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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May 11. 2019

아름다운 경치를 아껴 보려고

절제미

"왜 창을 이렇게 조그맣게 냈을까요?"

"난방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주변의 아름다움을 아껴서 즐기려고 그런 겁니다."

"아껴서 즐긴다고요?"

"소중한 것은 아끼지 않습니까!"



산속에 자리 잡은 절 건물이 특이했다.

단청도 없고 기와도 없다.

언뜻 보기에는 연구소 건물 같아 보인다.

유명한 건축가가 현대식으로 지었단다.


건물주인 스님은 차를 내어주며 묻는다.

"조용한 산속에 오니 마음이 어떻습니까?"

방문객들은 이런저런 대답을 한다.

"공기가 너무 좋아서 피로가 풀려요."

"오랜만에 흙을 밟으니 기분이 아주 좋아요."

"저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요."


스님은 미소를 넉넉한 웃음을 짓는다.

잠시 침묵한 후 다시 말문을 연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묻는다.

"이 건물은 절 같지 않아요. 이렇게 현대식으로 지으신 이유가 있나요?"


스님은 빙그레 웃더니 진지하게 말한다.

"저는 그냥 남들을 따라 하거나 모두 똑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싫어합니다. 지금 지은 건물이 후대에는 문화재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꼭 옛날 방식을 따라야 할 필요가 없지요."

스님의 진지한 말씀에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이때 스님이 기습하듯 한 마디를 던진다.


"여기 이 창은 왜 이렇게 조그맣게 내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창문이 좁게 나 있는 것이 보인다.

방문객들은 나름 머리를 굴려 이유를 찾아 대답한다.

"냉난방 문제 때문이겠죠."

"참선하시려고 빛을 조금만 들이시는 것 아닌가요?"

"이 건물을 지을 당시에는 통창이 없었나 보죠."


이런저런 추측이 오간 뒤에 스님이 비로소 입을 연다.

"아껴서 보려고 창을 작게 냈습니다."

방문객들은 의아해하며 스님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스님이 다시 한마디 던진다.

"소중한 것은 아끼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친절한 스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배가 고플 때 밥을 허겁지겁 먹으면 체할 수 있지요? 배가 터지도록 먹으면 만족스러운가요? 배를 조금은 비워둬야 허기도 가시고 건강에도 좋습니다. 욕구를 다 만족시키면 귀한 줄 모르게 되지요. 조금 부족한 듯싶을 때 소중함을 더 깊이 느끼는 법입니다."



"조금 부족한 듯 누린다."

절제의 미학!

다 채우지 않고 조금 비워두는 지혜!

씹을수록 맛이 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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