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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로서의 감정 조절 전략

모자와 앞치마, 명찰이 지켜주는 실제의 나

by 청년백수 방쿤



-a-male-barista-wearing-a-grey-shirt--a-green-apro.png 여유롭게 일하고 싶은 수습의 마음 (AI 생성 이미지)

-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음료를 만들고 푸드를 데우는 일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스타벅스라는 공간을 찾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모든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작게는 환영의 인사부터 크게는 전사적인 시즌 이벤트(리유저블 컵, 더블 슈크림, 원모어 커피 등)까지 도맡아서 진행하는 바리스타는 고객 만족의 모든 행위의 최전선에서 '서비스 전사'로 일을 하고 있다.

- 문제는 모든 고객이 상호 존중과 매너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떤 직업으로 일을 하더라도, 언젠가 한 번은 지나치게 무례한 상대방으로 인해 당황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카페라는 공간의 특성상 더욱 많은 고객을 상대하게 되고, 그 중에서도 '스타벅스'라는 공간은 고객의 요구가 조금 더 많아질 수 밖에 없다. 키오스크가 없고, 진동벨도 대부분의 매장에 없으며, 물을 마시고 싶어도 직접 말을 해서 갖다 마셔야 하기에 바리스타가 매번 고객의 물 요청에도 대응해야 한다. 고객과의 소통의 횟수가 잦아지고, 고객 역시 요구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질 수록 서로간에 오해나 스트레스가 쌓일 위기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내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KakaoTalk_20250224_122345438_13.jpg 모자와 앞치마, 닉네임으로 대변되는 스타벅스의 바리스타 페르소나 장치

- 스타벅스에 출근하면서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 모자와 앞치마, 그리고 닉네임이 표기된 명찰이다.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는 어느 누구도 상호간에 실명으로 부르거나 불리지 않으며, 스스로 선택한 닉네임으로 부르고 불린다. 모자와 앞치마는 위생의 목적도 있겠으나 출근 전과 후의 나를 분리시키는 일종의 유니폼이자 갑옷이 된다. 출근 전후를 명확히 분리시킬 수 있다는 점을 조금만 이해하고 이용해본다면 외부 자극으로부터 오는 내면적 상처를 최대한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 이 내용을 조금 더 풀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 스타벅스 바리스타로서의 나와, 그냥 '나'를 구분 짓는 장치는 모자와 앞치마다. 실제로 조직 내 복장(유니폼)이 개인의 역할 인식과 감정 표현 방식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며, 이는 자아를 보호하거나 제한하는 기능을 모두 할 수도 있다. 결국 '실제의 나'를 '스타벅스 바리스타 베니(기타 당신의 닉네임)'로 만들어 주는 것은 명찰앞치마이며, 이들을 모두 착용 했을때 우리가 노릴 수 있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 이다.


-captured-is-the-image-of-a-male-barista-wearing-a.png 내가 원하는 바리스타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전직을 위해서 필요한 퀘스트는? - (AI 생성 이미지)

1. 바리스타로서의 사명감과 프로 의식 - 실제의 나와 분리하기

"Organizational dress serves as a tangible symbol of the organization's culture and can influence employees' perceptions of their roles within the company."
"조직의 복장은 조직 문화의 유형적 상징으로서 기능하며, 직원들이 회사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출처: Rafaeli, A., & Pratt, M. G. (1993). Tailored meanings: On the meaning and impact of organizational dress.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18(1), 32-55.

- 스타벅스는 어떤 매장을 들어가더라도 거의 비슷한 복장의 파트너들이 맞이해준다. 즉, 스타벅스라는 조직에 속해 있는 모든 파트너들의 외형은 거의 비슷하며, 이들은 외부 고객들이 인식할 때나 내부의 파트너끼리 인식할 때나 모두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인식하게끔 돕는다. 고객들은 모자, 앞치마로 대두되는 외형적 특성에서 이를 느끼며, 파트너 상호 간에는 닉네임과 함께 상호 존중하는 의사소통을 통해서 이를 느낀다. 어찌보면 단순한 이미지적 포장일 수 있지만, 어찌 되었건 자연인으로 직장에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RPG 게임에 로그인 해서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선택해 플레이 한다는 느낌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사명감과 프로 의식 그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일까? 다른 연구에서는 이러한 사명감과 프로의식이야 말로 서비스 직에서의 개인의 자아를 보호할 수 있는 중요한 장치라고 해석한다.

"A strong role identity as a service professional can buffer against emotional exhaustion, suggesting that employees who embrace their service role are less likely to experience burnout."
"서비스 전문가로서의 강한 역할 정체성은 감정적 소진을 완화할 수 있으며, 이는 자신의 서비스 역할을 수용하는 직원들이 소진을 경험할 가능성이 낮음을 시사한다."
Li, J., & Yang, S. (2022). Role Identity and Emotional Exhaustion in the Food Service Industry: A Mixed-Methods Study. Journal of Service Management, 33(4), 557–574.

- 즉, 현재 일하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라, 커피 전문가이자 서비스 전문가로서의 '스타벅스 바리스타'라는 정체성을 새로이 설정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방쿤>이지만 바리스타로 출근하는 순간부터는 고객에게나 파트너 동료들에게나 모두 '베니'로 통하기에 '베니'와 '방쿤'은 서로 다른 존재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를 분리하여 생각하면 적어도 퇴근 후와 출근 전에는 어떠한 스트레스도 받을 필요조차 없다. 매장 안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모자와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퇴근 센싱을 하는 순간 내려 놓고 나오면 된다. 마치 로그아웃 처럼.


- 그렇다면 이렇게 실제의 나와, 바리스타로서의 나를 분리시키면 어떠한 잇점이 있을까. 흔히 말하는 번아웃을 최소화 하거나 피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일상에 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기타 소모적인 정신 활동을 최소화 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두 번째 장점은 다음과 같다.


-captured-is-a-scene-of-logging-out-from-a-game--o.png 출근은 곧 로그인이다 - (AI 생성 이미지)

2. 로그인/로그아웃 효과를 통한 감정 소모의 최소화

"Emotional labor was found to have a significant positive effect on burnout among coffee shop employees, indicating that higher levels of emotional labor are associated with increased burnout."
"감정 노동은 커피숍 직원들의 소진에 유의미한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 감정 노동 수준이 높을수록 소진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im, S., & Lee, J. (2021). Examining the Effects of Emotional Labor on Burnout in Coffee Shop Employees: The Moderating Role of Social Support. International Journal of Hospitality Management, 96, 102951.

- 스타벅스 파트너들의 퇴사 이유중 1위는 감정적 번아웃이다. 감정적 소모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이러한 것들 역시 퇴근 후의 나와 오롯이 분리해서 생각하는 훈련을 한다면 일상 영역까지 직장에서의 우울함이나 좌절,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이 옮아 오진 않는다. 출근 센싱을 마치 게임에 로그인 한다고 생각 하고, 오늘의 과업을 일일 퀘스트라고 느껴 본다면 어떨까. 매일 마주하는 고객들은 오늘의 퀘스트를 위해 필수로 마주쳐야 하는 NPC들이며,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은 길드원인 셈이다. 길마와 부길마(점장과 부점장)도 있고, 공대장(슈퍼바이저)도 있으니 생각해보면 진짜 게임 같이 느껴지긴 한다.


- 물론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시간 동안은 꽤나 몰입이 필요하다. 붕-뜬 감각으로 멍-하니 있다가는 쫓아갈 수 없는 업무 강도와 지식적 요구 사항이 상당한 편이다. 타 카페 보다는 시급이 높은 편이지만, 그렇게 높은 시급 치고도 적잖이 힘들어 하는 파트너들이 많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나 역시 30대 후반에 접어들어서 뒤늦게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나만의 커리어가 10년치 쌓인 상태에서 새로이 쌓아가는 커리어로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롯이 바리스타로서의 나와 분리시킬 만큼의 탄탄한 카페 외적 자아가 있다면 이를 위에서 서술한 로그인/로그아웃 형태로 받아들이기 좀 더 수월해진다. 결국 다른 카페가 아닌 스타벅스를 선택한 이유는, 향후 40대의 삶에 있어서 카페 및 서비스 업무를 스스로 일궈가고 싶기 때문이다.

"The green apron has evolved into a symbol of pride and professionalism among baristas worldwide, embodying the brand's identity and values."
"녹색 앞치마는 전 세계 바리스타들 사이에서 자부심과 전문성의 상징으로 발전하여 브랜드의 정체성과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
Uniform Identity: How Starbucks Aprons Became a Global Symbol of Barista Pride. Wall Street Journal, October 5, 2021.

- 단순히 커피를 내리고 스팀을 치는 기술만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키오스크가 없는 카페의 최전선에서 2000여개가 넘는 매장의 관리 방식과 오픈부터 마감까지 일련의 업무 프로세스 등. '나만의 카페'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수백 가지의 일일 퀘스트를 매일 실천해야 클리어 할 수 있는 거대한 게임이 스타벅스 바리스타 직무라고 생각한다. 이제 막 수습을 달고 절반의 기간이 지났는데, 아직 튜토리얼이 절반 밖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도 스타벅스 바리스타라는 소속감 자체는 일종의 '바리스타 사관학교'를 들어왔다는 자부심 역시 만들어 준다. 기왕 하는 게임이면, 그래도 가장 큰 서버에서 제대로 굴러봐야 하지 않을까?




handoff.png 언젠가 나만의 공간을 갖기 전까지의 기나긴 여정 (AI 생성 이미지)

- 6주 정도 일해 본 스타벅스 바리스타로서의 후기는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버는 돈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힘들지만, 배워감에 있어서는 차고도 넘친다.


흔히들 카페 창업에 있어서 다양한 방법과 길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는 스타벅스에서 최소한 수습 기간이라도 굴러보라고 추천해보고 싶다. 단순히 집에서 혼자 내려 먹는 커피가 좋아서-라기에는 카페에는 정말 다양한 고객들과 니즈가 넘쳐나며 그러한 현장 경험을 돈을 받아가며 배울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으니까. 적어도 스타벅스에서는 창립 이래 꾸준하게 발전 되어 온 운영 메뉴얼과 아카데미 시스템이 존재하며 직급별 교육 과정 역시 탄탄하게 준비되어 있다. 베니로서의 목표는 1년 내로 슈퍼바이저로 승진해보기. 내년 이맘때 쯤이면 아마 슈퍼바이저를 달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한 상상을 해보며 다가오는 일요일, 첫 오픈 레이드를 위해 심기일전 가면을 다듬어봐야겠다.


- 아모쪼록 다양한 서비스 직군에 종사중인 감정 노동자 여러분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일상에서의 나와, 직장에서의 나는 서로 다른 존재임을 명확하게 인지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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