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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모닝루틴

워킹맘의 필살기

루틴1.

그녀의 하루는 4시 29분과 30분 두번의 알람을 끄면서 시작된다. 사실 워낙 일찍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그전에 깨는 적이 많으나, 4시 전에 일어난다는 것은 4시까지 안 자는 야행성 인간이 되는 것 같아 그냥 누워있는 경우가 많다. 덮고 있던 이불과 베개를 정리한 후 곧바로 욕실로 가서 씻는다. 머리까지 대충 말리면, 뭔가 작은 성공을 거둔 느낌을 가지는데, 바로 체중계에 올라가면서 절반의 성공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매일 체중을 재는 것도 뇌를 자각시키는 다이어트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칭찬한다.

루틴2.

하루를 시작하는 곳. 혼자만의 은밀한 공간인데, 자연에 열려있어 공간이 주는 뉘앙스가 재밌다. 매일 작은 성공을 거두는 곳.

다음으로 삐뚤게 자는 아이들을 똑바로 눕히고 이불을 정돈해준 후 동그란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리곤 종종 걸음으로 주방으로 가 취사버튼을 누르고, 간식거리가 없나 찾다 고구마를 발견하고 삶는다. 밥은 가족들이, 고구마는 오전에 배고플까봐 챙겨가려는 것이다. 이른 새벽에는 어제 저녁 미리 꺼내 둔 비타민과 단백질 파우더에 물 500ml 을 넣고 흔든다. 그리고 정체모를 영양제 한 알을 먹는다. 모양은 루테인인데, 본.. 어쩌고 써있는 것을 보니 뼈건강과 관련된 것인가보다 한다. 그녀는 텀블러에 가득찬 연두빛 액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 기분을 느낀다. Youtube의 10분 짜리 스트레칭을 재생한다. 동작과 동작 간 불필요한 텀이 길어 운동을 잘 못하는 그녀에게 적합하다. 뻣뻣한 몸 근육을 늘리면서 연두빛을 한모금씩 마시면서 건강해지고 있다는 플라시보를 경험한다. 한 열흘 전부터는 저녁에 갑작스레 스쿼트를 열심히 하는데, 모양새가 어색하고 그녀답지 않다. 8분 짜리 스쿼트를 하고나서 18분은 누워있으며 심장이 몸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을 막는것 같다. 스쿼트보다는 스쿼트한 갯수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뿌듯한 표정으로 기록하는 것을 보니, 어쩌면 꾸준히 뭔가를 해오는 그녀의 성품에 따라 이 운동도 오랫동안 지속 할 것 같다. 스트레칭을 마친 후 다 쪄진 고구마를 냄비에서 꺼내 식히고 먹기 좋게 잘라 도시락에 담는다.


루틴3.

오늘은 열어둔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찬지 그녀는 양말을 찾아 신고, 책상 앞에 앉아 무엇을 읽을까 생각한다. 너는 크리스천이니까 성경을 제일 먼저 읽어야 해...라는 생각을 내려둔다. 그분도 이 부분에 있어서 자유하길 원하신다고 확신하면서. 대신 잠깐동안 눈을 감는데, 서툴고 나약한 미물로 살아가지만, 초월적 존재의 사랑을 느끼고 싶어서 그런다. 읽고 있는 책들 중 그날(주로 요일에 따라)의 필요에 따라 책을 편다. 직장과 집이 멀다보니 책이든 일이든 한가지를 계속하려면 책과 A4용지로 가득한 배낭과 에코백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 그냥 장소별로 하는 일을 정했다. 학교에서는 논문이나 교실이 없는 학교, 미래교육...뭐 이런 류를 읽는다. 집에서는 나 자신에 대한 책을 읽는다. 덕분에 그녀는 비상용 한개만 남겨두고 학회나 행사에서 받은 에코백을 다 버릴 수 있었다.

Anyway, 오늘은 하루키의 에세이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선택되었다. 그녀도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읽어봤지만, 하루키의 에세이가 최고라고 인정한다. 자기계발서에서는 "자기관리를 위해 매일 운동을 하세요.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동기를 부여해 주긴 한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고 찬바람을 마시며 달리는 것은 독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전에 하루키의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등의 책을 읽다가, 새벽바람에 운동화를 신고 뛰쳐나가 운동장 한바퀴를 돈 적이 있다. 마치 하루키가 그녀의 귀에 대고, '마라톤을 하면 당신도 출판계의 대가인 나처럼 당신의 분야에서 대가가 될 수 있습니다.' 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루키는 자신의 책에서 독자에게 달리기를 하라고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것이 대가들의 필력이라고 생각하며 부러워한다.


직장1. 아름답다.
직장2. 여긴 하늘만 아름답다. 하지만, 사랑스런 두 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루틴4.

독서를 조금 하고 나서, 그녀는 쓰고 있던 논문을 열어 중국 학생들 단톡방에게 한 단락을 보낸다. 이 친구들은 오늘 중 그 단락을 읽어서 나에게 보내준다. 교육학 논문의 문장 형식에 익숙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게 어느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효율을 중요시 하는 그녀도, 공부의 부분에 있어서는 일단 어느 수준까지 오르려면 질보다 양이라고 생각한다.


루틴5.

그 다음은 Love Actually 스크립트의 한 scene을 읽는다. 그리고 그 신을 두번 정도 반복해서 들어본다. 오늘 신에는 휴 그랜트가 많이 나와서 기쁘다. 클래식한 영국식 발음을 듣고 있으려면 그녀도 클래식해지는 것 같다.  원래는 cambly로 원어민과 대화도 좀 했는데, 역시 그녀는 text 체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영국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해지해버렸다. 처음에는 쉐도잉 좀 해보자...라는 생각에서 Before Sunrise, Modern Family,  Meet Joe Black등을 시작했는데, 영어 리스닝이라는 초기 목적에서 벗어나 인물 분석을 하고 있거나, 이 대사가 이래서 나온거구나, 이 문장 번역이 왜이래..하면서 딴짓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그녀는 자신이 영어보다는 영화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루틴6.

다시 논문으로 와서 뭔가를 써 본다. 여기가 아침 루틴에서 가장 큰 고비... 사실 이것을 위해서 운동을 하고 건강을 챙기고 영어도 듣고 하는 복잡한 루틴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Oh, God.. 그런데 이 부분은 하늘에 맡겨야 한다. 최근에는 그녀의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는 이론적인 글들을 쓰면서 사고를 날카롭고 정교하게 만들어 보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론적인 글들이 참 쓰기가 어렵다. 한 문장 쓰면 만원씩 버는 느낌이 들정도다. 써질 때는 집중해서 쓴다. 안써지면, 빨리 출근이나 하자며 서둘러 집을 나온다. 장소를 바꿔보면 다시 뭔가 써지는 경우가 많다. 주말에는 그녀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써보자고 노력한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그녀에게 쉽지 않다. 지난학기는  너무 바빠 이러한 결단을 했는지도 기억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이 루틴은 그녀에게 가장 큰 성취감과 희열을 안겨주지만, 잘 지키지 못할 때가 많다.


아침 루틴의 핵심은 나혼자 해야 하는 일들, 하고싶은 일들을 하는데 있다. 사람들이 활동하는 9시 부터는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들이 그녀에게 찾아온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혼자하는 일과 같이 해야 하는 일의 교차점에서 균형을 이루는 지혜를 발휘하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끔 9시 이후에 전화하면 될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새벽에 업무 처리를 부탁하는 메일을 보낸다. 꼭두 새벽에 일어나 다니는 동선따라 아이들이 널어놓은 물건들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기도 한다. 그리고 나선 제발 그러지 말자라고 다짐한다. 이 아침 루틴 시간만큼은 학교와 집, 이 두 직장생활에서  벗어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전날 늦게 잠드느라 5시 29분에 알람을 맞추었다. 해가 짧아져 밖이 깜깜하다. 오늘은 휴일이라 4번 루틴을 제외한다. 가끔 너무 기계적으로 사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이 모든 루틴은 직장생활로 인해 복잡해진 머릿속을 비우기 위한 것들이므로 그녀의 아침 모습이 기계처럼 보인다면 사실 그녀는 아침을 성공적으로 사는 셈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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