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에서 바람을 맞으며 세상을 배우다

영봉_6회

by 광풍제월

영봉에서 바람을 맞으며 세상을 배우다

2026.1.10. 토


오늘은 겨울숲바라보기 날자반의 북한산 영봉 답사일이다.

눈비 예보가 있어 아이젠과 스틱, 비옷을 챙겼다. 준비가 많은 날은 대개 그만한 이유가 있다.

모임 장소에 일찍 도착했다. 회원들이 보이지 않아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일행은 이미 도착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한 분이 늦어 손*례 강사님이 남아 함께 오기로 하고 우리는 먼저 길을 나섰다.


우이령길을 넘었던 길이라는데, 나는 기억이 없다. 대신 숲은 소리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딱따구리의 따따따, 따따따딱 소리. 누군가는 목탁 같다고 했고, 내 귀에는 따발총처럼 들렸다. 같은 소리도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남는다.


오늘 우리 조는 여섯 명.

육모정공원지킴터에서 출발해 영봉을 찍고 하루재를 지나 도선사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서*규 강사님은 나무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소중히 하라고 했다. 이름을 불러주고, 모르면 바로 묻는 습관을 들이라고 했다. 나무와의 관계도 결국 태도의 문제라는 말처럼 들렸다.


육모정까지 오르는 동안 조록싸리, 초피나무, 물오리나무 등 겨울나무들을 천천히 살폈다. 육모정에서 간식을 먹고 능선을 타자 바람이 거세졌다. 선자령을 떠올리게 할 만큼 강한 바람이었다. 우리가 기다리던 털개회나무는 영봉에 가야 만날 수 있다.


목적지를 향해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걸었다. 바람은 위치에 따라, 순간의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렸다. 낙엽이 굴러가는 방향을 보니 바람길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이렇게 거센 바람을 만나니, 인생의 격정기를 통과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영봉.

눈앞에 펼쳐진 인수봉의 위엄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설명이 아니라 침묵으로 다가오는 것임을 그제야 알겠다. 올라오며 들었던 “오늘은 나무 공부보다 풍경을 보라”는 강사님의 말이 떠올랐다.


바람에 취하고, 풍경에 취한 산행의 끝에서 털개회나무를 만났다. 힘든 길 끝에서야 허락되는 나무였다. 추위가 매서워 겨울눈과 수형만 눈에 담고 내려왔다.


이제 하산이다.

격정의 능선을 지나온 발걸음이, 인생의 두 번째 막에 닿아 있다.

앞으로의 길에서는 속도보다 균형을, 도전보다 안전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 영봉의 바람이 먼저 가르쳐 주었다.

20260110_134955.jpg 영봉에서 바라온 인수봉(202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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