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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경 Jul 06. 2024

프로와 아마추어 (2)

나의 2023-2024 시즌은 I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작년 메도마운트 캠프에서 만났던 I로 인해 음악을 직업으로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말 많이 생각했었고 올해 캠프를 오기 직전에 I를 한국에서 다시 만나면서 드디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렸다. I로 인해 시작된 고민을 I와 함께 정리하다니, 기승전결이 너무나 확실한 드라마틱한 1년이었다. 


I에 대해서는 작년에 다른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작년 여름에 캠프에서 만났던 I는 첼로를 너무 좋아하지만 결국은 음악 말고 현실적인 직업을 택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첼로를 할 수 있는 얼마 안 남은 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음악에 쏟아붓는 중이었다. 시한부로 음악을 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고 (사실 조성진, 임윤찬이 아닌 이상 대부분 다 그렇지 않을까), 음악이 경제적 수단으로서의 직업 가치가 있는지는 늘 의문이기 때문에 I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I가 하는 고민을 너무나 잘 알겠고, 음악을 그만뒀을 때를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작년 여름 매일 밤을 울었단다...)


I가 궁금해하는 (그러나 아마도 선택하지는 않을) 쪽의 인생을 살아본 예시(example)로서 I의 고민에 참고가 될 만한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나는 납득할 만한 이유와 의미를 가지고 음악을 하는 것일까. 음악이 직업인 것과 취미인 것은 무슨 차이일까.




내가 지금 와있는 메도마운트 캠프도 그렇고, 줄리아드, NEC 등등 미국의 탑 콘서바토리들을 보면 결국 음악을 안 할 학생들이 진짜 뛰어난 실력으로 악기를 하는 것을 많이 본다. 솔직히 한국에서 죽어라 악기만 한 전공생보다 더 잘하는 애들이 많다. 나는 저 나이 때 뭐 했지 싶게 놀랍게 잘하는 애들이라 당연히 프로페셔널 뮤지션이 될 줄 알았는데 줄리아드-콜롬비아, 하버드-NEC 같은 듀얼 프로그램으로 진학해서 악기를 좀 더 하는가 싶더니 결국은 로스쿨, 메디컬 스쿨, 투자은행, 엔지니어 등등 다른 분야로 가는 거 심심찮게 본다. 콩쿨도 나가고 오케스트라 협연도 하고 여름마다 각종 캠프며 마스터 클래스 참가하면서 전공자와 똑같이 competitively(치열하게) 음악을 한 후에 말이다. 학부만 하고 끝내기가 아쉬우면 석사(Master's degree)나 연주자 과정(Certificate/Diploma)으로 2년 정도 악기를 더 하고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본인도 악기 하는 걸 정말 좋아하고 또 잘하는데도.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를 연주 실력으로 구분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저런 애가 음악 안 하면 누가 할까 싶게 출중한데 아마추어로 남는 경우를 나는 정말 많이 봤고, 솔직히 말해서 현직에 활동 중인 프로페셔널이라는 사람들 중에 '저렇게 하고도 돈을 받나?'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다. 음악계에서 프로페셔널이라 함은 본인이 음악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해온 사람이지 실력순으로 살아남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학위만 따면 프로페셔널이 될 수 있다.




I는 지난 1년 동안 full time 음악 전공생으로 첼로만 하면서 지냈는데 이번 6월에 한국에 나와서 만나보니 세상에, 작년 캠프에서 봤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1년 동안 연습만 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는데 Yes, I can really see that. 악기를 하는 것은 발전을 지나 진화(evolution)를 한 수준이었고 음악에 대해서도 마음이 많이 정리되었다고 했다. 앞으로 2년만 더 첼로를 해볼 생각인데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만둘 수 있을 것 같다고.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게 자기가 해볼 수 있는 걸 다 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 아이의 고뇌, 결심, 도전 모든 것이 너무 아름다워 보이고 그런 걸 겪는 젊음이 부러웠다. (부럽다기 보다 그립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너 같은 고민을 하던 때가 있었지. 내 결정 하나하나에 인생이 달린 것 같아서 엄청 책임감을 느끼고 두렵기도 하고 그랬는데... 힘들고 서툴렀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어렸던 내 모습이 그립다.)


아래 영상들은 이번 6월에 I 같이 했던 연주이다. 갑자기 한국에 방문하게 됐다고 연락이 와서 마침 잡혀있던 강연에 불러서 연주를 시켰다. 일주일 만에 급히 시킨 연주고 악기도 남의 것 빌린 것인데도 이 정도 한다. 미국에서 공부/악기 병행하는 학생들 수준이 궁금하다면 참고가 될 것이다. 1년 만에 이렇게 달라지는 속도라면 앞으로 5년, 10년만 음악에 올인하면 뭐가 돼도 될 것 같은데. 차라리 니가 공부를 못 했으면 선택이 쉬웠으려나 ㅠㅠ 



그러고 보니 내가 미국에서 만났던 학부형들 중에 지금은 어디 공대 연구교수, 의사 이런 거 하는데 예전에 자기도 악기 했었다는 아버지들이 꽤 많았다. 자기네가 음악을 좋아했어서 애들에게도 음악을 권유했고, 애들도 유전으로 음악을 좋아하고 잘 하지만 굳이 생존을 목표로 음악을 하진 않는다. 뭔가 럭셔리하다. 취미가 될 일을 이 정도 레벨로 해볼 수 있다는 것. 안목을 가진 진정한 애호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I도 나중에 그런 아빠가 되는 건가? 하고 잠시 상상해 봤다 ㅎㅎ




나한테 있어서 음악을 직업으로 갖는다는 건 '좋아하니까'라는 순수한 이기심 말고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이기적인 줄 알면서도 하는 거니까 하는 동안 계속해서 발전이라도 해야 떳떳한 거고, 음악을 선택한 내 인생이 우스워지지 않기 위해서 잘하고 싶은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인생에서 가끔씩 만나게 되는 I 같은 학생들에게 경쟁심 비슷한 걸 가지고 있다. 이렇게 머리가 비상하고 생각이 깊은 애들과 대화가 되고 가르쳐 줄 게 있으려면 대충 알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얘네들은 앞으로 한참 성장할 텐데 나중에 나를 다시 만났을 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가 죽어도 싫은 것이다. 아이들이 발전하는 만큼 나도 더 발전해서 따라잡히지 않고 싶지 않은 경쟁심이랄까 자극이랄까 그런 게 있다. 프로페셔널은 다만 손가락을 잘 돌리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손가락은 아마추어로 남기로 한 너희들도 충분히 잘 돌아가는걸... 나이를 먹는 만큼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그런 내 모습이 나의 음악에 드러나도록 표현력을 갖추는 것 - 그래야만 내가 음악을 업으로 삼고 해왔다는 자긍심을 갖게 할 것이다. 쪽팔린 어른이 되고 싶진 않다. 


음악을 하며 사는 게 뭘까라는 화두를 던져줬던 I에게 감사한다. 음악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며 1년을 마무리하던 때에 뜻밖의 한국에서 I를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의미가 컸다. 1년 새 많이 달라진 I와 여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나도 1년을 잘 보낸 거구나 싶어서 뿌듯했다. 앞으로 우리가 또 만나게 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계속 잘 살아보자꾸나. 프로 or 아마, 뭐가 됐던 음악과 함께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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