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보왕삼매론의 한 구절이다.
영화 "쓰리 빌보드"를 보면 알 수 있다.
억울할 때 최선의 대응법이 무엇인지.
(4월 24일 참나원 방송)

이 영화는 답답하다.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구현되는 내용이 아니다.
강간살해범은 잡히지 않는다.
꼬이고 얽히는 와중에 사건은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엄마와 다투고 집을 나섰던 딸이 강간당하고 불에 태워져 살해당한다.
엄마는 너무나 미안해서 범인 체포에 적극 나선다.
하지만 보수적인 마을 분위기에서 수사도 미온적으로 보인다.
엄마는 마을 입구에 커다란 광고판을 세 개 세운다.
광고판에는 경찰서장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마을 분위기는 뒤숭숭해지고 엄마는 사람들한테 기피인물이 되어버린다.
쉬쉬하고 방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는 분통이 터진다.
급기야 누군가 광고판을 태워버리는 사건이 생긴다.
다혈질인 엄마는 경찰서에 화염병을 던져 불을 낸다.
하지만 불을 지른 사람은 경찰이 아니었다.
딸 또래의 여자와 바람이 나 집을 나간 전남편의 소행이었다.
엄마의 화가 향했던 대상들은 정말 미워할만한 사람들이었을까.
비난의 대상이 된 경찰서장은 사실 시한부 인생이었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도 수사를 부탁하고 광고비를 내는 모습을 보인다.
그냥 몸을 사리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는 아주 다른 경우가 많다.
망나니 같은 행동을 보이던 형사도 나온다.
서장이 죽으며 남긴 편지에서 그는 따뜻한 위로를 받고 새사람이 된다.
못된 놈으로만 보였던 그가 정의를 수호하는 믿음직스러운 존재로 변모한다.
주인공인 엄마의 변화에 못지않은 반전이다.
왜 억울함을 밝히지 말라고 하는가.
경전에는 원망하는 마음을 돕기 때문이라고 한다.
억울함을 밝히려면 원망하는 마음이 커지기 쉽다.
화를 내는 마음으로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다.
누구나 다 나름의 사정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을 수 있는 경우는 없다.

억울함은 풀어야 한다.
그런데 억울하면 눈이 멀기 쉽다.
먼저 눈을 떠야 한다.
그래서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