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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달리게 하는 운동화

BK의 조깅 다이어리 Ep.02

BK의 조깅 다이어리 Ep.02

Ep.02. 2021. 7.24(토)  운동화


제주 시댁에서 한 주를 보내고 내 생에 달리기라는 것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뛰는 일이 다시 어색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제주에서  운동화에 조깅 재킷을 입고 다녔기에 '나는 달리기를 하는 또는 달리기를 해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잊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운동화가 중요하다. 신었을 때 스포츠맨십과 생활체육인의 정체성이 마구 느껴지게 하는 운동화를 사야 한다. 지금까지 신었던 하얀 슬립온 리복 운동화는 신으면 두꺼운 양말 같은 착용감을 주었다. 신발을 안 신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운동화를 신고 벗을 때 양말을 신듯해야 한다. 이런 운동화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형성에 도움이 안 된다.


리복 로고가 얼마전까지 이거였었나? 오늘 처음 알았다. 더러운 바닦을 다닌 흰 양말처럼 아무리 세탁해도 안 깨끗해짐


얼마 전 달리기를 결심하고 새로 구입한 운동화도 리복인데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날카로운 벡터 로고가 교차하면서 주는 역동성은 달릴 때 내 보폭을 넓혀주는 힘이 있다. 두툼하고 쿠션감 있는 밑창은 올림픽 육상경기에 출전하는 국가대표처럼 느껴지게 한다. 체육시간 달리기 시험은 거리를 막론하고 항상 꼴찌에서 두 번째였는데, 이 운동화는 나의 달리기 흑역사를 싹 지워준다.


백화점에서 고가 브랜드의 운동화들도 신어보았다. 가격도 디자인도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달리기 경력에 너무 안 맞다고나 할까? 사실 지금 나의 달리기 속도와 거리는 누군가에겐 슬리퍼를 신고도 충분한 수준이다.


이거 처음 보는 건데 무슨 브랜드예요? 미국 브랜드인데요..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반응이 좋아요. 미국에선 몰에서 싸게 팔고 우리나라에선 백화점에서 비싸게 팔겠지? 호구 노릇은 사양하고 싶네요. 무엇보다 신었을 때 운동보다는 패션의 느낌이 더 강해서 넌 탈락.


아울렛 매장에서 구입한 운동화. 내가 쉬지 않고 운동장 열 바퀴 달릴 수 있을 때까지만 부탁할게.


어떤 일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구입하는 도구는 자신의 현재 수준보다 살짝 높은 것을 사는 게 좋다. 그래야 그것을 자주 선택하게 된다. 너무 저렴해도 너무 고가여도 손이 잘 안 간다. 손이 안 가면 습관으로 정착되기 어렵다. 인간의 의지는 믿을 게 못된다. 공부도 동기나 의지보다 습관으로 해야 한다. 습관 형성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횟수, 특별히 연속성 있는 선택이다. 일주일에 하루 날 잡아 7시간 공부하는 것보다 하루에 1시간씩 공부하는 것이 공부습관 형성에 도움이 된다. 아이가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면 게임은 끝이다.


그래서 현관 한 켠에 신으면 기분 좋아지는 운동화를 꺼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조깅 바지와 재킷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자.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런 트리거들이 꼭 필요하다. 착복까지 가는 길에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착복식을 거행하면서 자신을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성공한 CEO인양, 자기 관리를 잘하는 인간이라는 착각도 주어야 한다. 운동장에 가서 점만 찍고 오더라도 일단 현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착복식과 현관문 통과 횟수가 많을수록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된다. 내가 누구라는 정체성이 형성되면 행동은 자동화된다. 쇼핑을 가도 운동화와 트레이닝복만 보이게 되는 것이 그 증거이다.


운동화가 또 사고 싶다. 이번엔 조금 밝은 색으로 :)



8/1(일) 1.2km+1.2km

8/2(월) 1.2km+1.2km

8/3(화) 1.2km+1.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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