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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맥을 주문하는 베드로

습관과 영적 성숙

비합리적인 게 어때서?

누군가 당신에게 "넌 참 비합리적이야!"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 하에 인간의 능력을 이성의 작용과 합리성의 수준으로 평가해왔기 때문에, '비합리적'이라는 말을 '능력 부족'이라는 말과 동일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루에 3만 5천여 번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합니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99%의 판단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합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확인한다든지, 잠들기 직전까지 유튜브를 본다든지(스마트폰은 현대인의 알파와 오메가죠) 하는 일에 이성적 판단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철학자 루만은 개인을 사회와 끊어 밝힘으로 사회의 합리성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개인의 유일무이한 특성, 즉 인간의 비합리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우리 삶의 중요한 연애, 사랑, 예술의 영역은 개인의 비합리성을 독려하는 체계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삶의 대부분은 무의식, 직관, 감정, 습관과 같은 비합리적 사고 체계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빅맥을 먹는 나

<습관이 영성이다, You are what you love>의 저자 제임스 스미스 교수는 자연을 무시한 먹거리와 사회가 함께 망가지고 있음을 성찰한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 Bring it to the table>라는 책에 감탄하며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읽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책에 형광펜으로 줄을 박박 긋고 ‘아멘!’이라고 적으면서 읽던 중, 책의 핵심 아이디어를 곰곰이 생각하려고 머리를 드는 순간, 자신이 코스트코 푸드코트에서 더러운 우리에서 학대받은 돼지로 만든 것이 거의 확실한 팔뚝만 한 핫도그를 베어 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상당한 간격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책을 통해 먹거리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고 저자의 주장에 탄복을 하지만, 스미스 교수 자신의 식습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거죠. 마치 우리가 설교 내용에 아멘으로 수없이 믿음을 표현하지만, 교회 문밖의 일상의 습관은 여전히 설교의 내용과는 거리가 먼 것과 같습니다. 웬델 베리 책에 감탄하는 내가 나인가? 핫도그를 베어 물고 있는 내가 나인가? 내가 생각하는 바가 나인가? 행동하는 바가 나인가? 스미스 교수는 웬델 베리에게 설득을 당했음에도 여전히 습관적으로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로 가서 빅맥을 주문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하였습니다. 매주 교회에 출석하며 성경을 열심히 배우는 내가 내가 아니라, 가까운 이에게 함부로 말하며 평화를 깨트리는 내가 나라는 것입니다.


불을 쬐던 베드로

요한복음 18장에서 예수의 열혈 제자 베드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당시 대제사장 가야바의 하인 말고가 예수를 체포하려 하자 칼로 말고의 오른쪽 귀를 잘랐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장인 안나스의 집으로 가서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상반된 반응을 하는 두 모습 중 누가 진짜 베드로일까요? 첫 번째 상황에서 베드로는 여러 사람들과 같이 있었습니다. 일단 늘 같이 있던 예수님, 같은 동기 제자들, 대제사장 쪽에서 온 사람 등등. 하지만 두 번째 상황에서 그는 마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밖에서 불을 쬐고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거죠. 그에게 예수를 아느냐고 묻는 여종은 아마도 베드로에게 처음 말 거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혼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나요? 나의 진짜 욕망, 무의식, 무질서한 습관들이 스멀스멀 올라오지 않나요? 그러니까 예수님과 분리되어 있을 때의 베드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던, 그동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한 비합리적인 베드로가 당시 진짜 베드로라고 볼 수 있겠네요.

새벽닭이 울기전,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을 부인한 베드로 | Pixabay


습관 형성의 공동체성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모이기 어려운 시대, 이 기회에 루만의 제안처럼 나를 사회로부터 끊어 밝혀 봅시다. 어느 대학 교수, 어느 회사 부장, 어느 교회 집사 등으로부터 끊어봅시다. 데카르트의 지성적 존재로서의 자아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고 자신의 일상의 모습을 통해 진짜 내 모습을 묵묵히 성찰해 봅시다. 하나님은 나의 욕망이 자동적으로 드러나는 습관과 같은 비합리적 체계들에서 무질서하고 파괴적인 성향을 근원적으로 질서 있고 생산성 있게 재형성하기 위해 일하십니다. 그리고 습관의 재형성이 서로 지지하고 격려할 수 있는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져, 나의 삶이 건강한 공동체적 리듬과 조화를 갖게 되길 원하십니다.


지금 당장, 쉬운 것을, 지속적으로

나의 습관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은 무엇일까요? 언어습관, 예배습관, 건강습관, 공부습관, 미디어습관 등에서 아주 사소한 한 가지를 정해서 언약의 공동체와 함께 바꾸어 나가 봅시다. 고칠 습관이 너무 많다고요? 아주 작은 것부터 해볼까요?

우리 당장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여 내 마음의 방에 수십 명의 사람들을 초대하여 아침부터 정신을 어지럽히지 말죠. 조용히 이부자리를 정리하며 30초간 새로운 하루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봅시다. 내 몸에 깨끗한 물 한잔을 대접하며 5분간 스트레칭을 해주면 어떨까요? 새벽이 동틀 무렵 집 주변을 20분만이라도 가볍게 달려보는 것(기도와 묵상이 아니어도 그분은 기뻐하십니다)을 해보죠. 그분은 아주 세밀하고 정교한 질서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품에 먼저 안겨봅시다. 그리고 그분을 본받아 실천의 규모를 작게 시작해서 변치 말고 지속해 봅시다. 믿음이 없어도 일단 한 달이라도 해보시죠. 사소한 변화지만 나와 공동체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야 비로소 가족과 이웃을 내 품으로 안아줄 수 있는 여유와 리듬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습관형성을 통한  영적성숙, 부모학교 허그 플러스 



참고문헌

습관이 영성이다. 제임스 스미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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