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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형성을 통한 정체성 물려주기

금수저보다 그릇을 

이불 밖으로 나온 아이의 다리는 늘 내복 바지 밑단이 달려 올라가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고 굵어지는 다리를 보며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날 날이 멀지 않겠구나 싶다. 박수칠 때 떠나겠다고 다짐하지만, 사랑하는 이로부터 잊혀지는 상실감이 없다면 거짓이겠지. 그래선지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어떤 부모로 기억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우리 사회 수저계급론 덕에 부모들이 금수저를 못 물려주어 안달이라 한다. 맛있는 게 넘쳐나는 이 세상 수저로 족할까? 대접만한 큰 그릇이 필요하지 않을까?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은 영어에서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에서 차용한 것 같다. 중세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숟가락을 지갑이나 신분증처럼 가지고 다녔는데, 이때 은숟가락은 자신이 토지를 소유한 계급임을 나타내기도 했다.


Silver spoon with a lion sejant, London, 1585-1586 (source: Museum of Fine Arts Boston website)


수저든 그릇이든 명백한 사실은 내가 충분히 가진 것만 물려줄 수 있다는 점이다. 돈이 많아야 재산을 물려줄 수 있다. 제 이름으로 등기된 부동산이 있기에 자식에게 상속시킬 수 있다. 음악인들 알아보면 부모 중 한쪽은 취미로라도 음악을 즐겼더라. 아이의 비만은 양육자의 무절제함에 순종한 비극적 결과다. 상스런 언어를 사용하는 부모는 자녀가 교양있게 행동하는 것을 기대하면 안된다. 나에게 충분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윗세대로부터 충분히 물려받고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노출되는 것은 무엇인가?


정체성

인간은 하루에 3만 5000번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한다. 이중 1%만 의식적으로 판단하고, 99%는 직관을 사용한 fast thinking을 따른다.* 매 순간 변하는 상황과 변수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면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중요하지 않은 일엔 뇌를 덜 사용하기 위해 단순하게 판단하고 결정하는데 이때 정체성이라는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평소 자신을 ‘초밥 킬러'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새로 생긴 동네 초밥집에 눈길이 자동으로 간다. 난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못돼 먹은 행동도 매력이라 생각하는 비합리적 사고를 한다.  '우리 아이는 사춘기'라는 편리한 핑계를 대지 말자. 다수의 민족에서 청소년기를 부모와 좋은 관계로 보낸다.** '나는 수포자야.'라고 인식하는 학생은 수학 공부 안 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빠르게 정당화한다. 그래서 흙수저라는 말은 함부로 해서도 함부로 들어서도 안된다. 한 사람의 인생 99%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 일어나서 새벽형이 아니라, 새벽형 인간이라 일찍 깬다. 어린 시절, 한동안 먼 곳으로 출근해야 했던 아버지가 작은 반상에 차려진 간소한 식사를 새벽 4시에 드셨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수저가 아빠의 입 속으로 들어갈 때 뜨거운 김을 뱉으시는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새벽 녁 목이 말라 나왔는데 식탁에서 각종 영양제와 연필꽂이, 김 반찬통을 벽 쪽으로 밀어 두고 성경을 웅얼거리는 엄마의 옆모습이 각인되어 있다. 대학시절 한 교수님께서 보강을 이른 아침에 하셔서 아침 잠 많은 대학생들을 강의실로 불러 모으셨다. 기숙사에서 나와 미호천의 자욱한 안개를 뚫고 강의실로 향할 때 가슴이 충만했던 기억, 동전을 잔뜩 준비해오신 교수님이 수업 전에 자판기에서 뽑아 주신 따끈했던 레쓰비 한 모금이 생생하다. 한 십 년 전쯤? 영어 회화 공부하는 그룹에서 카이스트 교수님 사모님께서 자기 부부는 새벽 3시 30분에 아침을 먹고 남편은 4시에 연구실로 간다고 영어로 말하셨다. 그때 속으로 참 유난이시다.. 라고 한국어로 되받아쳤다. 지금에서야 용서를 구한다. 정체성은 이러한 몇 가지 결정적 경험을 자아가 하나의 개념 즉 '새벽'이라는 개념으로 의미있게 연결시키면서 형성된다. 물론 알람을 사용하며 일찍 일어나려는 노력도 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윗 세대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더 크다.


오래된 일이지만, 미 교육부가 모범가정으로 선정하였던 고광림-전혜성 부부는 남편이 롱아일랜드 대학 출강을 위해 새벽 3시 52분 기차를 타야 하는 시절, 가족 모두 새벽 3시에 가족식탁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 부모는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유대인 가정교육 방법을 응용하여 가정 안에서 실천하며 여섯 자녀 모두 미국 주류사회 리더로 키워냈다.

2009년 백악관 자문위원회, 고광림-전혜성 부부의 아들, 고경주 보건부 차관보와 고홍주 법무부 법률고문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세금을 치뤄야 물려줄 수 있다.

자녀에게 가장 쉽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돈이다. 상속세나 증여세가 있지만 자식에게 부담시키면 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부를 물려주는 부모는 가급적 늦게 물려주어 자식의 애를 태운다. 반면에 지적 유산을 물려주기란 쉽지 않다.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의사 부모가 의사 자격증을 자녀에게 물려줄 순 없는 법이다. 고학력 전문직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매달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제 아무리 부모에게 뛰어난 지적 능력과 리더십이 있더라도 하루 아침에 아이에게 물려줄 수 없다. 아이가 받을만한 그릇을 준비하는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아이들의 다리 길이를 확인하면서, 나도 뭔가 물려주기를 서둘러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충분히 보유한 것은 돈도 지적 유산도 아니다. 그냥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다. 습관의 반복성은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정체성 물려주기는 가정 안에서 좀 더 빨리 시작된다.

대담함은 내가 보유한 자원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나? 6개월 정도 걸릴 거라 예상하고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알람이 울리면 먼저 달려가 불을 켜준다. "유수야 일어나라~." 말로 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 반두라의 사회학습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타인의 행동, 태도, 감정적 반응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학습한다. 즉 아이는 귀가 아닌 눈으로 배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잔소리는 절대로 교육적 효과가 없다.***

아이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 혼자 하기 어려운 영역의 도움(scaffolding)을 제공해야 한다. 아이들이 힘내서 실눈이라도 뜨면 뽀뽀 세례로 화답한다. 아이들의 몸을 스트레칭 시켜주고 손을 잡고 등을 토닥이며 욕실로 데려가는 수고는 부모라면 마땅히 지불해야 할 세금이다. 일찍 일어나면 엄마가 양치도 시켜주고 세수도 시켜 준다. 도움은 점진적으로 제거시켜(fade out) 이젠 혼자서 등교 준비를 하고 기다린다. 아이들이 조금씩 일찍 일어날수록 혼자 즐겼던 조용한 시간들이 줄어간다. 물려주면 내 몫은 줄어드는 법이다.


야무진 아이는 양말 속에 내복 밑단을 꼭 넣는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은 고귀하다. 그런데, 여기서 종종 오류가 생긴다. 자녀에게 물려줄 것을 엉뚱한 곳에서 찾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물려주려면 많은 대가가 따른다. 엄마는 안 하면서 왜 나만 해야 하냐는 말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나 또한 예술하는 이들에게 느끼는 묘한 열등감과 동경이 있지만, 아이에게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빈 곳간에서는 인심나기 힘든 법이다.


숟가락보다는 그릇을 물려주자.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 얹기는 유명 배우의 겸손함 표현용으로 남겨두자. 금과 은이 아닌 토기장이의 질그릇도 좋다. 흙이 왜 나쁜가? 오가닉 해서 좋지 않나? 재질이 뭐든 그 안에 좋은 것을 담으면 된다. 만물이 깨어날 때의 창조적 에너지가 샘솟고 남과의 경쟁이 없어 삶을 좀 더 장기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이 새벽이란 그릇은 고픈 무리에게 퍼주어도 계속 차오르는 광주리와 같다. 그 안에 무엇을 얼마나 담을지 찾고 노력하는 것은 너희들 몫이다. 그것까지 나에게 달라고 하면 반칙이다.


뇌로 가는 연료가 소진된 오후 4시 이후에는 나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한다. 효용가치가 떨어진 이 때에도 나를 찾아주고 반겨주는 이들이 진짜 나를 사랑하는 이들 임에 틀림없다. 바로 이 아이들. 아이들아 학교에서 공부로 일등을 못해도 괜찮단다. 하지만 교실에는 일등으로 가서 등교하는 친구들을 기쁘게 맞아주길 바란다.


참고자료

* Boxall, A. (January 6, 2018). You make 35,000 decisions a day, and Huawei wants AI to help out. Retrieved from https://finance.yahoo.com/

**초집중 (니르 이얄)

*** Bandura, A.  (1977). Social Learning Theory. Prentice-Hall.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15312697#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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