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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Jan 25. 2019

자책감은 양심일까?

자기 책임감

'내 탓이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라는 뜻이다.

남 탓, 세상 탓을 하면서 싸움을 일으키는 것과 반대 방향이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태도가 판치는 세상에선 약이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과하면 탈이 나는 법!

내 탓을 과하게 해서 자책으로 빠지면 약이 아니라 독이다.

자책과 자기 책임감을 구분해야 하겠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소재를 찾게 된다.

잘못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사실 관계를 뚜렷이 밝히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한테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순리라 하겠다.

그런데 세상 일이란 것이 두부 자르듯 뚜렷하게 구분되는가?

애매한 영역이 생기기 마련이다.


흔히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처리할 때에도 과실이 누구한테 많은가를 가리기 어렵다.

가만히 서 있는 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면, 추돌을 일으킨 차한테 사고의 책임이 있다.

그런데 서 있는 곳이 교차로 한가운데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구의 과실이 더 큰가를 두고 설전을 벌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모호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 자기 과실은 감추고 상대의 과실을 드러내면서 유리한 입장에 서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관련 지식이나 정보가 많을수록 더 보편성 있는 판단을 하는 것이 마땅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양심에 비추어 어긋남이 없게끔 주장을 하고 협상을 한다면 세상이 시끄러워질 일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다 보면 양심을 접어두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힘이 약한 사람들은 이렇게 험악한 세태 속에서 억울하게 불이익을 받는다.


양심을 저버린 정의롭지 못한 행위들이 오히려 유능한 것인 양 여겨지는 세상에서는 책임을 뚜렷하게 밝히는 행위를 하는 데에도 목숨을 걸 만큼의 용기를 내어야 한다.

양심을 저버리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타락한 세상에서 부조리한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

양심에 따라 살려고 해도 너무나 단단하고 높은 부조리의 벽에 부딪혀 상처를 입기 일쑤이다.

결국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심한 자책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이해관계에 눈이 멀어서 양심을 저버린 사람들은 자신이 잡아야 할 선을 고르느라 분주하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거나 속이는 행위도 서슴지 않으며 약한 자들을 사정없이 몰아세우며 공격한다.

이들은 자신의 행위 때문에 생긴 문제도 오히려 피해자들한테 책임을 전가하곤 한다.

"아니꼬우면 출세해라." 하는 것이 그들이 뻔뻔스럽게 내세우는 논리이다.


당신이라면 양심을 저버리고 자기 욕심을 채우는 삶과 양심을 지키느라 현실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삶 가운데 어떤 삶을 택할까?

세상이 나름의 질서대로 돌아가면서 유지되는 이유는 그래도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양심껏 사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뻔뻔한 사람들이 자리를 꿰어 차고 있다면 어떤 조직이 유지될 수 있을까?

세상이 타락하고 시끄러워 보여도 양심에 따라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힘으로 세상의 질서는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부조리한 현실에 환멸을 느끼는 것이 양심에 맞는 생각일까?

양심을 지키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환멸감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자책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

이것이 그들이 가진 양심이다.

환멸을 느끼면서 남 탓을 심하게 하거나 자책감에 빠져 드는 사람은 오히려 책임을 망각한 자일뿐이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자기를 책망하는 것은 부조리에 빠져서 타락하는 것만큼이나 해롭다.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자기를 책망하는 마음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생각은 '무책임성'이다.

나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

자신의 행위와 현실의 관련성을 자각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책임성'이다.

잘못되거나 어긋난 현실을 탓하고 비난하는데 마음을 뺏기는 순간 그는 자신의 삶에 무책임해지는 것이다.



남을 탓하거나 세상을 탓하며 억울해하고 분노하고 환멸을 느끼는 것은 자기 책임성을 망각한 자기 소외이다.

자기를 책망하며 자책에 빠지는 것 또한 방향만 다를 뿐이지 자기 소외임에 분명하다.

진정한 자기 책임감은 부조리 속에서 양심과 합리성을 되찾으려는 마음으로 나타난다.

안이로든 밖으로든 탓(책망)하는 마음은 어리석다.

탓하려는 마음 대신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책임을 찾아서 실천해내려는 자유의지야말로 양심이 제대로 드러나는 마음이다.

탓하지 말고 할 일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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