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귀해서 안 가르쳤습니다

귀한 대접

by 방기연

상견례 자리에서 금명이 국을 뜬다.

너무나 서툴다.

결국 애순이 나서서 정리한다.

그리고 영범 엄마에게 말한다.

"너무 귀해서 살림을 안 가르쳤습니다."


애순은 딸이 눈치 보지 않는 삶을 살게 하고 싶었다.

시할머니의 반대를 거스르며 금명이 자전거를 타게 해 주었다.

관식은 언제나 금명의 편이었다.

"가다가 힘들면 언제든 빠꾸해. 아빠가 있으니까."

부모의 절대적이 사랑 속에서 금명은 구김살 없이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예비 시어머니 앞에서는 무한정 당당할 수 없었다.

상견례 자리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금명이 식구들이 안쓰럽다.

참다가 참다가 결국 애순이 한마디 한 것이다.

너무 귀해서 안 가르쳤노라고.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속이 시원했다.


만약 관식이 영범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어머니의 무례함을 대놓고 사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범은 부모의 그늘 아래 있었다.

온실 속 화초 같았던 것이다.

영범이 금명을 얻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로 보인다.


어떤 비평가는 말한다.

관식이나 애순처럼 자식을 기르면 오히려 자식한테 안 좋을 수 있다고.

귀할수록 험하게 키워야 한다는 말도 있다.

아마도 이 험한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견뎌내기 위해서 강해져야 한다는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금명은 약하지 않았다.

부모의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 속에서 자랐어도 되바라지거나 제멋대로 구는 괴물로 크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강하고 분명한 내면을 지니게 되지 않았는가.


누구든 주체적으로 살 권리가 있다.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에 길들여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관식과 애순은 타협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다.

금명이 당당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배경이 바로 부모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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