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대 앞에서 만난 또 다른 나

또 다른 나_5

by 광풍제월

탁구대 앞에서 만난 또 다른 나


동영상 속에서 공을 치고 있는 사람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깨달았다.
저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던 나의 모습과 화면 속 인물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극이 있었다.


오늘은 올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탁구 배우기’ 레슨이 있는 날이었다. 오전 10시에 한국숲해설가협회 통합 동아리 인터넷 신청을 마치고 탁구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레슨 대기자는 다섯 명이나 되어 있었다. 대기 시간은 길었지만, 그 시간이 이렇게 낯선 나를 만나게 할 줄은 몰랐다.


포핸드 연습은 탁구장 프로그램에 따라 기본 동작 위주로 진행되었다. 관장님은 코치를 맡고 있다기보다는 전체 흐름을 살피며 기본적인 방향만 짚어주었다. 힘을 빼고 천천히 치라는 말은 여러 번 들었지만, 말처럼 몸이 쉽게 따라주지는 않았다. 공이 네트를 넘기는 순간마다 마음이 먼저 앞서 갔고, 자세는 자꾸 흐트러졌다. 이어진 복식 게임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관장님과 한 팀이 되었다. 실력이 가장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이 시작되자 가장 재미를 느끼고 있는 사람도 나였다.


대기 중 한 회원이 다가와 자세를 봐주겠다고 했다. 휴대폰으로 내 동작을 찍어 함께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라켓을 잡은 손목은 꺾여 있었고, 어깨는 필요 이상으로 처져 있었다. 공을 맞히는 타점은 뒤에 형성돼 있어 정확도도, 힘도 제대로 실리지 않는다고 했다.


설명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화면 속 내 모습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안정된 자세의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화면 속 나는 어색했고, 둔했고, 자신 없어 보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자세만 봐도 그 사람이 얼마나 운동을 해왔는지는 알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기본은 언제나 자세에서 드러난다.


동영상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은 늘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자신을 이해한다. 나 역시 내가 공을 치는 모습이 그리 어색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왔다. 적어도 괜찮은 편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마치 제삼자를 바라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탁구장에서의 이 경험은 어쩌면 내 삶과도 닮아 있었다. 이상 속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존재해 온 간극을 애써 외면한 채, 내 기준으로만 나를 해석해 온 시간들 말이다.


퇴직 이후, 인생의 두 번째 막을 시작하며 이제는 그 간극을 정면으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식적인 레슨보다도, 선의로 건네진 한 회원의 조언과 그가 찍어준 짧은 동영상이 나를 더 정확한 자리로 데려다주었다. 탁구 자세를 다시 배우듯, 나 자신도 처음부터 다시 맞춰가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닫고 탁구장을 나섰다.

Screenshot_20260108_161702_Gallery.jpg 엉거주춤한 포핸드 자세(20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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