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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Dec 13. 2018

내담자의 양가감정

저항의 뿌리

"제가 요즘 심정이 너무 복잡해서 상담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다음에 다시 상담하러 오려고 해요."

상담이 중단되는 경우에 내담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말을 하는 내담자는 무엇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것일까?

내담자의 양가감정을 살펴본다.



심정이 복잡하고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낄 때 상담을 받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심정이 복잡해져서 상담하는데 집중하기가 어려워 스스로 마음 정리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과연 내담자는 상담을 어떤 목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일까?

도움을 받으려 하면서도 정막 필요한 부분에서 도움받기를 꺼리는 묘한 심리가 깔려 있다.


상담 관계도 인간관계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방한테 호감을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내담자도 상담자한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을 것이다.

어려운 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담자가 보이는 지지나 격려를 통해 힘을 얻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상담자의 기대를 만족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곤 한다.

더 나아가 상담자한테 매력적인 내담자이고 싶어 지기도 한다.


이 심리는 전이 감정과 다르다.

전이 감정은 과거에 다른 대상한테 가졌던 감정이 상담자한테 향하는 일종의 착각이지만, 상담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거나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은 실제 감정일 수 있다.

이런 마음이 생기면 상담은 위기를 맞이한다.

내담자가 솔직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일거수일투족에 아주 주의 깊은 관심을 보인다.

바람직한 행동을 모일 때마다 토점을 맞추면서 인정하고 격려하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내담자는 상담자의 반응에 영향을 적지 않게 받게 된다.

상담자가 적절하고 사려 깊은 반응을 함으로써 내담자의 사고나 행동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내담자는 상담자의 지지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면서 비합리적 사고를 바꾼다거나 더 효과적이고 적응적인 행동을 더 하게 되곤 한다.


그런데 내담자가 상담자의 인정을 받거나 호감을 얻으려고 하는 동기가 애초 정했던 상담 목적보다 더 강력해지면 문제가 생긴다.

수단과 목적이 자리바꿈을 해버리는 것이다.

상담자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은 분명히 상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상담자도 내담자의 특정 언행에 초점을 맞추고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은 내담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상담 목적을 이루려는 수단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상담자의 눈에 드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


내담자는 상담자의 생각이나 말, 표정 따위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상담 목표를 망각할 수 있다.

잘하려고 하면 긴장이 더 심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내담자가 상담자한테 민감해지면서 내담자는 자기도 모르게 상담 장면에서 더 많은 긴장을 하게 된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생각이 복잡해지고 얽혀버릴 수밖에 없다.

이전보다 더 상담에서 버벅거리거나 과제에 집중하지 못한다거나 잘하던 것도 실수를 하게 되는 등 일은 점점 더 꼬일 수 있다.

그래서 급기야 '상담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마음 정리할 시간을 갖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만다.


내담자는 상담을 하면서 양가감정을 갖게 되기 쉽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절박함상담자한테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공존한다.

물론 이 둘은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

상담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고 상담자의 지지와 격려를 받으면서 상담이 진행되면 합의한 상담 목표를 이루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기 쉽다.

그래서 이 두 욕구가 항상 상반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잠재된 강한 욕구가 개입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마음속 깊이 묻혀 있는 한과 같은 응어리가 활성화되면 상담 목표는 중요도에서 밀리게 된다.

물론 이런 심리 과정을 내담자는 자각하지 못한다.

만약 상담자도 이런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상담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권위자한테 인정받고 그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욕구는 거의 생존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하다.


상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애쓰는 것이 별로 의미 없이 느껴지기도 하고 심한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저항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더 위험한 사실은 이러한 저항이 왜 생기는지 당사자가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내담자의 양가감정이 상담 목표를 이루는데 나타나는 원인 모를 저항의 뿌리인 셈이다.



복잡한 심정을 정리하기 위해 상담을 쉬겠다는 결심을 할 정도라면 상담자의 어떤 설득도 쓸모없는 경우가 많다.

그저 대책 없이 상담이 중단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할 때 상담자도 무력감을 느낀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 상담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상담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

내담자한테서 나타나는 미세한 심리적 변화라도 상담자는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이다.

양가감정이 발견되면 곧바로 화제로 삼아서 다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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