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미스를 스타트업으로 연결하는 하브루타
우리 주변에 유대인은 거의 없다. 이태원에 천명 정도 있다고 하나 정확한 통계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대인들의 영향력 아래에 살고 있다. 그들은 노벨상을 많이 타고,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과 금융, 언론, 교육을 소유하거나 경영하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첨단 테크놀로지 분야도 다 섭렵했다는 점이다. 눈 뜨자마자 사용하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hp, 아마존, 이베이, 스타벅스 등 거대 플랫폼 뒤에 유대인들이 포진하고 있다. 최근에 읽은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도 모두 유대인이더라. 아침마다 요한복음을 읽는데, 예수님 포함 그곳에 나온 주요 인물들 죄다 유대인이다. 그러니까 내 주변에 유대인이 없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
https://www.haaretz.com/israel-news/EXT-INTERACTIVE-best-companies-israel-2020-ranked-1.8840479
유대인들에게는 토론하고 논쟁하는 하브루타 학습문화가 있다. 그들의 도서관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둘씩 짝지어 탈무드를 가지고 요란하게 토론한다. 옆 사람 소리가 시끄러워 토론에 집중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질문이다. 다음은 유대인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대화이다(하브루타 네 질문이 뭐니 중).
교수: 운동이 노화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니?
학생: 운동 종류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어떤 종류의 운동을 말씀하시는 거죠?
교수: 음, 유산소 운동의 경우라고 할까?
학생: 높은 강도의 유산소 운동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낮은 강도의 유산소 운동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교수: 높은 강도의 유산소 운동이라고 해볼까?
학생: 강도가 높은 유산소 운동도 기준에 따라 다를 텐데, 어느 정도 강도로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하루 30분? 1시간?
교수: 누가 유대인 아니랄까 봐. 더 이상 질문하지 말고 이제 대답을 좀 해볼래? ^^
학생이 무례해 보이는가? 한심해 보이는가? 학생은 교수의 질문이 너무 방대해 적절한 답을 하기 어려워 질문을 통해 생각을 구체화시켜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실시간 화상 수업이 많은데 나 혼자만 말하는 것 같아 질문 좀 해보라고 하면 모니터 앞 수십 명의 얼굴들이 정지화면이 된다(온라인 대학으로 유명한 미네르바 스쿨은 교수가 5분 연속 발언하면 경고음이 울리고, 10분 이상 이야기하면 시스템이 교수의 마이크를 꺼버린다). 아이들의 수업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플립러닝 방식으로 강의 영상을 미리 제공해서 질문을 준비해 오라고도 하고, 교수가 아닌 동료학습자에게 질문을 하라고 한다. "교수님은 너희들이 궁금해하는 것이라면 어떤 사소한 질문도 좋아."라며 안전지대를 만들어주면 그나마 질문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우리 사회 질문을 저해하는 심리적 요인들이 MZ세대라고 거스를 일이 없나보다. 안타깝다. 하지만, 사회심리적 요인이 해결된다고 해도 자신의 내면에 힘이 없으면 질문이 안 생긴다. 내 안의 지적 호기심, 권위에 도전하는 마음,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창조성이 꿈틀댈 때, 비로소 질문이 생긴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두나미스(dymanic, dynamite의 어원)라고 하는데, 내 안의 놀라운 능력, 기적과 같은 유능함을 말한다. 경전이든 교양서든 교과서든 공부하고 연구할 때 두나미스에 따르면 넘치는 아이디어와 도전하는 에너지에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 AI 산업 점유율 3위이다. 앞서 말한 거대 플랫폼의 기술연구소 대부분은 이스라엘에 있다. 겉으로 보면 미국의 실리콘벨리 라벨이 붙어있지만, 속을 열어보면 핵심기술은 다 이스라엘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동차 제조기업이 단 한 개도 없다. 대신 자율주행 자동차 핵심부품과 솔루션 공급 스타트 업이 500개 이상된다. 자동차 생산비용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이미 절반을 넘겼다는 것을 아는가? 우리는 자동차를 구입할 때 차체보다는 차를 구동시키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다. 이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보편화되면 그 비율이 훨씬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의 MIT라고 불리는 테크니온 공대는 이러한 기술의 보고이다. 테크니온 공대의 교육과정에서는 최신 공학 기술만 가르치지 않는다. 각종 고전에서 다루는 딜레마적 주제로 토론하고 논쟁하게 한다. 유대인 엄마는 주방에서 샐러드를 비비며 아마존 열대 우림 대형 화재에 대해 브라질 정부가 미온적 대응을 한 뉴스를 가지고 10대 초반의 자녀와 진중한 대화를 한다. 이 엄마들은 불 앞에서 요리하느라 등만 보이거나 요리에 집중하느라 아이들 이야기에 '어어.. 그래?' 하는 무성의한 태도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
https://aboutjewishpeople.com/startup-nation/
유대인들은 고대사회부터 신에게 뭐든 물어보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이가 좀 컸다고 제 생각이 생기면 부모 말 잘 안 듣듯, 이 사람들도 신의 말을 지지리도 안 듣던 사람들이다. 물어보기는 진짜 많이 물어본다. 필요할 때 물어보고 나중엔 제멋대로 한다. 아무튼 신과도 질문을 많이 하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사람에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은 전혀 부담이 없는 문화가 있다는 것은 교육학자로서 매우 부러운 일이다. 우리 아이들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이어폰을 끼고 인강을 들으며 혼공족을 자처하며 공부하는 것을 보면서 “칼이 토라를 혼자 연구하는 학자의 목에 떨어질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혼자서 공부하면 어리석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바로 잡을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라는 탈무드 격언(Makkot, 10A)이 생각나서 불편하다. 모니터 앞에서 혼자하는 지식노동들은 기계에 의해 다 대체되고 있다. 토론과 협업을 통해 지식과 지식이 만나는 긴장의 경계에서 새로운 지식을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시키는 지식노동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Studierom i Merkaz HaRav jeshiva i Jerusalem. Av Efraim Rosenfeld. Lisens: CC BY SA 3.0
주입식 교육을 받은 우리 세대는 질문을 못한다고 치자. 하지만 AI에게 대체될지도 모르는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는 궁금한 것은 언제든 질문할 수 있다고, 실수해도 조금 틀려도 괜찮다고 좀 해주자. 아이들에게 맛있는 요리보다 맛있는 토론을 주는 어른이 되어보자. 그리고 자기에게 내주하는 두나미스 능력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개척하고 열정적으로 토론하며 스타트 업 하게 하자. 방향만 옳다면 서툴러도 괜찮고, 더디어도 괜찮다. 하지만 지금 학교와 학원, 각종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과 방법이 우리 아이들의 잠재력에 시동(스타트 업)을 걸어주는지, 걸린 시동까지 꺼버리는 것은 아닌지, 가르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이들은 한번쯤 멈추고 확인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