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습관형성을 통한 정체성 물려주기

수저말고 그릇

  우리 시대 부모들은 자녀에게 금수저를 물려주지 못해 안달이다. 금수저는 영어의 '은숟가락을 입에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는 말에서 차용한 말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은숟가락을 신분증처럼 가지고 다니며 자신이 토지를 소유한 계급임을 보여주곤 했다. 금수저가 아니기에 느꼈던 박탈감은 중세 유럽부터 시작되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한국에도 계속되는가 보다.

  금수저든 은수저든 명백한 한 가지 사실은, 부모가 충분히 가진 것만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이름으로 등기된 부동산이 있어야 자식에게 상속시킬 수 있다. 음악인들 알고 보면 부모 중 한쪽은 취미로라도 음악을 한 경우가 많다. 식사 매너가 있는 부모의 자녀는 음식을 씹을 때 손을 식탁 아래로 차분히 내린다. 나에게 충분하게 넘쳐나서 의식하지 않아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을 때 상속은 문화처럼 자연스럽게 전수된다.


정체성

  인간은 하루에 3만 5천 번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한다. 이중 약 1% 만 의식적으로 판단하고, 99%는 직관을 사용하여 대충 빠르게 판단하는 기법(fast thinking)을 따른다. 이때 수많은 의사결정에 필요한 뇌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정체성(identity)이라는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평소 자신을 ‘초밥 킬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초밥집을 지날 때마다 가게에 자동으로 눈길을 준다.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사춘기'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아이의 못된 행동을 슬쩍 합리화한다. 자신을 ‘수포자’로 인식하는 학생은 수학 공부 안 하는 것을 당연하게 선택하고, 그것을 빠르게 정당화한다. 그래서 ‘흙수저’라는 정체성을 함부로 인정해서도 함부로 부여해서도 안된다. 소중한 한 인생의 99%에 박탈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저보다 그릇을

  부모가 가장 쉽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돈이다. 상속세나 증여세가 있지만 그것도 결국 돈으로 해결된다. 반면 지적 유산을 물려주기란 쉽지 않다.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의사, 변호사 부모가 자격증을 자녀에게 물려줄 순 없는 법이다. 고학력 전문직 부모들이 일찍부터 자녀 교육에 매달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고소득도 고학력도 아니어서 물려줄 금수저가 없다면? 차려진 밥상에 얹기만 하는 수저를 주느라 애쓰기보다는 좀 더 담대하고 배포있게 그릇을 물려주는 것은 어떨까?


  성경의 주요 인물인 바울은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는데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도 쓰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며 선한 일에 준비됩니다"라고 하였다. 재료가 무엇이든 자신을 깨끗하게 가꾸면 신으로부터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릇을 관리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나쁜 습관이라 불리는 음주, 흡연, 과식, 스마트폰 중독, TV 중독 등으로 자신을 관리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기 어렵다. 반대로 운동, 독서, 깨끗한 식습관, 식탁예절, 음악 감상 등 좋은 습관을 담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도 소중히 여긴다. 정체성은 자신을 관리하는 무의식적 선택 또는 일상의 반복된 습관으로 표현되고, 습관의 반복성은 다시 정체성으로 굳어진다.


습관 형성을 통한 정체성 물려주기

   오래된 일이지만, 미 교육부가 모범가정으로 선정하였던 고광림-전혜성 부부는 남편이 롱아일랜드 대학 출강을 위해 새벽 3시 52분 기차를 타야 하는 시절, 가족 모두 새벽 3시에 가족식탁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 부모는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유대인 가정교육 방법을 응용하여 가정 안에서 실천하며 여섯 자녀 모두 미국 주류사회 리더로 키워냈다.

2009년 백악관 자문위원회, 고광림-전혜성 부부의 아들, 고경주 보건부 차관보와 고홍주 법무부 법률고문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박사 부부의 거창한 성공 사례가 아니어도 좋다. 손끝이 심심해도 자녀들 앞에서는 스마트 폰 사용하지 않기, 하루 한 번, 일주일에 한번 깨끗하고 신선한 음식으로 가족 식탁 교제 가지기, 자녀와 대화할 때 눈을 보고 경청하며 존중하기, 가족과 이웃을 능동적으로 섬기기 위해 매일 30분 유산소, 근력 운동 10분으로 몸을 단련하기 등의 일상 습관은 곧 부모 자신이 귀하게 쓰임 받을 그릇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딱 한가지 습관만이라도...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은 고귀하다. 그런데, 보유하지 않은 것을 물려주고자 할 때 오류와 갈등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엄마, 아빠는 안 하면서 왜 나에게 시키냐는 말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자녀가 게임중독에서 독서광으로 빠르게 변화하길 원하는가? 자신의 진로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정진하길 원하는가? 말로 하지 말고 보여줘라. 인간은 외부 세계의 70% 이상을 시지각(visual perception)으로 처리해버린다. 즉 귀가 아닌 눈으로 배운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많이 보여준 부모의 말에는 권위가 있고 행동은 대담하다.

  5 가정의 , [나쁜 습관 1가지 버리기 + 좋은 습관 1가지 얻기] 통해 자녀에게 부모가 깨끗하고 준비된 그릇으로 빚어지는 과정을 보여주자. 허겁지겁 정신없이 출근하기, 스마트폰 보다 잠들기, 훈육할  화내기... 이런 것들 하나씩 버리자. 활기차고 당당하고 준비된 모습으로 출근하기, 자기 전에 10분씩  읽어주기, 사랑한다고 말하며 허깅해주기, 자기 전에 스트레칭하기 등으로 자신을 가꾸자. 돈과 학벌의 금수저가 아니라 정체성을 통한 진짜 금수저를 물려주자. 그리고 좋은 것을 담아내는  그릇도 같이 물려주자. 깨끗하고 사용하기에 적당한 선한 그릇은 배고픈 이웃에게 퍼주어도 계속 차오르는 광주리와 같다.



* 작가의 일찍 일어나기 습관 물려주기 실천 사례

https://brunch.co.kr/@bkyeongkim/8


* 사진출처

핀터레스트(Pinterest),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15312697#home


작가의 이전글 개념 공부에서 홀로서기 - 개념의 덩어리를 구워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