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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인분공부 Jul 13. 2020

힐빌리의 노래 - 양극화된 세계에 울려 퍼지는 悲歌

미국 대선전이 뜨겁던 2016년 여름, 미국에서는 <Hillbilly Elegy>가 선풍적인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원래 영미권 화제작들은 현지에서 출간되기 전에 해외에 판권이 수출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되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 상황에서도 국내에 계약되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 미국적인 책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오바마의 대선 출사표와도 같았던 <버락 오마바, 담대한 희망>과 “가난한 사람들이 왜 자신의 이익과 반대로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가”라는 진보의 고민에 답하며 정체성 정치와 프레임 이론을 대중화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개정판) 편집을 담당하며 미국 정치 현실에 익숙했던 나는 <Hillbilly Elegy>가 얼마나 중요한 책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미국의 몰락한 제조업 지대 러스트벨트(rust belt)의 저학력, 저소득 블루칼라 백인들의 좌절감이 트럼프 현상의 원천임을 지금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큰 관심이 없는 주제였다.      

나는 에이전시에 연락해 원서를 검토해 보았다. 생생한 개인적 체험을 통해 정치적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는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검토 자료를 사내에 공유하고 논의해 보아도 다들 별로 반응이 없었다. 당시 나는 편집 주간으로서의 업무가 너무나 많아서 도저히 편집 실무를 진행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반드시 계약해야 할 책이었지만 내가 실무를 담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내에서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계약하자고 주장하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설사 계약이 되더라도 관심 없는 실무자에게 책을 만들라고 강요할 일이 부담스러웠다.     


많이 팔릴 책이라면 실무자들이나 경영자가 별로 관심이 없는 책이라도 강력하게 계약할 것을 주장했겠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은 낮아 보였고 미국 정치의 속살을 다룬 책이 국내에서 많이 팔릴 거라고 단언하기 어려웠다. 그런 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한 책이니 당장의 판매 예측치를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계약하자고 강권하는 것은 내 취향을 남에게 강요하는 일일 뿐이었다.      


나는 시간을 질질 끌다가 할 수 없이 에이전시에 반려 의사를 표하며 이 책을 계약하는 국내 출판사가 없다면 내가 개인적으로라도 번역해서 내고 싶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당시로서는 이 책이 몇 달 동안 미국에서 최고의 화제작이자 베스트셀러였는데도 국내에 판권이 팔리지 않았으므로 국내에 번역이 되어 나오기는 할까 의문이었다.      

그런데 11월 대선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국내외의 패닉 속에서 나는 바로 에이전시에 연락해서 이 책이 계약되었냐고 문의했다. 다행히 계약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즉시 사내에서 논의를 진행한 후 해당 책에 오퍼하겠다고 연락했다. 에이전시에서는 다른 출판사들도 뒤늦게 몇 군데 문의했으므로 그들에게 책을 검토할 시간을 준 후 마감하겠다고 했다.      

이 책을 검토하고 가치를 파악한 9월에 계약했다면 낮은 선인세에 계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에이전시에서 다섯 달 동안 열심히 소개한 화제의 베스트셀러인데도 계약이 되지 않았던 책이기 때문이다. 대선 후에 오퍼하는 바람에 몇몇 출판사와 경쟁이 붙었다. 그렇더라도 이 책의 화제성에 비하면 아주 무난한 금액에 계약이 되었다. 아마도 자금력이 있는 대형 출판사들에서 이 책의 가치를 미처 몰랐던 것 같다. 물론 이 책이 국내에서 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투자한 선인세 수준에 비해 몇 배 높은 수익을 거두었다.      



책의 가치를 재무적 성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이 책은 미국 정치의 핵심 쟁점을 다루고 있으면서 동시에 세계화된 부유한 국가들 내부에 섬처럼 고립된 사람들의 문화심리학을 다룬다. 낙후된 내륙과 부유한 해안가 대도시가 마치 두 개의 국가처럼 분열된 미국의 현재 모습은 ‘브렉시트’로 표면화된 영국의 분열상이기도 하고, 제조업 기반 지방도시들이 쇠퇴하고 모든 부가 수도권으로 몰리는 우리나라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회복지 차원에서 이 책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거주할 집을 주고 대학 장학금을 주어도 해소되지 않는 양극화 문제의 근원을 건드린다. 이제는 대중화된 개념인 ‘사회 자본’, ‘문화 자본’이 핵심이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부모도, 인생의 목표도, 소속감을 느낄 공동체도 없는 아이들 중 상당수는 사회에 적응하기 전에 이미 패배자로 자라난다. 어머니의 동거남이나 아버지의 동거녀가 계속 바뀌는 불안정한 가정환경, 마약·도박·알코올 등에 중독되어 자식을 돌보지 않는 부모, 자긍심과 소속감의 부재, 가난과 비참을 스스로 증명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굴욕감, 주거 복지가 대상 주택 주변까지 슬럼화하는 문제 등은 미국만이 아니라 현대 국가들이 당면한 보편적인 현실이다.      


교육을 통한 기회 균등과 계층 이동성 회복, 사회복지와 청소년 문제를 논할 때 미국의 상원의원이었던 모이니한 의원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중도 보수주의의 진실은 한 사회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라 문화라는 것이다. 중도 진보주의의 진실은 정치는 문화를 바꿀 수 있고, 정치로부터 문화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우한 사람들을 엄격한 기준으로 선별하여 경제적 지원을 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면 낙인 효과가 생기고 지원이 끊길까 봐 자립하려는 노력에 소홀해지기 쉽다. 사람들은 자신을 뛰어넘는 더 크고 안정된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 뭔가 중대한 목표에 헌신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 욕구가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짜뉴스에 휘둘리고 사이비 종교와 혐오의 정치에 빠져들고 있다. 가정형편이 열악한 아이들도 충분한 사회 자본과 문화 자본을 축적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불우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나눌 게 아니라 그들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와 문화를 고민해야 하고 가정형편과 상관없이 누구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건전한 공동체를 육성해야 한다.      


목표의 부재, 소속감의 부재가 이 시대의 질병이다. 모이니한의 말처럼 정치와 문화가 모두 중요하다. 정치가 문화를 바꿀 수 있고, 문화가 정치를 바꿀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외된 노인들이 태극기 부대가 되고 극단적인 보수 유튜브 방송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주요 정치 현상이 되었으며 이와 비슷한 문화적, 정치적 현상이 청년 세대에서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힐빌리의 노래>가 제기하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 역시 사회의 양극화가 정치의 양극화로 고착화된 현재의 미국처럼 해결이 난망한 혼란과 분열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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