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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의자에 앉을 것인가?

의자가 만들어내는 일상

스크린을 보며 업무를 하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커피 문화가 일상이 되면서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 또한 이 세 가지를 꾸준히 하는 사람이라 자연스레 의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 고가의 안마의자, 가족도 많지 않은데 1,2,3인용 소파세트를 들이고, 척추건강에 좋다는 기능성 의자도 여러 종, 아이들 좀 더 크면 다시 써야지 하며 이사때마다 들고 다니는 우드코 식탁의자, 아동 활동 교구용 의자도 여러 개, 몇 만원 짜리 이케아 의자도 있고, 버려진 90년대 대학 도서관용 나무의자까지...

옛날 의자, 우리들 체어, 소파위에서 아련한 때론 매서운 눈빛으로 포즈를 취한 딸


의자를 생각하면 안락함과 편안함을 떠올리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서민들은 바닦에 앉고 귀족들은 높은 의자에 앉았기에 높은 신분과 권위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의자는 지금도 권위와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얼마 전 높은 분과의 식사자리에서 나를 포함 8명의 자리배치를 가지고 무지 오랜 고민을 하는 비서를 보았다. 서로 다 아는 사인데 어디에 앉으면 어떠랴? 했지만, 자리의 목적, 서열, 대화의 주된 내용, 갈비찜 불 조절을 누가할 것인가 등을 고려한 자리배치는 비서가 신중하게 처리해야할 업무 중 하나다. 자리가 늘어지지 않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아 비서의 결정은 현명했다. 부작용이 있다면 저 출입구 가까이 놓인 의자에 앉은 말단 직원은 대화에 끼지 말라는 암묵적 통제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나는 높은 분 옆자리에서 잘 듣기만 하면되고 테이블이 달라 불조절을 안해도 되길래.. 이 자리에서 서열 중간쯤 되는구나 싶었다.  


반면에 의자로 만들어지는 서열과 권위를 타파하는 분도 계시다. 우리교회 예배실 단상에는 의자가 없다.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등받이가 높은 의자들을 두고 천주교 사제들처럼 목사와 장로들이 앉는다. 우리 목사님은 당신이 메시지를 전달하실 때에만 단상에 서시고 그외의 시간에는 내려와서 청중과 동일한 위치의 의자에 앉으시는 겸손한 영성을 가지셨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오르락 내리락 바쁘시다.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교만함을 가질까 걱정하시는 분이다. 이런 분을 10년 가까이 최소 일주일에 한번 멀리서 또는 화면으로라도 뵐 수 있으니 참 감사하다.


어떤 사람이 주로 앉는 의자를 보면 그의 라이프 스타일과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나처럼 연구실 의자, 자동차 시트, 커피숍 창가 의자에 앉는 사람은 관조적인 사람이다. 연구실 책상도 창을 바라보게 배치했다. 창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일하는 것,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끄적끄적하면서 머릿속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대신 내 뒤통수와 모니터는 항상 출입문으로 들어오는 이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데, 일종의 작업 환경설정을 통해 딴짓을 하지 않고 본짓을 하고자 하는 의도라고도 볼 수 있겠다. 어떤 사람은 TV를 마주보고 소파에 자주 앉는다. 우리의 부모님들. 서로 얼굴은 안보시고, 같은 방송을 바라보며 잘 살아가신다. 가끔 티격태격해서 문제지.


교실에는 교사의 위치가 만들어내는 Golden Triangle Zone이 있다. 교실 앞쪽에 있는 교사의 시야가 자주 머무는 곳이다. 이 존에 앉은 학생들은 교사와 언어적, 비언어적 상호작용을 많이 하기 때문에 학업성취가 높다. 이 존 안에서 교사와 가까운 쪽은 시각적 인지능력이 높은 아이, 교사와 먼쪽은 청각적 인지능력이 높은 아이일수록 학습효과가 좋다. 그러니까 내 아이가 어떠한 인지유형이 발달했는지를 파악하고 교실안 어디쯤 앉아 있는지 교사와 눈을 마주치기나 하는지, 교육적 대화를 나누기는 하는지 좀더 세밀하게 관찰한 후 교육비를 지출하기 바란다. 아니라면.. 글쎄? 그돈으로 책을 사서 읽히거나, 책도 싫어한다면 아이앞으로 유망한 기업 주식을 사두는게 낫지 않을까?(주식에 대해 1도 모름) 반면에 교사는 이 존이 특정 학생에게 주는 혜택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말썽부리고 마음이 안드는 학생들도 이 존에 들 수 있도록 교실 이곳 저곳을 다니며, 어둠이 있는 곳에 희망의 삼각빛을 골고루 비추도록 애써야 한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성공을 거둘 것인지 여부를 알고 싶다면, golden griangle 안에 있는지부터 확인하길 바란다

내가 소유한 많은 의자 중 가장 고마운 아이는 단연 오피스 한쪽에 놓인 작은 소파다. 나른한 오후 나의 졸음을 해결해주고, 긴장을 풀어주어, 하루의 후반부를 새롭게 시작하게 해준다. 비싼 안마의자에 오르려면 약간의 결심이 필요하다. 세라젬 의료 베드에 눕는 일은 더 큰 결심이 필요하다. 세라젬은 지금 토퍼들을 접어 쌓아두는 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저렴한 인조가죽 소파에 누울 때는 고민이 없다. 너 때문에 하루를 두번 살아가니 고맙다고 해야겠지?

천만원에 육박하는 안마의자에 오르려면 결심을 해야 한다. 저렴한 인조가죽 소파는 그런 고민없이 자주 드러눕게 된다


의자는 사람을 머무르게 한다. 영화 뷰티인사이드의 주인공은 자신 때문에 힘든 연인과 헤어지기로 결정하고, 두 사람이 사용할 의자를 분해하여 사랑하는 여자의 몸에 딱 맞는 1인용 의자로 바꾸어 선물한다. 그는 이별 후 최소한 그 의자에 앉아있을 그녀를 떠올리며 그리워할 수 있을거다. 자신이 의자가 되어 사랑하는 여인을 무릎에 앉히고 가슴으로 보듬어 자기의 마음속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


청소와 정리의 부담을 주는 침대와 옷장을 처분했다. 대신 마음의 안정과 생각의 질서를 부여해주는 의자들을 하나씩 들였다(의자는 특별한 청소가 필요없다). 집안 곳곳 크고 작은 의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의자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공부하고, 휴식을 얻는다. 그곳에서 비밀스런 수다를 떨고, 겸손함을 배우고, 때로는 귄위와 서열, 눈치도 배운다. 눈을 감고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읽고 쓴다. 너무 빨리 나아가는 생각의 속도를 늦춰주고, 한 가지에 집중하게 한다. 허리를 곧 세우고 마음을 추스린다.


자신의 일생의 시간을 분단위로 기록하며 방대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 곤충학자 류비셰프는 자신을 가리키며 "학자들 중에는 사진을 찍을 때 얼굴보다 엉덩이를 찍어줘야 하는 부류가 있는데 나도 그런 쪽에 속한답니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많은 돈을 주고 사는 명품이 아니라, 의자에서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긴 시간동안 이루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사람을 고상하게 품위있게, 귀족처럼 만드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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