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삶의 쉼표를 찍다

삶의 쉼표_21회

by 광풍제월

백수, 삶의 쉼표를 찍다

2026.2.19. 목 (D-315)


오늘은 탁구 레슨이 있는 날이다. 지하 탁구장에 도착하니 내가 두 번째 순서다. 설 명절이 끝난 뒤 첫 만남이라 코치와 관장님께 새해 인사를 드렸다. 첫 번째 레슨자가 연습하는 동안 뒤에서 공을 주워 담았다. 남의 연습을 지켜보는 일도 꽤 도움이 된다.


내 차례가 되자 그동안 배운 동작을 반복했다. 루프드라이브와 탑드라이브는 어느 정도 들어가지만, 백핸드 드라이브는 여전히 쉽지 않다. 코치는 감을 더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레슨을 마치니 땀이 흥건했다. 회원이 가져온 말린 망고를 함께 나누어 먹었다. 단맛이 퍼지자 몸도 마음도 느슨해졌다. 앞서 레슨을 받은 최 선생님과 포핸드 연습을 했다. 둘 다 초보지만 랠리가 이어지니 제법 재미있었다.


적당히 지쳤을 때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마에 맺힌 땀이 바람을 맞으며 식어 갔다. 이 시간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나는 좋아하는 운동을 한다. 그 여유가 지금의 나를 조금은 단단하게 만드는 듯하다.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고, 쉬고 싶으면 쉰다. 바로 옆 홍릉공원 산책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산책길에서 겨울눈을 관찰하는 일은 덤처럼 따라오는 기쁨이다.


내 삶의 궤적을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지금은 쉼표를 찍는 구간에 가까울 것이다. 완전한 퇴직 이후 인생 2막으로 넘어가기 전의 준비 기간. 실업급여라는 제도적 완충 장치 덕분에 이 시간을 조금은 차분히 보낼 수 있다.


공자가 말한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베고 누워도 즐거움이 있다”는 안빈낙도의 삶을 떠올려 본다. 그 삶 또한 귀하다. 다만 현재의 삶은 내게 잘 어울린다.


도서관 앞 목련나무의 겨울눈이 도톰하게 부풀어 있다. 비늘껍질을 벗고 꽃눈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이 내 삶의 휴지기와 닮아 보였다.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안쪽에서는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는 시간.


지금의 이 쉼표가, 내 삶의 다음 장을 준비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20260219_134708.jpg 도톰하게 나온 목련나무 꽃눈(202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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