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명절이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지지난주 추석이었다. 추석이든 설날이든 명절이 즐거운 사람이 있겠지만 분명 그다지 반갑지도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로 나처럼. 예기치 않게 두 번째 글 역시 생일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시니컬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브런치를 연재하기로 결정한 순간, 평소에 자주 하던 생각을 눈치 보지 않고 글로 솔직히 표현하기로 결심했으니 행복이든 불행이든 어떤 감정이 느껴질 때마다 내가 견뎌내고 있는 모든 순간들을 기록할 것이다.
명절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지만 '명절 증후군'이 있지도 않다. 딸로서, 손녀로서 명절 음식을 도와주지도 않을뿐더러 어느 순간 명절의 첫날 저녁에만 가서 밥만 먹고 오게 된다. 아마 같은 지역에 양쪽 할머니들이 다 계시고 있는 덕분에 할머니 댁에서 안 자고 와도 되는? 일을 안 해도 된다. 그것만으로 내 성격에는 작은 축복일 수도 있겠다. 가족이 모이는 자리를 최대한 피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성격상 친척들이 가족이긴 해도 딱히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 집을 포함하여 우리 집이 아닌 다른 곳에 가 있으면 마음이 어쩐지 답답하다. 그 공기부터가 어색하다 느껴지는 기분을 이해하는 사람이 분명 있으리라.
반대로 명절에 오랜만에 먼 친척들끼리 만나는 자리가 반가운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명절이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결혼 얘기, 취업 얘기 등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잔소리가 지겨워서일 것이다. 일명 오지라퍼 친척들과 대면하기 싫은 것이다. 이 역시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양가 친척 중 그런 친척이 없다. (사실 이번엔 만나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인사랍시고 얼평을 한 언니가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명절을 포함하여 친척들을 만나는 시간을 피하게 되는 원인이 뭘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독 어색함을 잘 느끼는 성격이 원인 중 높은 순위에 있다. 웃긴 건 주위에서 보면 내가 그 자리에서 꽤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속으로는 내가 얼마나 '어색 어색함'과 싸우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나는 그런 내가 나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도 아니고 가족인데? 왜 나는 가족에게도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걸까? 같은 또래의 친척이 없기 때문일까? 보통 동생들은 17~25살 사이의 나잇 대고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그 사이에 있으면 스스로 생각하건대 꽤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겉으로는 띠동갑 친척 동생과 티격태격하고 있다. 그 또한 친척들이 볼 때는 그 자리에 굉장히 잘 섞이고 있다 느낀다. 어떻게 그렇게 띠동갑 동생이랑 잘 노냐고 하시는 거 보면 말 다했지.. 내 딴엔 그나마 그 동생이 제일 어리고 활발해서 편하게 대해주기에 그렇게 '자연스러운 척'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다양한 이유로 최대한 친척들과의 만남을 피해오곤 했는데 이번 추석에는 일 년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하는 이모의 식구들이 전부 다 왔다. 심지어 이모의 딸들인 친척 언니 둘은 어렸을 적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번 연도 초에 이모의 딸인 큰 언니가 결혼을 해서 사위까지 데리고 정말 오랜만에 이모의 가족 전체가 외할머니 집에 방문한 것이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안 갔는데 이번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오로지 명절 음식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가게 되었다. 역시 그 가족이 도착하자마 밖에 배웅 나가는 친척들 사이로 쭈뼜쭈뼛하는 내가 있었다. 쉬운 인사는 물론이고 친근하게 먼저 다가가서 오랜만이라고 말을 건네는 성격이 아닌지라 어색한 공기만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평소에 완전한 비혼 주의자는 아니지만 '비혼'을 더 선호하는 사람으로서 나 역시 대가족의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조망하게 된다. 후에는 점심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가족 전체를 마치 내가 한 소설 안의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나와 달리 엄청 친근하게 친척들과 어울리고 어른들과 대작하며 술을 기울이는 낯선 언니들을 보니 '아 저 장면이 흔히 사회가 주입하는 환상의 명절 모습에 부합하는 완벽한 가족상에 가까운 걸까?' 하는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설상가상 점심을 먹은 후 술이 한 껏 오른 어른들은 볼링장을 가자했고 나도 꾸역 구역 따라가야 했다. 볼링을 치러 가서는 영팀과 올드팀으로 팀을 나누었다.
분명 사람은 총 8명인데 4:3으로 나뉘어 게임을 하는 모순의 그림을 만들어 낸 원인은 나였다. 볼링을 한 번도 쳐보지 않았을뿐더러 편하지 않은 남들 앞에서 운동을 하는 걸 지극히 꺼려한다는 이유로 결국 이모네 가족인 언니 둘과 그 사위 한 명만 영팀이 되어 어른들과 게임을 진행했다. 사실 둘째 언니도 볼링을 쳐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열심히 하는 언니를 보고 있을 테면 나만 그 화면에서 튕겨 나온 듯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한 사람이 볼링을 칠 때마다 호응을 해주고 손바닥을 치며 웃는, 물 흐르듯 진행되는 시간의 흐름에서 자신이 기름이 되어 끼얹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시간과 사람들을 버티듯 견뎌내다가 다시 할머니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었고 배가 고프지 않았던 나는 그때도 뒤의 소파에 앉아있고 나머지 가족들만 식사를 하게 됐다. 그때가 관찰자 시점의 끓는점이 절정으로 되는 때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식사를 하는 친척들의 모습, 특히 이모네 가족이 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흔히 주말드라마에서 볼 수 있던 식사 자리처럼 보이는 것이다.
순간 내가 브라운관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아까의 첫 만남, 점심시간, 볼링장, 저녁 식사 시간 등 모든 시간의 공기가 합쳐 훅 마시게 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빨리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진짜 우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다. 그래서 밥을 먹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빈 방에 가서 잠시 잠을 청했다. 이번 일화로 나는 명절을 견딜 자신이 없는 사람에 가깝다는 걸 기꺼이 인정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과 있는 자리들을 피하고 싶다고. 설령 그들이 가족이더라도 말이다.
친가와 달리 외가 쪽은 사촌들끼리 모이는 시간을 일 년에 한 번 주기적으로 갖고 있음에도 늘 그 만남을 피할 정도다. 굳이 결혼을 해서 불편한 '남'들과 가족이 됐다는 이유로 '명절'에 무조건 만나거나 주기적으로 '친목'을 도모해야 하는 걸 관습처럼 생각하는 어떤 '인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에게도 회피형이 되는 내가 당연하다고 옹호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핏줄이 연결됐다는 이유로 편안함을 주는 관계, 장소에 반드시 흡수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닐 거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해본다.
나아가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인 제도인데 결혼을 선택했다는 대가가 ‘명절'의 기간을 꼭 노동으로 채워야 함도 아닐 것이다. 명절 첫날의 오전부터 여자들이 당연하게 모여서 명절 음식을 만들기 시작할 때 혹시나 그 남편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건 아닌지, 운동을 한다 던 지 더 최악은 거실에서 가만히 누워 티브이만 보는 그 삶이 '당연한' 집안이라면 그 삶 속에 굳이 제 발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웃으겟소리로 조상 덕을 못 받은 사람이 명절에 차례를 열심히 지내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진짜 조상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명절에 여행을 가던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행인지 명절에 여행을 가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을 기리는 자리는 필요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여자들이 희생해야 하는 '명절'에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가 내포된 좋은 바람이 부는 것 같다. 한 관습이 해체되어 가는 것 같아 내심 기쁘다. 사회가 주입해 온 명절에 부합하는 가족상과 너무 비슷하다고 '이모네 가족'을 보고 느꼈던 그 감정은 어쩌면 그렇지 않은 것처럼 나 자신을 속였지만, 이역시 결국 나도 사회적 선입견의 한 프레임에서 한 가족을 가둔 건 아닌가 반성도 하게 된다.
그 무엇이든 어느 쪽으로든 더 좋게 변하길 바란다. 명절이 누구에게나 통속적으로 친척끼리 모이는 날로 칭하게 되지만 오랜만에 가족이 모인다는 이유만으로 각자의 성격을 무시한 채 무조건 행복해야 하는 날이 아니길 이해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명절의 연휴가 가족 개개인의, 더 바라건대 한 젠더에 국한되지 않고 공평한 휴식의 시간으로 닿게 될 때 '어색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모든 시간을 버티듯 살던 철저한 관찰자였던 삶에서 점차 벗어나게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때는 온전히 '현재'의 시간에 흡수되어 가족 구성원의 '나'가 아닌 진정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