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_9회
신준환 저자는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0년 국립산림과학원의 임업연구사를 시작으로 2014년 국립수목원 원장직을 물러날 때까지 공직에 몸담았다. 『다시, 나무를 보다』는 지난 30년간 외곬으로 나무를 연구해 온 저자에게 나이테처럼 켜켜이 각인된 나무의 지혜를 ‘나무의 인생학’, ‘나무의 사회학’, ‘나무의 생명학’이라는 세 가지 틀로 풀어낸 책이다.
그중에서도 1부 ‘나무의 인생학’에 오래 머물게 되었다. 서양 철학자의 이론, 미생물학,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 음양오행의 세계관 등 쉽지 않은 내용이 이어져 진도가 생각만큼 나아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책장을 넘기며 작가의 말에 실린 “나는 평생 나무처럼 살았다”라는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그 문장이 말하는 ‘나무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인류의 힘이 막강하다고 해서 자연을 잘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오히려 그 막강함 때문에 지식 축적의 궤적이 잘못될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중략) 인류의 지성은 자연의 우연한 산물일 뿐 자연은 지성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특질들을 발현시키고 늘 그러할 뿐이다. 인류가 그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지식은 축적해야 하지만 지혜는 비워야 구해진다」 중, 30쪽)
저자는 인류가 만물의 영장도 아니며, 자연을 보호할 자격을 가진 존재도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 중심적 시각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객관적 접근을 강조한다. 진화에서 살아남는 것은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적응한 존재’이며, 적응이란 진보나 도덕적 우월성을 뜻하지 않는다고 한다. 조건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과거에 적합했던 종이 멸종할 수도 있고, 지금은 힘들게 살아가지만 앞으로 더 번성할 종도 있다.
저자는 나무를 공부하며 생명의 본질을 집요하게 찾아다녔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생명의 본질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서로 의존하는 그물망, 곧 생태계 그 자체가 생명의 빛이라는 것이다. 잎은 가지에 의존하고, 가지는 줄기에, 줄기는 뿌리에 의존해 살아가지만, 잎이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뿌리 역시 살아갈 수 없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나무처럼 산다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피톤치드라는 물질은 본래 ‘식물이 죽인다’는 뜻을 지니지만, 나무는 남을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아파서,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이 물질을 내뿜는다. 자신이 아파서 내는 향기, 우리는 그 향기를 들이마시며 치유된다. 향기로움 뒤에는 그만큼의 아픔이 숨어 있다.
매년 수많은 잎을 날려 보내고, 온 힘을 다해 맺은 열매를 다시 빼앗기고, 겨울을 견뎌냈다 싶으면 또다시 새 잎을 내고 새 꽃을 피워야 한다. 새가 몸을 쪼아도 그대로 버티고, 추울수록 옷을 벗어 이불 속에 넣듯 안으로 안으로 단물을 농축해 고갱이만 남겨 이겨낸다. 그런 나무가 나의 숨을 들이마시고, 나 또한 나무의 숨을 들이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