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_8회
2026.1.17. 토 (D-348)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시계는 새벽 3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어둠이 깊었지만, 유달산이라는 이름이 마음속에서 먼저 깨어났다. 설렘이라기보다는, 잘 다녀와야 한다는 책임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겨울숲바라보기 날자반의 목포 유달산 답사가 있는 날이었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영상 기온이라는 예보를 믿고 옷차림을 가볍게 했다. KTX에 몸을 싣자마자 눈을 감았다. 허리와 어깨, 여기저기서 신호가 왔지만 오늘은 몸보다 마음이 앞섰다. 남쪽 숲이 어떤 얼굴로 나를 맞아줄지, 그 표정이 궁금했다.
이번 답사는 날자반 전원이 참석했다. 강사 두 분을 포함해 모두 열여덟 명. 우리는 두 조로 나뉘었고, 우리 조는 손례 강사님이 맡았다. 유달산으로 향하는 길, 도심 골목에서 오동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붙잡았다. 서규 강사님은 오동나무가 귀한 악기 재료로 쓰이며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오늘 이 나무를 만난 걸 보니, 각자에게 심금을 울릴 일이 하나쯤 생길 것 같다는 덧붙임도 이어졌다. 그 말이 괜히 마음에 오래 남았다.
노적봉 앞에서 몸을 풀고 숲으로 들어섰다. 태산목, 예덕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폭나무, 황단나무, 윤노리나무…. 이름을 부르며 걷다 보니, 이 산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남부 숲의 성격을 품은 곳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유달산에서는 나무만 보는 것이 아니다. 나무 사이로 열리는 목포 시내와 바다까지 함께 바라보게 된다. 숲과 풍경이 경쟁하지 않고, 나란히 서 있었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 앞에서 잠시 쉬었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간식을 먹으니, 정말로 목포의 눈물을 함께 삼키는 기분이 들었다. 노래는 이 도시의 기억이었고, 우리는 그 기억 한가운데 잠시 머물렀다.
오늘 심금을 울릴 나무를 영접하였다. 황단나무이다. 콩과(Dalbergia) 속(Dalbergia hupeana)에 속하는 낙엽성 큰키나무로, 주로 산지 숲 속에서 자라며 국내에서는 목포 유달산에서 2015년 최초로 발견된 희귀 수종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겨울눈을 루페로 관찰하고 수형을 살펴보았다.
남부지방 수종들은 확연히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특히 예덕나무의 수피는 한눈에 들어왔다. 멜론 껍질처럼 갈라진 무늬는 이 숲이 지나온 기후와 시간을 그대로 드러내는 얼굴 같았다. 일등바위에 올라 단체 사진을 찍었다. 크게 춥지 않은 날씨 덕분에 걷기 좋았고, 계단을 오르며 흘린 숨 가쁨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순간 충분히 보상받았다.
이제 하산이다. 내려갈 때가 더 조심스럽다. 올라오며 보았던 나무들을 다시 만났다. 복습하듯 나무에게 이름을 불려 주었다. 유난히 예덕나무가 자주 눈에 띄었다. 숲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산을 마무리할 즈음, 애기동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그루에서 꽃망울과 만개한 꽃, 이미 떨어진 꽃잎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애기동백은 꽃이 통째로 떨어지지 않는다. 꽃잎이 한 장씩, 차례로 바닥에 내려앉는다. 원산지는 일본 중남부.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이제는 남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경수가 되었다.
바닥에 흩어진 꽃잎들을 바라보다가, 이 꽃이 지닌 애잔함이 이 땅의 시간과 겹쳐 보였다. 유달산의 겨울숲은 그렇게 나무와 바다 사이에서 조용히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