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주간에 대한 단상
생일 뿐만 아니라 이따금씩 즐겨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바로 가수 이소라의 track9이다. 이 앨범은 다른 노래들과 달리 앨범 전체의 수록곡들의 트랙 번호가, 각 노래의 제목이 된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된 삶에서, 존재의 이유를 도통 모르겠고 순간마다 삶의 길을 잃고 정체성이 흔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주기적으로 이 노래를 검색해서 듣게 된다. 브런치 첫 연재를 시작하게 된 오늘, 29번째 생일인 9월 3일, 생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해보기로 한다. 제목은 김영민 교수의 유명한 칼럼인 <추억이란 무엇인가>를 인용했다.
이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이 안되는 부분이 없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어느 순간 '생일'이 반갑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나이가 먹어간다는 건 골치 아픈 일이라는 두려움 때문일까? 물론 그 이유도 없다고는 못할 것 같다. 먼 과거에 미래를 생각했을 때 29살이라는 나이는 엄청난 어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막연히 꿈꿨던 이 나이 때의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는, 마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헤서웨이가 변한 후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삶을 상상하다 현실에 다그치듯 살아가는 지금, 상상과 현실 사이의 큰 괴리감에서 자연스레 좌절감을 배우고 극도로 생일이 두려운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탄생이 골치 아픈 일로 여겨진다는 건 비참하다. 솔직히 생일 때마다 나를 낳아 준 엄마에게 수고했어요, 라는 말은 할 수 있어도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에는 멈칫한다. 또 생일 하루 전에는 심장이 콩닥콩닥 뛸 정도로 불안할 때도 있다. 그 감정을 늘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삼켜 왔다.
하물며 요즘은 '생일 주간'이라는 말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유튜브든, 인스타든 sns만 봐도 생일을 정말 행복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보는 그들의 생일의 하루는 모두들에게 태어난 게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인정받는 것 같다. 생일의 24시간은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래서 그들은 '생일 주간'이라는 명목 하에 생일이 있는 주중에는 최대한 본인과 친분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여러 번의 회포를 푸는 것이다. 며칠 동안 생일파티를 하는 그들의 모습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보게 되면, 내 생일이 굉장히 초라하게 느껴진다. 진정으로 나를 축하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내 자신이 못나 보인다.
출처) Photo by Cristian Escobar on Unsplash
생일에 몇명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축하를 받았는가?가 본질의 문제는 아니다. 소중한 날인 생일조차도, 타인의 삶과 비교해 나에게 그들의 최상치의 기준을 적용해서 스스로를 절벽으로 끌어내리는 가에 대한 문제, 즉 낮은 자존감이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본인이 기준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그때도 행복한 생일이 되지 못할 것이다.
분명한 건 평소의 날들을 만족스럽게 못 보냈기에 생일 만.큼은 더 잘 보내야해! 라는 강박감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내가 가장 필요한 건 '생일을 어떻게 잘 보내야할 것인가?'가 아니라 생일이 아닌 모든 날을 생일과 비슷한 가치를 둔 시간으로 여기고 내 소중한 하루를 지킬 방법을 궁리해야한다.
행복해 보이는 남들의 하루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촘촘히 쌓인 과거의 시간들을 해부해 면밀히 살펴보며 과거를 밀어내되 현재를 발판 삼아 미래를 향해 도약하는 것이다. 생일 또한 결국은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되는 날일 뿐이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마냥 행복할 필요는 없다고. 그 시간의 우울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충전하도록 바란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이렇게 태어났고 태어난 지도 모르게 그렇게 잊혀지겠지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
p.s 한번도 태어나고 싶은 적 없었다고. 전하지 못한 말을 삼키고 지금까지 연명해 온 사람들에게, 조금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 온 사람들에게.
고작 인생의 시작일 뿐인 날짜에 세심한 의미를 살피지 말아요. 시작은 있지만 정해지지 않은 끝을 향해, 저마다 다른 형태로 평범한 불행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사람일테니 그 허무함조차 받아들이며 그저 오늘만 행복하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