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의 해법을 찾아서(9-3)

워라밸

by 광풍제월

워라밸의 해법을 찾아서(9-3)

2020.5.20

ㅇ 안녕하세요 가정의 달 오월이 벌써 중순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개관준비 등 모두들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시지만 눈을 들어

푸른 하늘 한번 올려 다 볼 수 있는 수요일 되길 바라겠습니다.


ㅇ 오늘 다이내믹하게 일처리 하시고 모두 정시 퇴근 하시는 거죠. 몇 년 전에 제가 쓴 어버이날의 회상을

아래와 같이 공유하오니 오늘 퇴근하면서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백홈데이 기대하겠습니다.


--- 어버이날의 회상 ---- 2015.5.10


오월 어버이날을 맞아 가족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본다.

우리들의 지나온 삶은 거의가 비슷했다. 대부분은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가난했지만 그 가난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가족 간의 사랑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궁핍한 속에서도 가족애를 가장 잘 드려내는 시가

박재삼 시인이 쓴 추억에서 30이 아닐까 한다.


추억에서 30

국민학교를 나온 형이

화월(花月) 여관 심부름꾼으로 있을 때

그 층층계 밑에

옹송그리고 얼마를 떨고 있으면

손님들이 먹다가 남은 음식을 싸서

나를 향해 남몰래 던져 주었다.

집에 가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누이동생이

부황에 떠서 그래도 웃으면서

반가이 맞이했다.

나는 맛있는 것을

많이 많이 먹었다며

빤한 거짓말을 꾸미고

문득 뒷간에라도 가는 척

뜰에 나서면

바다 위에는 달이 떴는데

내 눈물과 함께

안개가 어려 있었다.


물론 우리 세대는 시인만큼 어렵게 자라지도

않았고 시인이 수업료 낼 돈이 없어 중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삼천포여자중학교 사환으로 일한

애환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도 각자 가난에 대한 추억은 갖고 있다.

육성회비를 낼 날짜가 오면 부모님 눈치를 봐야 하고 준비물을 챙겨야 할 때도

소풍 가는 날 용돈을 받을 때도 눈치를 살피며 죄인 아닌

죄인이 되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가난이 더욱 싫었다.

대구가 섬유도시라 주위에 섬유업으로 돈을 번

부유한 부모를 둔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반면 우리는 가을에 추수한 돈을 일 년 동안 골고루 나누어

써야 하는 형편이라 정말

힘들게 일 년을 살아갔다.


친구들이 군것질하려 가자고 해도 절대 가지 않았다.

얻어먹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고

돈 내고 사서 먹을 형편은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버릇인지 몰라도 요즈음도 군것질은 잘하지 않은 편이다.

그 당시 어버님은 딱 2주 동안 쓸 용돈만 주셨다. 4주 용돈을

달라고 떼써도 절대 주시지 않았다.


나이 들면 언제 한 번은 당신께 물어봐야지 한 것이 여기까지

와버렸다. 이제는 아버님께서 치매가 있어 요양원에 계시니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없고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


이제 어느덧 어버이 위치에 서게 되니 어버이로서

어깨의 짐을 느끼게 된다. 가정에서나 회사에서나

어느 조직이든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어른은 아랫사람의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른은 아무나 하나란

유행가 가사가

시지프스가 밀어 올리는 바위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다가오는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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