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식
"행실이 어땠길래~"
성범죄 피해자를 바라보는 몹쓸 시각이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무지함이 어디서 나올까.
'악의 평범성'이 떠오른다.
(4월 10일 참나원 방송)

영화 '사마리아'는 원조교제를 다룬다.
두 여학생이 유럽 여행을 하려고 원조 교제로 돈을 번다.
단속에 걸려 도망치다 한 명이 목숨을 잃는다.
죄책감에 빠진 다른 한 명은 친구와 원조교제를 한 사람들한테 돈을 돌려준다.
그런데 이 학생의 아빠가 형사다.
원조교제를 수사하다가 딸을 발견하고 괴로워한다.
딸한테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응징에 나선다.
결국 범죄자가 되어 딸 혼자 남게 된다.
영화 '한공주'는 집단 성폭행을 다룬다.
주인공은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전학을 한다.
가해자들이 찾아와 합의를 요구한다.
주인공의 아빠는 그들과 타협한다.
두 영화에서 우리 사회의 성의식을 엿볼 수 있다.
성범죄 피해자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진실을 마주하기보다 책임을 피하려는 모양새가 뚜렷하다.
과잉 대응이나 비굴한 타협은 올바른 대처방법일 수 없다.
영화 '사마리아'에서 아빠가 딸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어땠을까.
아빠는 무엇이 두려워서 딸과 소통을 하지 못했을까.
아빠의 경직된 성의식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밖에 보지 못한다.
영화 '한공주'에서는 부조리한 사회구조가 드러난다.
약한 피해자와 강한 가해자.
공정하지 못한 제도.
피해자는 코통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것은 '악의 평범성'이 아닐까.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행위가 악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왜 피해자의 행실부터 문제 삼는가.
너무나 잔인하지 않은가.
'누구나 다 그래'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이 알량한 합리화로 책임을 피한다.
그래서 악이 일상화되고 만다.
일상화된 악은 엄청난 고통을 부른다.

집단화된 의식은 맹목성을 띌 위험이 크다.
성차별 의식이나 지역감정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낡은 의식이 집단화된 적폐의 피해는 누가 입는가.
개인이든 사회든 깨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