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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갈등에서 홀로서기

청년들의 홀로서기 응원가 1절

이글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한 여학생과의 만남에서 소소하게 코칭, 멘토링 하는 과정을 가볍게 기록한 글입니다.



오늘은 H를 처음 만나는 날. 나는 이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마침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운 바람에 조용하고 아늑한 우리집 거실이 서로 오픈하고 관계를 형성하는데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H는 시간보다 5분 정도 일찍 도착했고, 기특하게도 우리 아이들에게 타주면 좋을 핫초코를 사들고 왔다.


크고 시원한 눈매에 긴 생머리를 한, 예쁘고 당찬 여대생의 모습을 한 H와 간단한 인사말과 여담을 나눈 후, 나는 곧바로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 H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네  자신의 언어가 문제라고 하였다. 언어? 일주일 전 H와 처음으로 전화통화하면서 3월부터 대학원에 다녀야 하고 영어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내가 할 일은 당연히 H의 학업이나 취업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이 친구와의 코칭의 주요 콘텐츠가 공부나 취업이 되고 나머지는 이것을 도와주는 형태로 디자인 해주면 되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내 질문의 의미는 '공부할 때 뭐가 가장 문제니?' 였는데, 공부말고 이 H의 마음을 괴롭히는 더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언어가 문제라니 그게 무슨 뜻이니?"

"저희 부모님이 자주 다투시는데, 제가 그것을 중재해보려고 하다가 잘 안되면 저도 말을 함부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나는 복잡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하지만 많은 가정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문제) 속에 H가 있음을 직감했다. H가 문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동안, 나는 H와의 만남을 단순히 학습코칭이나 시험합격을 위한 일상 생활 설계로 접근했던 방식이 옳은지 의문이 생겼다.


취업과 공부에 한참 전념해야 할 이 친구는 이 문제로 생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부모님의 다툼에 대해 자신만의 분석과 대처 방법 등을 들으며, 나도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싸우셨을 때 두렵고 슬펐던 기억이 났다. 대학을 졸업한 어엿한 아가씨인 H가 갑자기 어린 아이로 느껴졌다. 이 아이는 이런 마음의 추위를  반복적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문제의 원인을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언어문제로 귀인하며 스스로 뭔가를 해결해보려고 애쓰고 있는 듯 했다.


이 분야에 대한 전문성도 경험도 부족한 나는 결국 이 것은 두분의 문제이며, 엄마와의 관계, 아빠와의 관계에서 각각 좋은 딸이 되도록 노력할 뿐, 두분 사이에서 H가 할일은 거의 없다고 약간은 냉정하게 말해주었다. 일흔이 넘으신 우리 부모님도 여전히 티격태격 하실 때가 있다라고 위로해주었다.


자녀를 둔 부부들이여, 당신이 엄마라면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전에 좋은 아빠를 만들어 주고, 당신이 아빠라면 좋은 아빠가 되기 전에 좋은 엄마를 만들어 주라. 나에게 남편은 그저 삶의 동반자일 뿐지만, 아이에게는 존재의 근원이다. 내가 자녀 앞에서 배우자에게 흠을 내는 순간, 아이는 자신의 뿌리와 근원에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책상 앞에서 책속의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다른 것을 찾기 위해 기웃거릴 것이다.


자녀가 공부에 전념했으면 하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성취하고 실패해도 다시 딛고 일어서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오늘 나는 자녀 앞에서 배우자의 권위를 세워주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그것이 곧 아이를 세워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부모갈등에 노출된 아이는 무의식에 정서적 불안을 지니고 살아간다. 이것은 학습할 때 아이가 자신의 자원(지능, 창의성, 사전지식, 경험 등)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한번 실패하면 딛고 일어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뿌리가 약해 딛을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불안은 학습에 필요한 인지적, 정서적 자원 활용의 비효율을 초래한다.


H는 이미 어엿한 성인이다. 부모의 영향을 주체적으로 선별할 수 있는 나이다. 좋은 영향이라 생각되면 받고, 나쁜 영향이라면 살짝 비켜가라고 했다. 그리고 너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곳으로 자주 찾아가라 했다. 그 중 한 곳이 이곳이 되길 바라면서. H, 너의 언어는 문제가 없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해서 좋아. 나는 너만할 때 어른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내 이야기를 펼치지 못했단다. 첫 만남에서 마음문을 열어 준 H가 고마웠다. 자신의 문제를 내어 보여줄 때 상대에게 도우려는 마음이 생기는 법이다. 이후의 만남에서 오늘처럼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만, 어떠한 멘토링이나 코칭이 오가더라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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