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탑역에서 배운 것, 기술보다 먼저인 마음

기술보다 마음_4회

by 광풍제월

야탑역에서 배운 것, 기술보다 먼저인 마음


전기기능사를 취득하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를 만났다.

2005년, 예산담당부서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연이 다시 이어진 자리였다.


이번 만남의 목적은 분명했다.

후배의 진로를 위해 시간을 내주겠다는 선배의 제안이었다.


날씨가 유난히 추웠다.

선배는 역사 안에서 만나자고 했다.

사소한 배려였지만, 그날의 대화를 예고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따뜻한 것을 먹자며 들어간 삼계탕집에서 선배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명예퇴직 이후 화물복지재단에서 일했고, 이후 전기기능사를 공부해 현장으로 들어온 과정.

국토부 출신 중에서는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현장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매뉴얼보다는 구술로 전수하는 현장 여건상 기술은 쉽게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했다.


첫 직장은 재개발로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사람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경력은 남는다”라고 말했다.

버틴 시간이 다음 기회를 만들었다고.


자리를 옮긴 커피숍에서 선배는 꼭 필요한 말만 남겼다.


첫째는 안전.

사다리 위에서 하는 작업이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우리가 가진 건 몸 하나인데, 다치면 회복도 쉽지 않다고.


둘째는 사람.

입주민과의 관계, 경비원과의 관계가 결국 현장을 지탱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조언 하나.

대한주택관리사협회 홈페이지에 가입하고, 최소 1년은 버틸 각오로 들어가라는 말.


커피를 사려했지만 선배가 먼저 계산했다.

“동네에 온 손님”이라는 이유였다.


카페라떼 위에 한자로 ‘福’ 자가 그려져 나왔다.

선배는 그 잔을 내 쪽으로 밀어주며 웃었다.

“복은 네가 받아야지.”


헤어지기 직전, 선배는 입사지원서를 메일로 보내주며 참고하라고 했다.

그 순간, 말보다 행동이 먼저 오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야탑역 개찰구 앞에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진로 상담을 받은 날이었지만,

내가 배운 것은 기술보다 먼저인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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