레짐작하여 그를 파악하고 나와 굳이 대차대조표를 머리로 그려보게 되는 것이다. '저만큼의 우울의 상태는 아닌데 나는 우울증은 아닌 건가?', 또 한편으로는 '내 상황보다 훨씬 나은 조건에 사는 것 같은데 저렇게 힘들 수가 있는 걸까?' 하는 역지사지가 안 되는 이기심, 그래도 '저분은 자기의 편에서 끝까지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 아닌가?' 마음까지 여러 갈래로 생각이 뻗었다. 그 상대가 남자 친구라는 점이 아니라 다양한 모양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해주고 벗어날 수 있게 끊임없이 용기를 주는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사실에 묘한 질투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 책을 본 직 후, 바로 '정신과'를 찾아가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일 년 반이 지난 즈음, 발화가 될 만한 개인적인 문제가 생겼고 더 이상 숙제를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했다. 정신과는 상담 센터와는 조금의 차이가 있다. 어떤 증상을 정의해주고 약을 처방해주는 곳이 목적이기에 상담 센터를 방문하는 것보다 더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하게 약을 통한 호르몬 조절로 빨리 나아질 수도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방문을 미루게 되는 누구나 해봤을 걱정 중 하나가 '기록'에 대한 두려움이다. 후에 보험 가입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항상 걱정은 행동을 막도록 뇌를 잠식한다. 더 이상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걱정만 할 수는 없고 과거의 나를 청산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진 시점이었다. 그렇게 살고 있는 지역에서 그나마 평이 좋은 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100% 예약제라는 그곳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최소 빠른 상담의 날이 두 달 뒤라는 통보였다. 그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나만 어떤 문제를 안고 사는 것 같고, 그런 나는 불완전한 사람일까? 자학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던 수많은 괴로운 밤이,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겐 나만큼 당연한 삶의 과정이었고, 비슷한 질감의 밤을 보내며 살았겠구나, 하는 이기적인 안도감.
첫 방문은 다행히도 병원에서 캔슬된 시간이 있음을 알려 준 반가운 전화 덕에 예약 전화를 했던 시점에서 한 달 뒤, 예상보다 빨리 이뤄졌다. 당일이 되면 상담 예약 시간보다 삼십 분 전에 도착해서 설문지 작성을 먼저 한다. 지각을 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작성해야 할 설문지가 많아서 완벽하게 답변하지는 못했다. 그 설문지를 의사가 본격적인 면담 전에 미리 살핀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다 읽는다고 한들 찰나에 완벽하게 파악할지는 의문이다. 그렇게 들어간 곳에서 방문 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 본 예상 질문과 맞다닥뜨린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집에서 머리로 그려 볼 때도 그렇지만, 그 당연한 질문에 관한 답을 설명하기가 막막했다. '나는 뭐 때문에 이 곳을 찾아가려 했지?', 그 원인이 '우울'이라고 하기에는 의외로 그 당시에는 엄청 우울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우울감이라는 것이 내 기질적 특성이라 언제나 친구처럼 당연한 거였어서, 대답하기엔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심플하게 최근에 있던 일을 열거하며, 이러한 일들 때문에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아서 방문했다고 답변했다.
개인적인 일을 다 열거하지는 못하지만 잠깐의 대화에서 얻은 정보로 판단해 준 의사의 진단의 핵심 키워드는 '분노'였다. 선생님은 그 분노의 대상이 자신일 수도 있고 가족, 또는 세상을 향한 거일 수 있는데 정확한 원인은 상담 전에 작성했던 설문지는 고작 의식 수준의 질문들 뿐이기에 '무의식'까지 판단할 수 있는 종합 심리 검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며 그 검사를 받기를 추천하셨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상담과 병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상담은 짧은 시간에 효과를 볼 수는 없고 1-2년의 시간이 걸릴지 더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의사 선생님들은 금액적인 문제를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는 당장 할 수 없는 게 없으니 검사를 받겠다, 동의를 하고 나왔고 후에 데스크에 계신 분이 오셔서 설명해주셨다.
그런데 금액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비싼 것이다. 내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해 33만 원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 또 그게 당장의 해결책이 될 수도 없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될 후의 상담 비용 역시 일주일에 1회로 진행되며 1회당 7만 원이라고 하면 매주, 최소 1년 치를 머리로 그려보면 완벽한 계산 없이도 금액이 상당하다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생각지 못한 금전적인 문제에 좌절감을 얻고, 종합 심리 검사는 좀 더 고민 후에 연락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병원을 나왔다.
정신과 상담을 받기로 용기를 가지고 행동하기까지 그렇게 시간이 걸렸는데 어떤 성과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게 만드는 그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 문제가 '돈'이라는 현실이 더 비참하게 느껴졌고 변하고자 하는 내 다짐을 곧장 '무력감'으로 탈바꿈하게 했다. 우리는 각자의 정신적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핵심은 그 문제들이 내가 기억하지 못한 과거의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여 온 시간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그런 시간을 거쳐 완성하게 되기 까지 늘 우리 주변엔 울타리가 있었다. 그게 바로 '환경'인 셈이다. 다채로운 환경의 영향을 받아 현재의 내가 이르는 시간에 당도했겠지만 앞서 말한 기질적인 우울감에서 비롯된 특정 성격들은 많은 책에서도 알 수 있듯 '유전'의 힘도 절대 간과할 수 없다. 사실 현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엮을 수밖에 없는, 육아를 책임졌던 부모를 끌어와서 유전과 환경의 힘을 논하고자 하면 더 슬퍼진다.
물론 누군가를 '탓' 할 수 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누구나 문제를 받아들일 때 내 문제를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비참하지 않는가. 또 무작정 핑계라고 치부하기에는 심리학을 조금만 배워도 프로이트, 에릭슨이 주장한 바에 따라 발달의 과정이 지금의 성격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대학교 시절, 공부할 때마다 이런 이론을 마주할 때 유독 힘들었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한 시간인 것도 억울하고, 내 인생임에도 '타자'가 원인에 기여했을지 모른다는 이론적 부추김이 내 인생을 지리멸렬하고 철저히 '낭패감'에 찌들도록 밀어 넣었다.
그 종합된 '문제 덩어리'라는 인식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도 '오롯이' 나라는 자괴감은 '분노'로 표출된 걸지 모른다는 자가 판단을 해 본다. 당장의 심리 검사 비용만으로도 33만 원이 나간다는 부담감이 좌절감으로 변질돼 시발점이 되었는데 솔직히 내 경제적 능력으로 돈을 해결할 수는 없어도 '33만 원'에만 초점을 맞추면 어쨌거나 내 문제에 조금의 지분이 있을 '부모'에게 지불을 떠넘길 수도 있었다.
심리 검사를 받는 행위는 단지 무의식에 뻗쳐있는 '원인'을 찾는 것이지, 결론은 본격적인 상담이 병행되어야 내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다는 진실이다. 나라는 객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해방'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예견하는 시간 조차 '돈'에 의해서 가로막힌다는 현실이 '나는 결코 변할 수 없는 사람',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으로 재정의하게 했다. 잠시, 당연하다듯이 슬펐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항상 내 인생의 고유한 패턴처럼 '반 사회적 동물'로 살아감에도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로 중단되고 좌절된 '첫 정신과 방문'의 기억을 이제는 이 글로써 리셋하려 한다.
여전히 뇌의 깊은 곳에서는 그 검사를 받아야 할지, 그 후에 상담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절망 수집가답게 인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걱정이 얽히어 상념으로 떠다닌다. 그럼에도 상념들 사이, 무분별한 예언일지라도 조그마한 희망이 아침의 해처럼 떠오른다. 임솔아 작가가 써내려 간 한 소설의 인물처럼 다짐으로 점철된 미래가 그저 헛된 희망이라 해도 그 먼 곳은 '심리적 해방감'이 충만한 '나'가 웃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곳이길 바란다. 나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게, 그저 절망만을 수집하는 인생이라고 여기는 '슬픔'에서 한 발짝 나오는 힘을 주는 해방의 글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만이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내 인생의 반복적인 패턴을 거스리는 소소한 자아 해방이다.
최선의 삶 中
꺼진 텔레비전 앞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의 미래처럼 캄캄했다. 나는 미래를 예측해본 적이 없었다. 미래를 다짐해볼 때는 많았다. 언젠가 먼 곳까지 가볼 것이다. 먼 곳에서 더 먼 곳을 향해 가며 살 것이다, 이불속에서 얌전하게 죽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다짐이었다. 다짐으로 점철된 미래를 펼쳐놓았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예언이 내게는 다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